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사는 세상] “장애는 또 다른 나…선한 영향력 전하는 사람 되고파”
초등학교 6학년 때 청각장애 알게 돼
활발한 성격에도 충격 커 주변에 말 못해
장애인 연예인들 보며 도전할 용기 얻어
어릴적 꿈꿨던 아나운서로 진로 전환
발음 교정 위해 입꼬리 피나도록 연습
부단한 노력 끝에 KBS 앵커에 ‘합격’
“장애인들 혼자가 아니란 걸 느꼈으면”
“목소리에 한번 더 귀 기울이겠습니다”


장애를 숨기기 급급했던 한 아이는 전 국민 앞에서 장애를 드러내고 국내 최초로 청각장애인 앵커가 됐다. 매주 월∼금요일 정오에 KBS1에서 방영되는 ‘뉴스 12’ 속 생활뉴스 코너를 진행하는 노희지 앵커(27) 이야기다. 뉴스를 마치고 난 노씨를 서울 영등포구 KBS 신관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노씨는 청각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어릴 땐 단순히 언어 발달이 느린 줄로만 알았다. 세살 때부터 7년간 언어 치료를 받은 덕에 말은 잘할 수 있게 됐지만 문제는 듣기였다.
“멀리서 나는 소리를 잘 듣지 못했어요. 친구들이 뒤에서 저를 불렀는데 계속 못 들은 거예요. 한참 뒤에야 돌아보니 반 아이들 전부가 저를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보고 있었죠. 얼굴이 화끈거렸어요.”
성격이 활발한 노씨는 어려서부터 발표에 적극적이고 학급 반장을 맡기 좋아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다른 학생을 불렀음에도 자신을 부른 줄 알고 나서서 말한다거나, 학급 회의를 진행하며 친구들의 발표 내용을 칠판에 엉뚱하게 적는 일이 잦았다. 이런 그에게 붙은 ‘사오정’ ‘4차원’이라는 별명은 어린 나이에 큰 상처가 됐다. 결국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님께 청력검사를 받아봐야겠다고 먼저 말했다. 진단 결과는 청각장애 3급. 남들과 달랐던 이유에 대한 의문은 풀렸지만 장애를 받아들이긴 어려웠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는 마음이 들었죠. 저는 물론이고 부모님도 큰 충격을 받았어요. 딸에게 문제가 있을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애써 외면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중학생 때부터는 보청기를 끼고 생활했지만 친한 친구에게도 청각장애가 있다는 건 말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에게 장애를 터놓을 수 있게 된 건 성인이 된 후 청각장애인 모임에 나가고부터다. 같은 상처가 있는 친구들을 만나며 ‘나 혼자만 이런 건 아니구나, 장애라는 게 나의 또 다른 정체성이 될 수 있구나’ 하고 깨달았단다.
노씨는 광고 기획자라는 꿈을 안고 대학에서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했다. 학교에서 속기사와 장애학생 도우미를 배정해준 덕에 학업에도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수업을 들으며 다른 사람과 협업하는 일은 아무래도 잘 맞지 않겠다고 생각했고, 졸업 후 진로를 두고 방황했다. 그러던 중 청각장애인으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 ‘빅오션’과 다운증후군을 앓으면서 배우로 활동한 정은혜 작가를 보며 무언가에 도전해 이뤄낼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어릴 적 잠시 꿈꿨던 아나운서가 떠올랐고 KBS에서 2년마다 장애인 앵커를 선발하는 것도 알게 됐다. 그래서 지난해 10월부터 아나운서 학원에 다니며 채용 시험을 준비했다. 발음 교정을 위해 입에 펜을 물고 연습하느라 입꼬리에서 피가 날 정도였다.
부단히 노력한 끝에 노씨는 올해 3월 KBS 장애인 앵커 채용에 합격했다. 5월부터 주 5일간 일상과 밀접한 생활 정보를 시청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얼마 전 방탄소년단 멤버 슈가가 자폐스펙트럼장애 아동 치료센터를 설립하기 위해 50억원을 기부했다는 뉴스를 소개했어요. 어렸을 때 언어 치료센터를 다니던 기억이 떠오르며 아이들과 부모님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될지 생각하니 울컥하더라고요. 저도 선한 영향력을 전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죠. 이런 뉴스를 장애인 당사자가 다룬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씨는 평소 양쪽 귀에 보청기를 착용하지만 뉴스 진행 때는 청력이 좀더 나은 오른쪽에 인이어(방송용 이어폰)를 최대 음량으로 틀고 낀다. 보청기는 왼쪽에만 착용하는 까닭에 방송 중에는 자신의 목소리를 인지하기 어렵고, 이 때문에 평소보다 발음이 부정확할 때도 있다. 그는 더 정확한 발음으로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퇴근 후 학원에 다니며 발음과 발성, 뉴스 리딩 연습을 계속하고 있다.
“저를 보며 장애인분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끼고 위로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나만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에 힘들었거든요. 돌아보니 장애를 드러내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 지금의 제가 될 수 있었어요. 앞으로 우리 사회가 장애와 장애인에 대해 더 큰 포용력을 갖추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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