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이들 반기던 깊은 산골… 화마로 고향의 꿈이 흩어졌다
<3> 마을도 사라진다 : 김연대 시인
예순 넘어 귀향, 마을 살리려 고군분투
산불 덮친 뒤… 떠나는 이재민 못 막아
마을 상징 47년 역사 대곡초도 타버려

김현우(67)는 대곡초등학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마른 모래가 깔린 너른 운동장 끝자락, 그곳에 자리 잡은 아담한 단층 건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샛노란색 외벽엔 검은 분칠이라도 한 듯 화마의 흔적이 넓게 퍼졌고, 철제 지붕은 우그러지고 비틀린 채 내려앉아 있었다. 바닥엔 녹아내린 천장 잔해와 석고 조각, 잿더미가 나뒹굴었다. 나무가 탄 뒤에 나는 매캐한 향과 하수구에 들어온 듯한 퀴퀴한 냄새가 뒤섞여 현우의 코끝을 스쳤다.
오른쪽 2층 건물은 비교적 멀쩡했다. 회색 철제 지붕 위에 얹힌 태양광 패널은 가지런했고 샛노란 외벽도 햇살을 받아 환히 빛났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자 창틀 가장자리와 기둥 모서리에 희미한 그을음 자국이 묻어 있었다.
현우는 작년 이맘때를 떠올렸다. 하늘에 나부끼는 형형색색 만국기를 배경 삼아 운동장에서 윷이 허공을 가르는 풍경이 그려졌다. 편을 갈라 줄다리기를 하다 줄을 놓친 손에서 마른 흙이 폴폴 날리는 모습도 떠올랐다. 매년 4월 중순에서 5월 초 사이 대곡초 운동장에선 총동창회가 열렸다. 고향을 떠났던 이들도 1년에 한 번 열리는 총동창회는 어지간하면 빠지지 않았다. 마을 주민은 20명 남짓이지만 동창회에는 150명 넘게 북적대곤 했다.
"학교 철거한단 기가?" "그라모 이제 동창회는 어데서 할껴?"
사람들이 주고받는 대화에 현우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올해 총동창회는 취소됐지만 마을을 떠났던 이들은 어린이날, 부처님오신날, 대체공휴일로 이어진 5월 연휴에 약속이나 한 듯 이곳을 찾았다. 현우도 그중 한 명이었다. 총동창회가 앞으로 어찌 될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동창회 초대 사무국장이었던 현우가 무심히 대꾸했다.
"운동장에 임시주택 들어선다 카더마. 동창회고 뭐고 이젠 못 한기라."
대곡초 1회 입학생

경북 안동시 길안면행정복지센터 사거리에서 길안천(川)을 건넌 뒤 양곡재를 넘어 청송 쪽으로 10여 분 달리면 왼쪽으로 난 좁은 길이 나타난다. 그 길을 따라 5분쯤 더 들어가야 움푹 팬 산자락 아래 자리 잡은 대곡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대곡리 초입 갈림길 왼편이 대곡1리, 오른편이 대곡2리다. 대곡1리 깊숙한 골짜기 안에 '한실마을'과 대곡초가 있다.
내비게이션에 대곡초를 찍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참 달려 도착하니, 운동장 한쪽에서 마을 반장 김재인(64)이 다가왔다. "마을 취재하러 오셨으면 연대 할배네부터 가면 됩니더. 귀는 좀 어두워도 대문만 세게 두드리면 금방 나올 낍니더."
안내받은 집은 대곡초 바로 맞은편. 대문을 두드리자 마을에서 가장 항렬이 높은 김연대(83) 할배가 나왔다. 젊은 시절 돈 벌겠다며 서울로, 대구로 떠났다가 예순을 넘은 2003년 다시 한실로 돌아왔고 지금까지 줄곧 고향만 보며 살았다. 연대는 1989년 문화예술 잡지 예술세계에 시 '빈터에 서서'로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흰머리, 검버섯이 퍼진 얼굴, 귀에 보청기를 낀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실이란, 깊은 산골 속 큰 마을이란 뜻입니다. 순우리말이지요. 대곡리라는 이름도 여기 한실에서 따온 겁니다. 대곡(大谷), 큰 골짜기요."
마을에서 '한실 박사'로 불리는 노인답게 말은 막힘이 없었다.

