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광기’를 이해하기 위해 [새로 나온 책]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의 아주 짧은 역사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교유서가 펴냄
“팔레스타인은 결코 사막이 아니었고,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유랑인이나 원시인이 아니었다.”
피로 얼룩진 이스라엘의 과거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이스라엘 역사학자의 책. 저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기원을 이해하려면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설명은 이렇다. 19세기 어느 날, 안전한 정착지를 꿈꾸던 시온주의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땅에 발을 디뎠다. ‘정착민’ 신분의 시온주의자들은 ‘원주민’ 격인 팔레스타인인을 유랑민이라 묘사하며 팔레스타인 문화를 차차 지워나갔다. 이스라엘인은 영국의 묵인과 미국의 지원 덕분에 세를 키웠다. 팔레스타인인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이슬람 근본주의에 길을 내주었다.
저자는 2023년 10월 이스라엘 국경을 급습한 하마스 투사들은 ‘이스라엘을 통해 폭력의 언어를 배운 젊은이들’이라며 글을 맺는다. 장장 두 세기 동안 종족 청소에 시달렸다면 저들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는지 고려해볼 필요는 있다는 의미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 ‘증오의 악순환’을 빠르게 이해하고 싶다면 추천한다.

그냥 우리: 미국의 대화
클로디아 랭킨 지음, 양미래 옮김, 플레이타임 펴냄
“나는 마침내 해버렸다. 질문을 던진 것이다.”
미국 인종차별 역사에서 의미 있는 몇몇 변곡점을 꼽아본다면, 2020년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빼놓기 어렵다. 흑인 남성이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목숨을 잃었고, 이에 분노한 시민 수천 명이 거리로 나왔다.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구호가 울려 퍼지고 버락 오바마가 두 차례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백인 사회는 미국 내 인종차별이 ‘종식’되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흑인이자 여성인 저자는 백인 기득권층의 ‘섣부른’ 선언에 이의를 제기하며, 여전히 교묘하고 노골적인 방식으로 ‘인종 구분 짓기’가 횡행한다고 말한다. 더욱 예리해진 차별과 혐오, 그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 ‘인종’을 주제로 백인과 나눈 대화를 기록했다. 이야기는 대부분 실패로 끝나지만, 꿈틀대는 미래에 대한 욕망은 어쩔 도리가 없다.

여기 이렇게 존재하고 있어
베튤 지음, 안온북스 펴냄
“경계 안을 드나들 여지가 있는 탐구자이자 경계의 안팎에 대해 발화할 수 있는 번역가.”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의 얼굴에 대한 인상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상한 방식으로 죄의식을 느끼게 하는 장소에서 작가는 적은 소득 탓에 비자를 겨우 6개월 연장받았다. 한국에 머물기 위해서는 ‘가난할 권리’조차 없었다. 튀르키예 독재정권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아버지를 둔 이상 거기로 돌아갈 권리 또한 없다. 작가는 튀르키예에서 태어났지만 여섯 살에 한국으로 이주해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한다.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했고 때때로 연기를 하고 글을 쓴다. 그렇게 이주민, 여성, 사회학 연구자, 배우, 프리랜서를 오가며 ‘경계에 있다’. 그 경계 안팎의 이야기에 대해 썼다. 작가는 자신의 ‘발화가 징징거림이 되지는 않았으면’ 하고 바랐지만 ‘실존하는 고통을 징징거림으로 명명하는 스스로의 검열에 스스로가 상처받았다’라고도 썼다.

21세기 제국의 정치와 종교
정태식 지음, 한울아카데미 펴냄
“정치와 동맹을 맺은 종교는 더 이상 종교가 아니고 주술로 전락한 컬트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와 종교의 상호작용을 연구해온 정치·종교사회학자가 쓴 책이다. 민간신앙과 개신교 극우가 정치와 연관을 맺는 때에 맞춰 그 쟁점을 짚었다. 주술은 종교와 다르다. 주술은 신을 움직여 개인의 이득을 취하려 하고, 종교는 만인을 위한 이타적 보편주의를 추구한다. 정치와 야합한 종교 세력은 주술이 된다. 권력과 영리를 위해 타인을 밀어낸다. 초점은 ‘제국’이라 불리는 국가에 맞추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종교관, 종교 정책을 주로 다룬다. 종교를 국가주의 아래에 편입해 이용하려는 권력자들의 책략을 읽을 수 있다. 지난 미국 대선과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몽’을 지켜보는 다른 관점을 얻게 된다.

우리는 작가를 출판합니다
지크프리트 운젤트 지음, 한미희 옮김, 유유 펴냄
“작가는 출판사와 출판인이 존재하는 이유다.”
독일 출판사 주르캄프는 ‘독일 지성의 광장’이라 불린다. 1950년 설립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 출판사에서 책을 낸 작가·지식인들의 이름을 보면 이 말을 금세 수긍할 수 있다. 헤르만 헤세, 브레히트, 아도르노, 베냐민, 하버마스, 페터 한트케 등등. 지은이는 페터 주르캄프의 후임으로, 이 출판사를 반석 위에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출판인이다. 그는 역사에 남은 책들이 출간된 이야기를 편집자의 시선에서 기록했다. 헤세, 릴케, 브레히트, 로베르트 발저 등이 편집자들과 어떻게 함께 일을 했는지, 출판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힌다.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을 운영하는 일과 사회적 의미를 제시하는 책의 역할 사이에서 느끼는 갈등도 고백한다.

인공지능이 가르칠 수 있다는 착각
실천교육교사모임 기획, 김성우 외 지음, 우리학교 펴냄
“과학기술의 발달로 아이들이 반드시 습득해야 할 기능을 되레 상실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대담을 엮은 책이다. 응용언어학자, 철학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초등 교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했다. AI 디지털교과서가 소재다. 장밋빛 전망을 좇아 막대한 예산을 들였지만 교육계와 학부모, 학생들 사이에서는 의구심이 가시지 않는다. ‘인공지능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제 이론이 별로 없다. 철학자 김재인 교수는 그러나, ‘인공지능 없이도 무언가 할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야 인공지능 활용 능력 또한 올라간다는 것이다. 김현수 정신과 전문의는 ‘인공지능이 데이터를 통해 키운 아이’는 지금까지의 인간과 다를 수 있다고 말한다. 관계 맺기를 배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입말을 살려 읽기 쉽고 생각할 거리도 많다.
시사IN 편집국 editor@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