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모인 최후의 전사들 "5·18 헌법전문 담아 국가유공자 대우해야"
타격대원 14명 한 자리 모여
끊임없는 왜곡·폄훼에 분노
"국가유공자로서 대우 받아야"

1980년 5월 국가폭력에 맞서 전남도청에서 희생을 무릅쓰고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전사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여 지난 45년간의 소회를 털어놓는 시간을 가졌다.
기동타격대원 14명은 26일 광주 동구 전일빌딩245에서 무등일보가 개최한 집담회에 참석해 고통의 세월, 5·18 왜곡·폄훼에 대한 분노, 12·3 비상계엄 당시 느꼈던 심정, 5·18이 나아갈 방향 등 크게 네 가지 주제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들은 한 시간가량 진행된 집담회에서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이른바 '빨갱이' 등으로 왜곡·폄훼 당하는 현실에 크게 분노했다. 12·3 비상계엄에 대해서는 일선 군인들의 소극적 대응을 높이 평가했다.

◆혹독한 고문에 망가진 삶...쓸쓸한 고통의 세월
박영수(63)씨는 45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고통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 1980년 당시 18세였던 박영수씨는 상무대 영창에서 158일간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박영수씨는 고문 후유증 때문에 석방된 후에도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박영수씨는 정부와 광주시에서 지급하는 수급비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는 중이다. 박영수씨는 "고문 때문에 출옥 후부터 계속 건강이 좋지 않았다. 지금은 몸이 전혀 따라주지 않아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다"며 "매일 밤 우울증약 등 5~6가지 약을 먹는다. 트라우마 치료도 꾸준히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5·18 당시 공군 방위병으로 유일한 현역 군인이었던 이재춘(66)씨는 상무대 영창에서 현역 군인이라는 사실이 들통나 곡괭이로 머리를 빼고 전신을 구타당했다. 뼈가 으스러질 정도의 무자비한 구타에 쓰러지기도 했다. 이재춘씨는 지난 2021년 후두암 수술을 받으면서 목소리를 잃었다. 목에 '전기후두'를 갖다 대야만 기계음으로 목소리가 나온다. 이재춘씨는 "고문 후유증으로 매일매일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고 호소했다.
기동타격대 조직을 주도한 이재호(77)씨의 투병 생활을 최초로 공개한 무등일보 보도를 접하고 안타까움의 목소리도 나왔다. 광주의 한 요양병원에 입소 중인 이재호씨는 기동타격대를 조직한 실질적인 역할을 해서 훨씬 많은 고문을 받았다. 이로 인해 오래전 기억을 잃고 언어장애를 겪고 있다.
5·18 기동타격대동지회 회장을 맡고 있는 양기남(66)씨는 "재호형은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었다"며 "상태가 지금보다 나빠지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빨갱이", "연금 수령"...끊이지 않는 5·18 왜곡·폄훼
끊이지 않는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에 대해서는 너무 화가 나고 억울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삼규(64)씨는 과거 전북과 경북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 일할 때 5·18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고 했다. 특히 광주를 빨갱이 도시로 취급했다고 했다. 김삼규씨는 "작은형을 죽인 계엄군에게 복수하기 위해 총을 들었을 뿐인데 빨갱이라니 기가 찬다. 반박을 해도 전혀 듣질 않는다"며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과 5·18 왜곡·폄훼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모두 시달리고 있다. 이웃을 지키기 위해 저항한 광주시민들을 빨갱이로 매도한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고 울분을 토했다.
오정호(76)씨는 5·18 민주유공자가 가만히 연금을 받고 살고 있다는 말에 크게 분노했다. 사실 5·18 민주유공자는 받고 있는 연금이 없다. 정부에서 받는 지원은 오직 의료비뿐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5·18 왜곡·폄훼 세력들은 5·18 민주유공자들이 매달 거액의 연금을 받는다는 허위 사실을 유포한다. 오정호씨는 "5·18 유공자들이 가만히 앉아서 연금 받으며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의료비 지원 말고 받는 지원이 일절 없다"고 말했다.

◆"그때와 달랐던 군인들"...다시 돌아보는 12·3 비상계엄
누구보다 계엄으로 인한 아픔이 있는 이들은 12·3 비상계엄에 대해 트라우마를 호소하며 일선 군인들의 소극적 대응을 높이 평가했다.
집에서 TV를 보고 있던 염동유(69)씨는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 소식에 어안이 벙벙했다고 회상했다. 염동유씨는 "45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고통받고 눈물을 흘리 사람들이 많은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계엄을 선포한다는 것이 너무 어처구니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1980년 5월과 달랐던 일선 군인들의 모습에 대해서는 감동을 느꼈다고 눈물을 흘렸다. 염동유씨는 "창문을 깨고 진입할 때도 느릿느릿 행동하는 모습을 보고 일선 군인들도 비상계엄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걸 느꼈다"며 "명령이라고 무조건 따르지 않는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이재춘씨는 자신과 같이 일선 군인들이 시민들을 생각해 다행이라고 말했다. 일선 군인들이 명령에 복종해 실탄을 한 발이라도 쐈다면 대한민국이 다시 암흑의 시간으로 퇴행했을 거라는 것이다. 이재춘씨는 "후퇴하는 어린 군인들이 시민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모습을 보고 울컥했다"고 했다.
◆"5·18 정신 헌법전문 수록해 국가유공자 대우해야"
이들은 한목소리로 5·18 정신의 헌법전문 수록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5·18에 대한 왜곡·폄훼를 막는 것은 물론 국가유공자 대우를 위해서다.
안용순(61)씨는 "5·18에 대한 왜곡·폄훼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담아야 할 필요가 있다. 5·18은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앞당겼다"며 "헌법전문에 5·18 정신을 명시해 5·18의 역사적 정통성을 확보한다면 5·18에 대한 터무니 없는 왜곡과 폄훼는 사라질 것이다"고 강조했다.
도준식(68)씨도 "5·18 당시 체포돼 고문을 받았던 유공자 대다수 겉으로 티를 안 낼뿐 지금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 생계를 간신히 유지하는 이들도 태반이다"며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수록해 민주유공자 예우가 아닌 국가유공자 대우를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글·사진=박승환기자 psh0904@mdilbo.com·차솔빈기자 ehdltjstod@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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