"여긴 의성 김씨 집성촌이에요. 지례 예술촌에 모여 살던 조상들 가운데, 순포공·지촌공 형제의 후손들이 한실에 터를 잡은 지도 벌써 300년이 넘었죠."
그는 말을 멈추고 안방 컴퓨터 앞으로 성큼 걸어갔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더니 프린터에서 나온 종이를 집어 들고 건넸다.
"내가 정리해놓은 마을 역사 보고서인데, 이게 한실의 과거고 현재입니다."
A4 용지 여덟 장짜리 보고서엔 한실의 발자취가 오롯이 담겨 있었다. 대곡초의 역사도 잘 정리돼 있었다. 해방 직후인 1948년 9월, 마을에 있던 방 한 칸, 마루 두 칸짜리 서당이 교실로 바뀌며 '길산초등학교 대곡분교'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17년 뒤 지금의 터로 자리를 옮겨 '대곡초등학교'가 됐다가 다시 '구수초등학교 대곡분교'로 편입됐다. 그리고 1995년 3월, 47년 역사와 1,000명 넘는 졸업생을 뒤로하고 문을 닫았다.

해방 직후 산골 마을에 학교가 세워질 수 있었던 건, 당시 마을 어르신들의 힘 덕분이었다.
"한실에 있는 지손들은 공부도 못 하게 그냥 내비러 도도 될니껴?"
조상들은 지례에 있는 문중 어른을 찾아가 학교 세우는 걸 도와달라고 매달렸다. 서당을 개조하고, 마을 출신 교사를 불러오고, 인가를 받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그렇게 문을 연 학교는 대곡리의 상징이자 구심점이 됐다. 윗마을, 아랫마을, 골짜기마다 흩어져 살던 아이들이 다 모였다. 학생들을 가르치러 온 교사들이 마을에 머물면서 도시와의 인적·물적 교류도 이어졌다. 연대 할배도 대곡초 1회 입학생이자 졸업생이다.
"대곡리는 워낙 산속이다 보니 중고등학교를 못 간 사람이 많아요. 입학은 했지만 졸업을 못 한 사람도 많고요. 그러다 보니 국민학교에 대한 애착이 클 수밖에 없죠."
매년 열리는 총동창회가 북적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연대가 22년 전 귀향한 뒤 새로 지은 집은 옛 길산초 대곡분교 자리였다. 학교가 대곡초로 이름을 바꾸며 지금의 장소로 옮겨간 뒤 오래도록 비어 있던 땅인데 연대는 그곳에 거처를 마련했다.

대곡초 총동창회는 연대가 매년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다. 그날이면 그는 고향을 떠난 이들 곁을 오가며 빠짐없이 한마디를 건넸다.
"고향 사라지기 전에, 집 한 채 지어놔. 지금 아니면 못 지어."
"당장 못 올 거면 별장이라도 지어놔."
잔소리 취급받기도 하지만 보람도 있었다. 연대의 군생활 동기인 류건수(83)는 연대의 설득에 넘어가 아내의 고향인 한실에 터를 잡았다. 대구로 떠났던 연대 막냇동생 김재대(68)도 마을에 벽돌집을 올렸다. 연대 사촌동생 김범대(82) 역시 곧 부산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오기로 했다. 현우는 귀향을 염두에 두고 연대의 집안 땅을 샀다.
연대가 돌아온 뒤 그렇게 여덟 가구가 마을에 새로 들어섰다.

