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서 온 서울시민③] "의사하다가 탈출"…'월 230만원' 청소부 된 사연

정세진 기자 2025. 7. 16.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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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생활 스트레스 가장 높다는 '5년 이상 10년 미만' 이탈주민들
서울 거주 중인 이탈주민 교육비 부담도 전국 최고
이탈주민 출신 웹툰작가 전주완씨 "5년 살았으면 뭐가 돼 있어야 하는데…"
[편집자주] 매년 7월14일은 '북한이탈주민의 날'이다. 지난해 국가기념일 지정 이후 두 번째 '북한이탈주민의 날'을 맞아 북한 출신 서울시민의 삶을 동행 취재했다. 서울에 사는 북한이탈주민은 모두 6372명. 국내 거주 중인 북한이탈주민의 약 20%가 서울에 산다. 북한이탈주민 대다수는 "수도에 살고 싶다"며 서울살이를 택했다고 한다. 쉽지 않은 서울살이를 시작한 '북에서 온 서울시민'의 삶을 따라가 본다.

지난 11일 저녁 서울 종로구 혜화동 한 극장. 한원경양(17)이 무대 인사를 하러 나왔다. /사진=정세진 기자

"원경이가 이렇게 열심해주니 내 고생은 아무것도 아닌거 같아요."

지난 11일 저녁 서울 종로구 혜화동 한 극장. 한원경양(17)이 무대 인사를 하러 나왔다. 한양은 뮤지컬 '행사의 여왕'의 주연 배우다. 130석 규모 소극장에는 관객이 가득찼다. 한양의 어머니 홍명희씨(52)는 객석에서 눈물을 흘렸다. 평양에서 태어난 원경양은 4살 때 집단체조 아리랑 공연에 참가할 정도로 끼가 있었다. 홍씨는 2019년 탈북 후 서울에 정착해 지하철역에서 청소일을 하며 홀로 한양을 키우고 있다.

남북하나재단의 지난해 북한이탈주민 사회통합조사에 따르면, 이탈주민 중 홍씨 같은 남한 거주기간 5년 이상 10년 미만인 주민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스트레스 정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홍씨 가족을 통해 5년차 이상 10년차 미만 북한이탈주민(이탈주민)의 삶을 들여다봤다.

홍씨는 평양에서 한의사였다. 북한에선 한의와 양의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의사라 부른다. 내과, 한방학과 등 세부 전공에 따라 진료 과목만 다를 뿐이다. 홍씨 환자 중에는 조선노동당 간부도 많았다. 그는 "전화한통이면 우리 애로 다 들어주고 어려운일이 해결 됐다"고 했다.

러시아로 파견 나간 남편이 탈북하면서 모녀의 삶도 변했다. 홍씨는 "수용소로 끌려갈 위기였다"며 "살기 위해 탈북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12살 원경이 손을 잡고 북한군 추적을 피해 두만강을 건넜다.

서울 양천구에 정착한 홍씨는 직업을 바꿔야했다. 북한학력을 인증 받아 한의대에 편입할 수 있었지만 입국 당시 47살인 홍씨는 '현역' 한의대생과 성적을 경쟁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더욱이 통일부는 당시에 만 35세가 넘는 이탈주민에게 대학등록금을 지원하지 않았다. 홍씨는 한의대에 편입해도 3년 이상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해야 했다. 졸업 후에는 국가고시도 통과해야 한다. 그는 "원경이를 두고 학교에 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통일부의 이탈주민 대학 학비 지원 연령 제한은 지난 2월에서야 폐지됐다.

지난 11일 저녁 서울 종로구 혜화동 한 극장. 한원경양(17)이 공연을 마치고 어머니 홍명희씨와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홍명희씨 제공


홍씨는 생활을 위해 요양보호사, 승강기관리사 등 직업을 몇 차례 바꿨다. 지금은 지하철 청소 업체에서 일한다. 새벽 6시15분에 출근해 오후 3시 15분까지 근무한다. 월 실수령액은 약 230만원. 수입 대부분은 배우를 꿈꾸는 딸 교육비로 쓴다. 매달 극단 활동비용 100만원, 무용학원비용 50만원을 지출한다. 서울어린이대공원 근처 극단 연습실에서 새벽 2시에 연습이 끝날 때면 택시비도 쥐여줘야 한다. 교육비 지출을 제외하면 두 모녀가 한달에 쓰는 생활비는 70만원 남짓이다.

한양은 가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예식장 아르바이트를 하기도했다. 그는 가정사를 공개하는 게 싫지 않냐는 질문에 "탈북은 죄가 아니지 않나.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있다"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세금도 다 냈으니 저도 서울 시민"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머니가 지하철에서 청소일을 하더라도 저를 위해 애써주신다는 게 자랑스럽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북한이탈주민 자녀교육비 가계 부담 정도/그래픽=임종철


남북하나재단이 지난해 발표한 '이탈주민 사회통합조사'에 따르면 자녀 교육비가 가계에 부담이 된다는 응답이 68.7%였다. 서울에 거주하는 이탈주민 중 자녀 교육비에 부담을 느낀다는 응답은 81.6%에 달했다. 비수도권(65.7%)과 비교해 15.7%P 높았다. 거주 기간 별로는 5년 이상 10년 미만 주민의 부담스럽다는 응답이 70.4%로 가장 높았다.

탈북 12년차인 웹툰작가 전주옥씨(30)는 "이탈주민 대다수가 한국에서 첫 5년은 어떻게든 괜찮다고 생각한다"며 "그런데 5년이 지나가면 '내가 이땅에서 5년 살았으면 뭐가 돼 있어야 하는데 내세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한국에서 몇등쯤일까 고민하게 되고 변명하기도 어려워지는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전씨는 2013년 오빠와 단둘이 탈북해 서울 동작구에 정착했다. 남매는 빠르게 정착하고자 탈북 계획을 세울 때부터 비용절감을 고민했다. 통상 탈북 비용의 절반은 국경경비대에 주는 뇌물로 쓰인다고 한다. 남매는 비용을 줄이고자 이른바 '깡도강(브로커 도움을 받지 않는 단독 탈북)'을 시도해 성공했다.

웹툰작가 전주옥씨. /사진=남북하나재단 월간 하나


목숨을 걸고 비용을 줄였지만 중국을 경유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브로커 비용 1200만원은 갚아야했다. 남매는 공사판으로 향했다. 전씨는 "오빠는 샤시반에, 나는 청소반에 들어갔다"며 "돈은 갚아야 하는데 몸 쓰는 일밖에 할게 없었다"고 했다. 남매는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일을 했다.

입술이 터져가며 일하는 동생을 보고 오빠는 "그만두고 너 먼저 공부해라"고 말했다. 전씨는 "죽기 살기로 공부했다"고 말했다. 한동대에 입학한 전씨는 첫학기부터 성적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다. 오빠도 한양대를 졸업하고 현재 건축회사에 다니고 있다.

전씨 남매에게 교육은 곧 생존이었다. 그는 "이탈주민들이 입국 초기에 돈도 못 버는데 대학에 가냐고 할 수 있다"면서도 "대학을 졸업하면 완전히 한국화되고 안정감을 찾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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