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건축] 설계공모,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나는 서울의 대형 건축사사무소에서 13년을 일했고, 이후 천안으로 내려와 지역 건축사사무소에서 6년 간 근무했다. 그리고 이제 내 이름을 내건 사무소를 연 지 2년째 되어간다. 지역과 함께 호흡하며 설계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막상 현실의 벽은 예상보다 훨씬 높았다. 그중 가장 높고 두꺼운 벽은 바로 '공공건축 설계공모'였다.
공공건축은 지역의 얼굴이자 공동체의 거점이다. 그 공간을 설계하는 기회를 얻기 위해 수차례 공모에 도전했지만, 결과는 반복된 실패였다.
설계공모는 모두에게 열려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대형 사무소나 수도권 기반의 사무소에 유리한 구조다. 수주 가능성은 극히 낮지만 설계공모에 참여하려면 처음부터 수백에서 수천만 원의 보고서 제작비용과 출력비 등을 감수해야 한다. 단 한 번의 제출을 위해 수일에서 수주의 작업과 자원이 투입되며 결과는 탈락이라는 한 줄의 통보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 같은 소규모 사무소는 인력도, 시간도, 자본도 턱없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지역에서 설계공모를 준비하기에는 기반 여건 자체가 열악하다. 공모 도서를 구성하는 데 필수적인 CG 제작, 보고서 디자인, 모델링 작업 등에서 협력업체를 수급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전문 인재를 구하기 어렵고 외부 업체를 쓰려면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결국 대부분의 지역 건축사들은 최소한의 인력으로 비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결과물의 완성도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당선 가능성과도 멀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설계공모에서 가장 괴로운 것은 '기회조차 갖기 어렵다'는 점이다. 내가 아무리 지역의 골목을, 사람들을, 마을의 흐름을 알고 있어도, 그게 평가에서 반영되긴 어렵다. 심사위원 다수가 수도권 출신으로 구성되는 현실에서 지역 맥락에 대한 이해는 설계안의 '디자인'보다 후순위로 밀린다. 실력으로 승부하고 싶지만 실력을 보여줄 기회가 없다면 그조차 공허한 말이다.
그렇다고 민간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결국 지역 건축사는 공공 프로젝트에서마저 밀려나며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특히 나처럼 이제 막 개업한 건축사들은 더욱 그렇다. 지역을 위해 일하고 싶어도 시스템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다행히 최근 국토교통부와 일부 지자체에서 설계공모 제도 개선을 위한 움직임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익명 심사 확대, 지역 심사위원 참여 비율 강화, 일정 규모 이하 공공건축에 대한 '지역제한형 공모' 확대 등이 그것이다. 일부 지자체는 사전규격공개와 지역 건축사 대상 설명회를 운영하며, 접근 장벽을 낮추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국토부는 신진 건축사를 위한 멘토링과 설계비 인센티브 도입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제도는 변화의 방향을 갖고 있지만 그 속도는 더딘 편이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명분 아래 열려 있지만, 실제로는 들어가기 어려운 문이라면 그 문은 닫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건축사가 지역의 공공건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보다 강력한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
지역 건축사는 단순히 설계도면을 그리는 기술자가 아니다. 주민과 직접 마주하고, 지역의 문제를 현장에서 느끼며, 그 안에서 해법을 찾아가는 실천자다. 행정기관, 마을 공동체, 시공사와의 협업 과정에서 쌓인 경험은 도면 그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지역 기반의 설계 역량은 단순히 '규모'로 판단할 수 없는 고유한 자산이며 제도가 이 가능성을 인정하고 키워줄 수 있어야 한다.
지역의 풍경과 사람, 삶의 흐름을 설계로 담아내고 싶다. 도시와 마을의 공공공간이 외지인의 시선이 아닌 지역을 이해하는 사람의 손을 거쳐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설계공모 제도는 그런 기회를 열어주는 제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동기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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