"이 집은 2006년, 저 집은 2008년… 내가 지으라 해서 지은 집만 네 채야."
마을을 돌며 뿌듯한 표정으로 설명하는 연대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불이 길안천을 넘던 날
연대는 석 달에 한 번, 아내와 함께 안동 시내 병원에 간다. 나이 들어 운전면허를 반납한 터라 마을을 하루 세 번 오가는 시내버스를 탄다. 새벽 6시 30분 첫차로 병원을 방문해 고혈압 진료를 마치고 시내에서 장을 본 뒤 약 짓고 돌아오면 해가 뉘엿뉘엿 진다. 쳇바퀴 돌듯 7년째 반복된 일상이다.
그날은 달랐다. 3월 25일 오후 4시 14분. 시장에서 마을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액정 화면에 '마을 반장 김재인'이라고 떴다.
"할배, 양곡재에 불붙었어요! 마을에 대피 방송 좀 해주쇼!"
'양곡재에 불이 붙었다고?'
연대는 숨이 턱 막혔다. 양곡재는 뒤에는 길안천, 앞에는 대곡재를 두고 있다. 양곡재와 대곡재만 넘으면 바로 한실마을이다. 불길이 길안천을 통과했으니 마을까지 번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연대는 서둘러 마을에 있을 범대에게 연락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7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대곡1리 이장이랑 안동에 사는 딸까지. 1시간 20분 만에 겨우 범대와 통화했지만 "다 타고 있다"는 짧은 말만 들리곤 뚝 끊겼다. 범대와 통화를 끝내기 무섭게 다시 친인척들의 전화가 쏟아졌다. 시장 상점에서 틀어 놓은 TV 방송에선 '의성 산불, 강풍 타고 안동 확산... 주민 대피령' 자막이 떴다.

연대에게 '마을 방송'을 부탁하던 그 시각, 재인은 재대, 김도현(65)과 차를 타고 마을 밖 길안면으로 나가고 있었다. 한실은 마을 밖으로 가는 길이 하나뿐이다. 외길이 막히면 꼼짝없이 갇힐 수밖에 없어 산불이 옮겨올 조짐이 보이면 먼저 피해야 했다. 젊은 축에 속하는 60대 세 명은 사흘 전 발생한 의성 산불 이후 오전과 오후 한 차례씩 길안면에 나가 산불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재인의 일행이 도착했을 때 길안면엔 술렁거림이 가득했다. 행정복지센터 앞엔 겁에 질린 노인들이 삼삼오오 서성였고 좁은 도로는 차로 엉켰다. 사이렌을 울리며 소방차와 경찰차가 연신 지나갔다. 재대는 차에서 내려 행정복지센터 직원을 붙잡고 물었다.
"대곡리로 불 넘어옵니껴? 어른들 대피해야 합니다!"
얼마 뒤 재인의 눈에 강풍을 탄 불길이 길안천을 건너 양곡재, 대곡재를 차례로 넘는 모습이 보였다. 재인 일행은 급히 차를 돌리려 했지만, 마을로 가는 도로는 이미 막혀 있었다. 함께 있던 소방차 서너 대도 더 이상 진입을 못 하고 양곡재 앞에서 멈췄다.
"이 길로는 진입할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을에는 노인들밖에 없다고!"
소방대는 요지부동이었다. 세 명의 머리에 마을 어르신들 얼굴이 하나하나 스쳐 지나갔다.
운동장에 모이다

한실에 있던 범대는 집에서 바람을 타고 날아드는 불씨를 멍하니 봤다. 불꽃이 어디서 튈지 몰라 누구 하나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여기서 확, 저기서 탁, 불씨는 바람을 타며 폭죽 터지듯 이곳저곳에 떨어졌다.
"운동장으로 모여!"
누군가 외쳤다. 마을 사람들은 집에서 허겁지겁 뛰쳐나왔다. 범대도 아내의 손을 끌고 마을 골목을 빠져나왔다.
"이쪽으로 와! 여기로!"
붉은 연기 속 얼굴조차 알아보기 힘든 와중에 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부르며 손을 뻗었다.
텅 빈 운동장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방이 훤히 트이고 마른 모래만 깔린 맨바닥. 불이 붙을 만한 나무둥치 하나 없어 오히려 안전해 보였다. 산과 가장 멀리 떨어진 장소인 데다 마을을 나가는 유일한 도로와 맞닿아 있어 불길이 조금만 잦아들면 차에 올라탈 수도 있었다.
사람들은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집들을 주시했다. 연기와 불기둥이 시야를 덮었지만 두 눈을 부릅뜬 채 불길을 좇았다. 이번엔 건수네, 다음엔 범대네, 그다음엔 김응길(82)네... 집들이 하나씩 눈앞에서 주저앉았다.

