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같은 거 신경 안 쓴다"던 대통령의 최후

이상배 정치부장 2025. 7. 16.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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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해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날이었다.

미국 대통령이 청와대를 찾아온 날 검찰이 현직 대통령의 핵심 참모 측을 압수수색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

이에 대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윤석열 전 대통령은 "우린 정치 일정 같은 거 신경 안 쓴다"고 했다.

주요 대선 후보 중 가장 정치권과 거리가 멀었던 윤 전 대통령은 그렇게 '정치의 심장부' 대통령실의 주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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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 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서울=뉴시스] 사진공동취재단 = 윤석열 전 대통령이 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직권남용 등 혐의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마친 뒤 대기 장소인 서울구치소로 이동하기 위해 법원을 나서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의 '정점'으로 조은석 특별검사가 이끄는 내란 특검팀에 구속영장이 청구된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월 18일 내란우두머리 등 혐의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지 172일 만에 재구속 기로에 서게 됐다. 2025.07.09. photo@newsis.com /사진=

#1. 2017년 11월7일, 서울중앙지검이 전병헌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의 측근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공교롭게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해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날이었다.

미국 대통령이 청와대를 찾아온 날 검찰이 현직 대통령의 핵심 참모 측을 압수수색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 이에 대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윤석열 전 대통령은 "우린 정치 일정 같은 거 신경 안 쓴다"고 했다.

검찰 출입기자 시절 옆에서 지켜본 윤 전 대통령은 '여의도 정치'를 혐오했다. 아니 최소한 그렇게 보이려고 했다. 국회 얘길 하면 일부러 관심 없는 척 했다. 대학 동문 등 본인과 친분이 있는 일부 정치인 얘기가 나올 때만 반응을 보였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윤 전 대통령은 조국 사건 등 살아있는 권력에 맞선 수사를 이끌며 '보수의 영웅'으로 급부상했다. 정치에 무관심한 듯한 그의 태도는 오히려 지지자들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했다.

실제로도 의회 정치에 무지한 국회의원 '0선'이었지만 정치 혐오증에 빠진 국민들은 오히려 그런 신선함을 높이 샀다. 주요 대선 후보 중 가장 정치권과 거리가 멀었던 윤 전 대통령은 그렇게 '정치의 심장부' 대통령실의 주인이 됐다.

문제는 집권 이후 시작됐다. 윤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선수는 전광판을 보지 않는다"며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민심을 살피지 않고 마이웨이를 고집한 결과는 결국 총선 패배였다.

국회의원들에겐 일상인 상대 정당과의 대화가 윤 전 대통령에겐 불편했다. 제1 야당 대표를 협상의 파트너가 아닌 범죄자로 대했다. 야당 당수와 마주 앉기까지 무려 2년이 걸렸다.

비(非)정치인 출신 대통령의 기행은 비상계엄에서 극에 달했다. 국회에 군을 투입하는, 국회의원 출신이라면 상상도 못할 지시를 했다. 스스로에겐 두 번의 구속을 가져온 치명적 실책이자 우리 헌정사에도 깊은 상처를 남긴 선택이다. 만약 윤 전 대통령이 오랜 기간 여의도에 몸담은 직업 정치인이라도 그랬을까.

#2. 주류 정치권 밖의 인물을 끌어와 얼굴로 내세우는 건 조선시대부터 있던 전통이다. 서인이 1623년 인조반정 이후 조선 후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건 '숭용산림'(崇用山林) 정책의 덕이 컸다.

재야의 학식과 덕망이 뛰어난 선비인 산림을 영입해 등용하는 숭용산림은 반란으로 집권한 서인들의 도덕적 권위와 정당성을 채워줬다. 그렇게 발탁돼 활약한 인물들이 송시열과 김장생, 김집 등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임금 빼곤 가장 자주 등장한다는 우암 송시열은 '송자'(宋子)로 불릴 정도로 학문이 높았다. 문제는 현실 정치인으로선 너무 원칙주의적이고 강경했다는 점이다.

서인 노론의 영수였던 송시열은 상대 진영인 남인 세력을 '적신'(賊臣)으로 낙인찍고 타협을 거부했다. 자신과 학문적 견해가 다르면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고 비난했고, 아무리 오랜 친구라도 절교했다. 그러다보니 조정엔 송시열의 적이 늘어만 갔다.

송시열의 운이 다한 것은 불같은 성정의 임금, 숙종 때를 맞아서다. 1689년 숙종이 총애하던 장희빈이 아들을 낳자 숙종은 그를 원자(왕위 계승자)로 삼으려 했다. 이에 송시열 등 서인은 인현왕후가 후사를 볼 수 있는데도 후궁의 자식을 원자로 삼으면 안 된다고 막아섰다.

이에 분노한 숙종은 송시열을 제주도로 유배보내고 서인 대신 남인을 대거 등용했다. 이른바 기사환국(己巳換局)이다. 송시열에 맺힌 것이 많았던 남인들은 유배 정도로 만족하지 않았다. 결국 송시열은 두 번 다시 한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대통령 중심제인 대한민국이지만 삼권분립 체제에선 대통령이 국회의 도움없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국회의 생리를 체득하지 못한 대통령이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다. 비정치인 대통령이란 실험은 지난 3년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상배 정치부장 ppark14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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