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보다 층간소음이 더 끔찍… 스크린 얼려버린 ‘일상’

안진용 기자 2025. 7. 16.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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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지하철… 올 여름 영화 트렌드는 ‘생활속 공포’
아파트 이웃분쟁 ‘84제곱미터’
더 궁핍해지는 서민의 삶 실감
소음 고통 묘사 ‘노이즈’ 흥행
지하철역 비밀 품은 ‘괴기열차’
주차갈등 다룬 ‘주차금지’까지
현실감 넘치는 공포물 공감대
영화 ‘84제곱미터’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납량 특집물이 더위 사냥에 나섰다. 올해 공포·스릴러 장르의 트렌드는 ‘일상’이다. 아파트 층간소음, 주차 시비, 홈캠 등으로 인해 우리 주위가 공포의 공간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밀도 높게 그려 공감대를 형성한다.

배우 강하늘·염혜란이 주인공을 맡아 오는 18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영화 ‘84제곱미터’(감독 김태준)는 소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해 장만한 아파트가 복마전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층간·측간소음, 이 때문에 신경질적으로 부딪히게 되는 이웃은 분노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평범한 30대 직장인 우성(강하늘)은 고시원과 반지하방을 전전하다가 온갖 대출을 당겨 아파트를 산다. 하지만 ‘내 집이 생겼다’는 기쁨은 잠시뿐이다. 윗집에서 들리는 소음을 참다못해 올라가지만 소음의 원인은 찾지 못했다. 오히려 아랫집에서는 우성을 소음 발생의 원흉으로 지목하고, 노란 메모지에 온갖 저주의 말을 담아 문 앞에 덕지덕지 붙인다. 이에 민원을 제기하지만 맨 위층 펜트하우스에 사는 입주민 대표(염혜란)는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듯 우성에게 침묵을 요구하고, 온몸에 문신이 있는 이웃 남성은 그를 압박한다.

이 영화의 제목인 ‘84제곱미터’는 국민 평형이라 불리는 30평대 아파트를 뜻한다. 그리고 현대인들에게 아파트는 욕망의 집약체라 할 수 있다. 전 재산의 80∼90%가 부동산에 쏠려 있기 때문에 집값이 오르면 ‘대박’, 떨어지면 ‘쪽박’이 되는 식이다. 하지만 아파트의 가격과 안락함은 비례하지 않는다. 층간소음 분쟁으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는 뉴스를 접하듯, ‘84제곱미터’는 층간소음으로 이웃 간 악한 감정이 켜켜이 쌓이는 과정을 실감 나게 보여준다. “아랫집이 윗집 이길 수 있어?”라는 경고는 섬뜩하고, “층간소음은 사람 문제다. 왜 아파트를 탓하냐?”는 질타는 야박하다.

영화 ‘노이즈’

‘84제곱미터’는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해 보겠다는 꿈으로 인해 오히려 점차 궁핍해지는 서민의 삶을 실감 나게 보여준다는 측면에서도 더욱 서늘하다. 이 영화의 배경은 2021년.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집콕’ 생활이 강조되면서 아파트 가격이 최고로 치솟을 때다. 마스크를 낀 주인공이 단 몇 분 만에 매매값 1000만 원이 인상된 부동산을 사기 위해 손을 떨며 도장을 찍는 장면, 그리고 그가 포기하길 기대하며 대기표를 뽑고 이를 지켜보는 이들이 한데 어우러진 부동산 중개업소의 풍경은 서글프다. 무리한 아파트 매수를 탓하는 이들에게 “투기가 아니라 실거주”라고 항변하지만 “실거주가 아니라 실거지”라는 비아냥은 부동산 광풍 시대의 살풍경으로, 좀비와 귀신 같은 존재보다 더 섬뜩하다.

‘84제곱미터’에 앞서 지난달 25일 개봉한 영화 ‘노이즈’ 역시 층간소음을 소재로 내세웠다. 원인 모를 소음으로 인해 겪게 되는 이들의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사운드 작업에 특히 공을 들인 이 작품은 지난 12일 손익분기점(100만 명)을 돌파했고, 14일까지 120만 명을 동원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 평점에서는 “위아래 양옆에서 노이로제 걸리게 만드는 지옥의 사운드” “윗집에 이 영화표를 끊어주고 싶다”는 댓글이 1000여 건의 공감을 얻었다.

영화 ‘괴기열차’

이달 초 개봉한 영화 ‘괴기열차’의 주요 배경은 지하철이다. 유튜버 다경(주현영)이 끔찍한 사건이 잇달아 벌어진 광림역의 비밀을 파헤치며 벌어지는 사건을 그렸다. 가상의 지하철역과 더불어 취객이나 노숙자 등 늦은 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인물들을 곳곳에 배치해 옴니버스 형식으로 을씨년스러운 도시를 표현했다.

이 외에도 ‘주차금지’는 이웃 간 주차 시비로 인한 갈등과 직장 내 괴롭힘을 다뤘고, 오는 9월에는 집 안을 비추는 홈캠을 통해 낯선 존재를 목격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홈캠’이 개봉된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각박한 세상 속, 사소한 상황에도 민감해지고 피해의식 또한 증가하면서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는 세태를 반영했다”면서 “판타지적인 존재로 인한 공포보다 이처럼 일상에서 접하고, 느끼게 되는 공포가 더 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안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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