운동장에도 열기가 밀려들었다. 달궈진 바람은 바늘로 콕콕 찌르듯 피부를 쑤셨고, 숨을 쉴 때마다 목이 따끔거렸다. 몇몇은 너무 뜨겁다며 학교 2층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운동장에 주차된 차 안으로 몸을 피한 이들도 있었다.
그때 바람을 탄 불씨 하나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운동장 왼쪽 구석, 산비탈에 떨어진 불씨는 순식간에 번져 바로 옆 학교 단층 건물을 집어삼켰다. 회색 철제 지붕이 벌겋게 부풀다 "펑" 소리를 내며 터졌다. 녹아내린 금속이 끓어 넘친 주전자 물처럼 뚝뚝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람들은 2층 건물까지 불이 옮겨붙을까 봐 숨을 죽였다. 다행히 불은 단층 건물 끝에서 잦아들었다.

산불은 그날 3시간 동안 한실의 집 열다섯 채 가운데 여섯 채를 집어삼켰다. 그러나 대피소 역할을 한 대곡초 덕에 단 한 명의 노인도 다치지 않았다.
갈림길에 선 사람들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지 4주가 흐른 4월 22일, 한실 사람들은 오랜만에 경로당에 모였다. 얼마 전 끊겼던 전기와 수도가 돌아오자 집이 무사한 이들이 하나둘 마을로 돌아왔다. 대피소에 있는 이들도 잠시 들렀다.
침묵이 짙게 깔린 경로당 안에서 연대는 침묵했다. 불이 나던 날 그는 마을에 없었다. 뒤늦게 돌아와 보니 연대 집이 가장 멀쩡했다. 생가도, 창고도, 밭도, 뒷산도 모조리 탔는데 불길이 일부러 피해 가기라도 한 듯 연대 집만 온전했다.
'이러다 다 떠나는 건 아니겠지…'
집을 잃은 사람들 틈에서 섣불리 입을 여는 게 조심스러웠지만 손 놓고 있을 순 없었다. 연대는 구석에 앉은 범대를 슬쩍 훔쳐봤다. 원래도 말수가 적었던 범대는 불이 난 이후로는 아예 말을 잃은 듯했다. 범대가 대곡초 운동장에 마련될 임시주택을 신청하는 대신 시내 임대아파트 당첨만 기다린다는 얘기도 돌았다.
연대는 범대에게 임대아파트 얘기를 꺼내려다 입을 다물었다. 대신 친구 건수에게 말을 걸었다. 건수 집은 다 탔지만 그도 연대처럼 불이 나던 날 길안면에 볼일이 있어 마을을 떠나 있었다. 그래서일까. 집을 잃은 다른 사람들보다는 비교적 담담해 보였다. 군인 출신인 건수는 매달 연금을 받고 있어 연대가 좀 더 부담 없이 말을 건넬 수 있었다.
"요즘 조립식 집은 생각보다 안 비싸대. 10평(약 33㎡)짜리 하나면 둘이 살기 딱 좋아."
"그래? 한번 알아보지 뭐."
건수에게 긍정적인 답이 돌아왔다. 연대는 기다렸다는 듯 목소리에 힘을 줬다. 옆에 있는 범대 귀에도 닿을 수 있도록.
"그래 잘 생각했어."
범대 쪽으로 시선을 던졌지만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었다. 범대는 고개를 숙인 채 바닥만 봤다.
연대는 이쯤에서 화제를 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머릿속에 준비해뒀던 말을 꺼냈다.
"저번에 경로당 왔을 때 이런 게 있더라고. 면사무소에서 두고 간 건데, 이재민 혜택이 정리돼 있더라. 혹시 다들 봤어?"
결심하다

