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 빗발치던 참혹한 새벽, 그는 한 발도 떼지 않았다

차솔빈 2025. 7. 1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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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27일 새벽 피 흘린 채 쓰러진 모습 생생해
이동용씨 "총알 못 뚫게 솜이불 덮어준 학생. 윤 열사"
마삼훈씨 "숨 거두고도 멀쩡하지 못한 채 가족 품에"
26일 전일빌딩245에서 개최된 집담회에서 이동용(사진 좌측 첫번째)씨와 마삼훈(사진 좌측 두번째)씨가 고 윤상원 열사의 마지막 순간을 회고했다.

고(故) 윤상원 열사와 함께 27일 새벽 도청을 끝까지 지킨 최후의 전사들이 윤 열사의 마지막을 회고했다.

지난 1980년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 본관 2층을 지키고 있던 기동타격대 4조 마삼훈(61)씨와 이동용(61)씨는 피 흘리며 쓰러진 윤상원 열사의 마지막을 회고했다.
26일 5·18기동타격대동지회가 최후 격전지인 옛 전남도청을 방문했다.

이동용 씨는 "당시 도청 본관 2층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멀리서 총성 소리가 들려왔고, 순식간에 도청 곳곳에 총소리가 가득 찼다"며 "총알이 유리창과 얇은 벽을 뚫고 들어와 우리는 낮은 포복 자세로 이동해야 했다"고 말했다.

마삼훈 씨는 "포복으로 기어가고 있는데, 식당으로 쓰던 널찍한 공간에 한 학생이 총을 맞고 쓰러져 있었다.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기에,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두꺼운 솜이불은 총알이 못 뚫는다'는 이야기가 생각나 얼른 솜이불 두 개를 가져와 덮어 주고 자리를 지켰다"고 말했다.

마 씨는 "2층 창문을 통해 들어온 최루가스 때문에 눈이 매웠고, 동료들이 하나 둘 쓰러져 갔다. 내 옆에서도 한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공황 상태에 빠지기 직전이었다"고 설명했다.
고(故) 윤상원 열사

이 씨는 "막상 그렇게 쓰러진 이를 버려둘 수 없어 자리를 잠시 지켰다. 숨소리와 신음이 잦아들 때는 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상처 부위를 건드리게 하기도 했다"며 "창문 너머로 불빛이 이동하고, 총알이 우리를 스쳐 지나갈 때면 손이 막 떨렸다"고 회상했다.

이들은 "기동타격대 모여라"라는 공수부대원의 꾀임에 속아 본관 1층으로 내려갔다가 붙잡혔다. 당시 1층을 점령한 공수부대원들이 지향사격 자세로 계단을 내려오던 청년들에게 총알을 한차례 쏟아부었고, 무장해제된 기동타격대원들을 체포해 상무대로 압송했다.

이 씨는 "당시 체포되거나 투항하지 않고 숨어 있던 이들을 모두 찾아내 총을 쐈다"며 "무릎이 꿇린 채 포박돼 있었는데 '우리가 이불을 덮어 준 학생은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 윤상원 열사

마 씨는 "체포 후 상무대에 끌려갔다 겨우 빠져나온 뒤 도청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며 "우리가 솜이불을 덮어 주고 정신을 차리게 했던 학생이 바로 윤상원 열사였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도청 곳곳에 불이 났는데, 불붙은 커튼이 이불을 덮쳐 윤상원 열사의 시신이 온통 화상투성이었다고 들었다"며 "결국 숨을 거두고, 멀쩡하지 못한 채로 가족들 품에 돌아간 것도 너무 슬펐다"고 덧붙였다.

한편, 윤상원 열사는 5월 26일 외신기자들에게 계엄군의 작전과 잔혹한 행보를 공개하면서, 끝까지 투쟁할 것임을 밝혔다.

이후 27일 새벽, 계엄군이 전남도청에 진입해 공격하자 이에 맞서 끝까지 싸우다 총에 맞아 숨졌다.

차솔빈기자 ehdltjstod@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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