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긋한 차 우리며 느긋하게 자아성찰… “불안·우울 사라졌어요”[아동권리옹호 Child First]

김린아 기자 2025. 7. 16.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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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동권리옹호 Child First
초록우산-연제구가족센터 ‘차내음’ 프로그램
5개월간 다문화 친구들과 함께
한복 입고 다례·전통문화 배워
집중 못하던 아이, 2시간 몰입
분리불안 극복 뒤 혼자 견학 등
ADHD·인성평가 긍정적 변화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부산 연제구가족센터가 마련한 ‘차(茶)내음’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동들이 지난해 11월 6일 경남 김해 금란다원에서 다도 수업을 듣고 있다. 초록우산 제공

“산만했던 아이가 요즘은 조용히 차(茶)를 우리며 화도 덜 내요.”

“단정한 자세를 배우고, 예의 바른 아이가 됐어요.”

부산 연제구에서 지난해 5개월간 진행된 ‘차내음’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동의 부모들이 전한 이야기다. 이 프로그램은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연제구가족센터가 함께 추진한 ‘하모니 외부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운영됐다. 이주배경 아동과 한국 아동이 함께 다례를 배우며 한국 전통문화를 익히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시간이 이어졌다.

이 프로그램에는 총 14명의 아동이 참여했다. 아이들은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다례 시간마다 찻잎을 직접 우리고, 차를 따르며 예절과 마음가짐을 익혀 나갔다. 손끝으로 보드라운 찻잎을 만지며 기다림의 미학을 배운 아이들은 조용한 찻자리에서 자연스레 스스로를 돌아보는 법을 배웠다.

센터에서는 총 17회의 수업이 진행됐다. 다례 전문 강사와 ‘일희다회’ 자원봉사자들이 수업을 도우며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봤다. 경남 김해 금란다원을 찾아간 현장 수업에서는 아이들이 실제 다원을 체험하며 다도 문화를 더 깊이 이해하는 기회를 가졌다. 매주 가정으로 전달된 찻잎 덕분에 아이들은 집에서도 부모님께 차를 올리며 배운 내용을 실천에 옮겼다.

다례 수업과 함께 운영된 ‘인성UP·집중력UP’ 프로그램도 참여 아동의 정서 발달에 큰 역할을 했다. 인사법, 친구와의 대화법, 철학동화 읽기 등으로 구성된 수업은 아이들에게 자기조절 능력과 배려심을 길러줬다.

아이들의 변화는 뚜렷했다. 프로그램 전후로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와 인성 평가 검사를 진행한 결과, 불안·우울·과잉행동·사회관계 항목 전반에서 유의미한 변화가 확인됐다. 인성평정척도(KPRC) 사전·사후 검사에 모두 참여한 다문화 아동 4명과 일반 아동 4명은 모두 불안·우울·과잉행동 등 항목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보였다. 불안지수 100점 중 70점으로 높은 불안도를 보였던 다문화 가정의 A 아동은 프로그램 참여 후 55점으로 안정됐다. B 아동의 과잉행동 지수는 68점에서 51점으로 내려갔다.

ADHD가 심해 약물 없이는 집중이 어려웠던 한 아동은 차분히 두 시간 넘는 수업에 몰입하게 됐다. 학교에서 전학 권유까지 받았던 이 아이는 차내음 수업에 참여하며 학교생활도 많이 개선됐다. 분리불안이 심해 엄마가 옆에 없으면 울곤 하던 아이는 혼자서 김해 다원 견학을 갈 정도로 단단해졌다.

프로그램 막바지인 11월, 아이들은 뉴부산데이케어센터를 찾아 어르신들에게 다례를 시연하고 차를 대접하는 재능기부를 펼쳤다.

아이들은 부모와 지역 주민 50여 명 앞에서 직접 다례를 시연하며, 그동안 배운 차문화를 자신만의 목소리로 소개했다. 차를 따르고, 고개를 숙이며 건넨 찻잔에는 단순한 예절 이상의 따뜻한 마음이 담겼다.

한편,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내면의 상처를 마주한 아이도 있었다. 아버지를 여읜 한 한부모 이주배경 아동은 차를 내리는 과정 속에서 “이제는 아버지 이야기를 먼저 꺼낼 수 있어요. 이 차를 아버지께 드리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작은 찻잔이 아이의 마음을 여는 문이 된 셈이다.

참여한 아동과 학부모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았다. 참여 아동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 만족도 조사를 진행한 결과, 평균 점수는 5점 만점에 4.95점을 기록했다. 부모들도 아이들의 변화를 반겼다. 일부 부모는 “불안해서 울기만 하던 아이가 발표하기 위해 스스로 손을 든다” “집에서도 정중한 말투를 사용하려고 노력한다”며 달라진 아이의 모습에 놀라워했다. “많이 산만했던 아이가 차내음 수업 이후 화를 참으려 노력하고 있다. 학교생활도 한결 편해졌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연제구가족센터는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예술 기반 장기 프로그램 필요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20회는 너무 짧았다”는 보호자들의 요청도 이어졌으며, 센터는 향후 예산 확보 시 유사 프로그램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역시 2025년 ‘하모니’ 사업의 지속을 희망하고 있다.

문화일보 - 초록우산 공동기획

김린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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