범대는 추첨에서 뽑혔다. 안동 시내 옥동 임대아파트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임대아파트는 대곡리에서 나와 길안면을 지나 안동시청이 있는 시내를 관통해 차로 약 40분 거리에 있었다. '스타벅스' '뚜레쥬르' '다이소' '올리브영'. 프랜차이즈 간판이 즐비한 아파트 밀집 단지였다.
침실 두 개, 화장실 하나, 부엌과 거실이 나란히 붙은 단출한 구조. 베란다엔 기업 로고가 찍힌 구호물품 박스들이 이삿짐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냉장고가 없어 식어버린 반찬 냄새가 희미하게 풍겼다.
범대는 소파에 몸을 기댄 채 TV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TV 앞에 머물렀다. 화면에서는 바둑 방송이 나왔지만 딱히 집중해서 시청하진 않았다. 하루 중 유일한 낙은 창밖으로 복주초등학교 학생들의 등하교를 보는 일이었다.
한실마을엔 아이도 없고, 폐교만 덩그러니 있었는데 여긴 학생들이 웃고 떠드는 게 보였다. 그걸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졌다. 범대에겐 가장 재밌는 시간이다.
복주초를 바라보는 범대의 눈엔 웃음소리로 들썩이던 옛 대곡초의 풍경이 포개져 있었다. 한실마을로 돌아갈 생각이 있을까. 범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다 타버린 거 치우고 새로 짓는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겉은 정리돼도 속은 안 닦여. 나이도 여든 넘었고, 이만하면 다 살았지. 허락만 해주면 그냥 여기서 평생 살고 싶어. 살림도 새로 채웠는데, 우리 나이에 이삿짐 다시 싸는 게 더 고역이야."
범대는 마을에 자주 갈 수 없으니 한실마을 경로회장 자리도 그만둘 생각이다.
한실을 붙들다

건수도 처가가 있는 한실이 아니라 원래 고향인 임동면으로 돌아가려 한다. 현우 역시 한실에 집을 짓겠다는 마음을 접었다. 연대에게서 산 땅은, 마을 사람들에게 공짜로 빌려주거나 세를 받아 텃밭으로 가꿀 예정이다. 그의 표정엔 마지막 미련을 내려놓은 듯 후련함이 묻어 있었다. "예전엔 새벽이나 저녁에 밖에 나서면 별이 쏟아질 것 같았는데. 산나물도 캐러 다니고, 송이도 따러 다니고. 이제는 그런 게 다 사라졌으니…"
한때 대곡리에서 젊은이들이 가장 많았던 한실은 이제 예순을 훌쩍 넘긴 노인 스무 명 남짓만 남은 작은 마을이 됐다. 한실을 다시 살리기 위해 연대가 지난 20여 년간 부단히 애를 썼으나 그 희망은 산불과 함께 타버렸다. 한실은 분명히 소멸해가고 있다. 다만, 그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은 게 연대 마음이다.

"옛날엔 집 본채에 아버지를 중심으로 마을 남자들이 모여 술 마시며 떠들었고, 여자들은 어머니가 계신 아래채에서 늘 시끌벅적했지. 청년들은 학교 선생님 기숙사에 모여 놀았고. 이제 한실은, 노인 몇 명만 남아 서서히 사라지겠지."
그는 매일 한 번씩 다 타버린 자신의 생가를 찾는다. 집은 형체 없이 무너졌고, 모아온 책들은 불에 타고 바람에 찢겨 마당에 조각조각 흩어져 있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풍경을 더듬듯 생가를 바라보다 연대는 허공에 대고 중얼거렸다.
"살아 있는 동안엔 내 몫을 다해야지. 후대야 어찌 되든."
빈집 / 김연대
도시에는 빈 집은커녕 셋방도 없어
신혼부부들이 별거를 한다는데
한실에는 사람 사는 집보다
빈 집이 더 많다
돌보지 않고 버려놓은 빈 집엔
적막이 들어와 살고
부스러기 햇살이 숨어 살고
亞자 상에 囍자 자리에 壽福 베개에
청실홍실 꿈을 꾸던 방엔
어우렁 더우렁 거미들이 공짜로 들어와 엉겨서 살고
이 구석 저 구석 소복소복 알을 까서
예쁜 새끼들을 기르며 살고
춘향이 집 방자처럼
바람이 무상출입 드나들며 살고
흙이 된 지 오래 된 아버지 어머니들 먼지 쌓인 문패가
백골이 빛나도록 집 지키고 있고
세월은 그렇게 가고 있고

