아파트에 둥지 튼 백로와 '불편한 동거'… 나주 주민들 고통 호소

김진영 2025. 7. 16.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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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白鷺)는 천리를 날아 전남 나주에 둥지를 튼다.

그런데 최근 나주 주민들이 수천마리에 이르는 백로의 순례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입주 전까지만 하더라도 입주민들은 아파트 단지를 자유롭게 활공하는 백로의 자태에 "멋지다"고 호평했다.

최근 한 달간 나주시에 접수된 해당 아파트 관련 백로 민원은 20여 건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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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 수천마리 아파트 점령
개발로 남은 숲 한편에 서식
악취·소음·위생에 집단 민원
보호종 분류…조치 어려워
지난 14일 전남 나주시 송월면 A아파트 단지 내 나무 위에서 쉬고 있는 백로들.

백로(白鷺)는 천리를 날아 전남 나주에 둥지를 튼다. 필리핀에서 월동기를 보낸 백로는 대만과 중국을 거쳐 북한 평안남도까지 행진한 뒤 남쪽으로 방향을 튼다. 2~3월 무렵 풍요로운 먹이를 찾아 영산강변에 도착한 백로들은 8~9월까지 무성한 대나무숲에 새끼를 낳는다. 나주의 대나무 숲은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대륙 간 이동의 종착점이자 새로운 생명이 잉태될 순례의 출발점인 셈이다. 그런데 최근 나주 주민들이 수천마리에 이르는 백로의 순례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올해 1월 주민들이 입주한 나주시 송월면 A아파트 얘기다.

14일 나주시 송월면 A아파트. 단지는 귀를 찢는 듯한 새들의 울음으로 가득 찼다. 수천마리의 새떼들이 한꺼번에 지저귀는 소리가 끝도 없이 이어져 날카로운 괴성처럼 들렸다. 백로들이 싼 분변의 악취도 코를 찌르는 듯 했다. 아파트 입구엔 오가는 사람들은 없고, 주민들이 쓴 호소문만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백로로 인한 피해를 조목조목 나열하며 "백로 서식지로 인한 피해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내용의 호소문에 다른 주민이 "혼자 고민하고 있다가 이렇게 글을 올려줘 감사하다"는 쪽지를 붙여 두기도 했다.

전남 나주시 송월면 A아파트 주민이 부착한 피해 호소문

입주 전까지만 하더라도 입주민들은 아파트 단지를 자유롭게 활공하는 백로의 자태에 "멋지다"고 호평했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프리미엄 아파트를 기대했던 터다. 하지만 이젠 단지에서 꽥꽥 소리를 지르는 백로만 보면 몸서리를 친다. 단지 지하 1층 카페에서 만난 박준현씨는 "새벽이 되면 백로들이 왕성한 번식을 하면서 새끼 고양이가 우는 듯한 괴성을 낸다"며 "소음과 새똥 냄새 때문에 창문을 열수도 없고, 잠을 잘수도 없는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다른 주민 박상수씨 역시 "한 마디로 집안에 양계장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며 "빨래에는 각종 악취가 배고 방충망에 새 깃털이 가득하다"고 호소했다. 최근 한 달간 나주시에 접수된 해당 아파트 관련 백로 민원은 20여 건에 이른다. 입주 초기에는 공존에 공감했던 주민들조차 여름철이 되면서 생활 피해에 민원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주민들의 피해가 시작된 것은 지난 3월. 북쪽에서 남하한 백로들이 아파트 뒷산에 위치한 대나무숲에 둥지를 틀면서다. A아파트 위치한 곳은 인근에 나주역과 생태습지공원이 인접한 노른자위 땅이다. 영산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강변 아파트라는 프리미엄을 얹고 세워졌다. 그러나 애초 아파트가 지어진 강변숲은 사실 백로들이 살던 서식지였다. 숲 대부분이 아파트 개발로 사라지자, 월동기를 마치고 날아온 백로들은 자연스레 뒷산에 남은 자투리 숲에 한꺼번에 모여들었다. 주민들과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 이유다.

문제는 주민들의 피해에도 처리 방법이 마땅찮다는 점이다. 백로는 보호종으로 분류돼 있어 7월 번식기에는 포획이나 둥지 제거가 불가능하다. 백로의 서식이 절정에 이르는 8~9월에는 피해가 더 심해질 것으로 우려되지만, 나주시는 악취 저감제를 살포하는 것 외에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나주시 관계자는 "아파트가 세워지기 전부터 먼저 살고 있던 백로들을 쫒아낼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다만 번식기를 마친 백로가 떠난 후, 서식지 이전 방안에 대해 상급 기관과 협의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김진영 기자 wlsdud451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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