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 빗발치던 참혹한 새벽, 그는 한 발도 떼지 않았다
이동용씨 "총알 못 뚫게 솜이불 덮어준 학생. 윤 열사"
마삼훈씨 "숨 거두고도 멀쩡하지 못한 채 가족 품에"

고(故) 윤상원 열사와 함께 27일 새벽 도청을 끝까지 지킨 최후의 전사들이 윤 열사의 마지막을 회고했다.

이동용 씨는 "당시 도청 본관 2층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멀리서 총성 소리가 들려왔고, 순식간에 도청 곳곳에 총소리가 가득 찼다"며 "총알이 유리창과 얇은 벽을 뚫고 들어와 우리는 낮은 포복 자세로 이동해야 했다"고 말했다.
마삼훈 씨는 "포복으로 기어가고 있는데, 식당으로 쓰던 널찍한 공간에 한 학생이 총을 맞고 쓰러져 있었다.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기에,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두꺼운 솜이불은 총알이 못 뚫는다'는 이야기가 생각나 얼른 솜이불 두 개를 가져와 덮어 주고 자리를 지켰다"고 말했다.

이 씨는 "막상 그렇게 쓰러진 이를 버려둘 수 없어 자리를 잠시 지켰다. 숨소리와 신음이 잦아들 때는 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상처 부위를 건드리게 하기도 했다"며 "창문 너머로 불빛이 이동하고, 총알이 우리를 스쳐 지나갈 때면 손이 막 떨렸다"고 회상했다.
이들은 "기동타격대 모여라"라는 공수부대원의 꾀임에 속아 본관 1층으로 내려갔다가 붙잡혔다. 당시 1층을 점령한 공수부대원들이 지향사격 자세로 계단을 내려오던 청년들에게 총알을 한차례 쏟아부었고, 무장해제된 기동타격대원들을 체포해 상무대로 압송했다.

마 씨는 "체포 후 상무대에 끌려갔다 겨우 빠져나온 뒤 도청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며 "우리가 솜이불을 덮어 주고 정신을 차리게 했던 학생이 바로 윤상원 열사였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도청 곳곳에 불이 났는데, 불붙은 커튼이 이불을 덮쳐 윤상원 열사의 시신이 온통 화상투성이었다고 들었다"며 "결국 숨을 거두고, 멀쩡하지 못한 채로 가족들 품에 돌아간 것도 너무 슬펐다"고 덧붙였다.
한편, 윤상원 열사는 5월 26일 외신기자들에게 계엄군의 작전과 잔혹한 행보를 공개하면서, 끝까지 투쟁할 것임을 밝혔다.
이후 27일 새벽, 계엄군이 전남도청에 진입해 공격하자 이에 맞서 끝까지 싸우다 총에 맞아 숨졌다.
차솔빈기자 ehdltjstod@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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