■ 목차별로 읽어보세요
-
① 지옥불에 빠지다 : 김미경 스토리
- • "눈 마주쳤는데 못 구해"… 가슴 속 불길은 꺼질 줄 몰랐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70211020004261)
- • "눈 마주쳤는데 못 구해"… 가슴 속 불길은 꺼질 줄 몰랐다
-
② 내 삶을 빼앗겼다 : 서복래 할머니, 중학생 임지호
- • 전쟁도 견뎌냈는데… 화마가 앗아간 72년 삶터, 마음까지 타버렸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70211030002837) - • 마을 덮친 어둠 뚫고 노인 넷 구한 15세 소년… 웃음은 더디게 돌아왔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70211040001823)
- • 전쟁도 견뎌냈는데… 화마가 앗아간 72년 삶터, 마음까지 타버렸다
-
③ 마을도 사라진다 : 사망자 이분순, 김연대 시인
- • 흙벽 아래 잠든 '101세 수호신'… "못 지켜 미안해요" 이웃도 울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70211050004981) - • 돌아온 이들 반기던 깊은 산골… 화마로 고향의 꿈이 흩어졌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70211040005944)
- • 흙벽 아래 잠든 '101세 수호신'… "못 지켜 미안해요" 이웃도 울었다
-
④ 그래도 살아간다 : 김현일 이장, 귀농인 강석구
- • 잿더미 속 다시 일어서는 '신흥리 사람들'… 마스코트 똘이도 돌아왔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70211060003829) - • 산불이 '귀농 6년' 삼켰지만… 그의 꽃길엔 새 꿈이 자랐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70211060001280)
- • 잿더미 속 다시 일어서는 '신흥리 사람들'… 마스코트 똘이도 돌아왔다
-
⑤ 이웃 챙기고 구한 작은 영웅들
- • 그날 그곳엔 작은 영웅들이 있었다 [뉴스룸에서]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71716000001194) - • "진정한 영웅"… 화마 뚫고 노인 넷 구한 중학생에 전달된 온정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0601180005349)
- • 그날 그곳엔 작은 영웅들이 있었다 [뉴스룸에서]
안동= 허유정 기자 yjheo@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삼부토건·집사·코바나·양평…김건희 남은 의혹 수두룩 추가 조사 불가피 | 한국일보
- 文 "정치인 사면한다면 조국도 해 달라"… 대통령실에 요청 | 한국일보
- 김문수 "우리 주적은 이재명... 억울하게 감옥 간 尹, 입당 신청하면 받을 것" | 한국일보
- 홍준표, 김건희 특검 조사에 "조국 부부 모두 구속했던 尹, 자업자득" | 한국일보
- [단독] "말뚝 재봉틀 사자" 동대문 모자 업체 결단...'마스가 모자' 탄생 시켰다 | 한국일보
- 지방에서 5만원 쓰면 '대박경품'까지…지방 소비 붐업 나선 정부 | 한국일보
- 자판기 음료에 의한 연쇄살인…기적의 제초제 '그라목손' 퇴출의 역사 | 한국일보
- 돌아온 추다르크…與 "미완의 '검수완박' 이끌 검찰개혁 적임자" | 한국일보
- [단독] "누구도 날 지켜주지 않는다"… 채 상병 사건 후 뚝 끊긴 軍 대민 지원 | 한국일보
- 김문수도 '전한길 면접' 앞으로… 컷오프 앞두고 강성 당심 잡기 |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