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국영 탄광 문 닫았는데…" 대체 산업 기약 없어 답답
의료 클러스터 등 대체산업 감감무소식
"정부, 대체산업 대책 내라" 천막 농성

"살아 있지만 삶의 방식은 보장받지 못한 곳이다."
지난 8일 강원 삼척시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 본관 앞 천막농성장에서 만난 김광태(59) 대체산업쟁취 대한석탄공사 폐광반대 공동투쟁위원장은 자신과 지역민이 처한 현실을 이렇게 표현했다. 89년 동안 이들이 기대어 살았던 탄광(도계광업소)이 지난달 30일 문을 닫았지만, 대체산업 추진은 기약 없는 답답함을 토로한 것이다. 그는 "화순·장성광업소와 달리 석탄을 충분히 더 캘 수 있는 도계광업소 폐광을 정부가 밀어붙였다"며 "수없이 목이 터져라 요구한 생존 대책이 지연되는 사이 지역소멸 위기에 처했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김 위원장의 말처럼, 1980년대 5만 명 넘던 도계읍 인구는 지난해 말 8,808명까지 줄었다. 그나마 지역경제를 떠받치던 탄광이 끝내 문을 닫았으니 지역 존폐를 걱정해야 할 처지란 하소연이다. 정부가 채탄량을 줄이는 석탄산업 구조조정에만 몰두한 결과라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
김 위원장 등 주민이 모여 지난해 12월 투쟁위원회를 꾸리고 일곱 달 넘게 천막농성을 이어가는 이유다. 이들은 만족할 만한 정부 대책이 나올 때까지 천막을 떠나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다. 박형용(57) 도계읍번영회 수석부회장은 "1989년 석탄산업합리화 이후 정부 정책은 감산 등 뺄셈만 이어졌을 뿐, 지역을 살리려는 덧셈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탄광이 아니면 무엇으로 먹고 살란 말인가. 마을 중심지인 도계역 광장과 주변 모습도 탄식이 절로 나오게 한다. 이곳은 역세권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한산했다. 길게 늘어선 택시는 언제 올지 모를 손님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역사 맞은 편 도계전두시장의 20여 개 상점도 개점휴업 상태다. 지하 1,000m 갱도에서 나와 식당과 주점에서 고단함을 달래던 광부로 북적이던 모습은 옛 사진 속 추억이 돼 버렸다. 한 70대 상인은 "하루 종일 우두커니 가게 밖을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갈 때가 많다"고 했다.
갱구에서 나온 무연탄을 모아둔 저탄장에서 날아온 검은 재가 날아들어 '까막동네'라 불린 전두1리 주민들도 이주를 준비 중이다. 이용모(61)씨는 "이미 많은 선후배가 청춘을 바친 광산을 떠났다"며 "아직 일을 그만둘 나이가 아닌데 어디에서 뭘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털어놨다.

이 같은 호소가 과장이 아니란 점은 경제 지표로도 드러난다. 15일 강원도에 따르면 89년 만에 문을 닫은 도계광업소 폐광으로 삼척시와 지역사회가 입게 될 피해는 5조3,000억 원으로 추산됐다. 지난해 장성광업소가 문을 닫은 태백시(3조6,000억 원)보다 2조 원 가까이 많은 규모다. 도계읍의 석탄산업 의존도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직·간접 실업 규모는 약 1,600명으로 도계읍 인구의 18%에 이른다.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광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었지만, 지역에서 이를 대체할 산업은 제시되지 않았다. 폐광 3개월 전에야 정부는 직무전환 교육에 나섰지만 효과는 거의 없었다. "불과 몇 개월 교육받고 다른 직업을 찾으라는 게 말이 되느냐"는 볼멘소리가 쏟아진다.
현재로선 중입자 가속기 기반 의료 클러스터가 가장 실현 가능성 큰 대책으로 거론된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강원도가 도계읍 흥전리에 12만 ㎡(약 3만6,300평) 규모로 신설을 추진하는 클러스터는 국비 등 3,167억 원을 투입하는 국책사업이다. 투쟁위와 도계읍 주민들은 폭염이 한창이던 지난달 30일 세종시를 찾아 뜨거운 아스팔트 바닥에서 삼보일배(三步一拜)를 하며 정부에 사업 추진을 촉구했다. 그럼에도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 발표는 마감시한인 지난 9일을 넘긴 채 감감무소식이다. 김 위원장은 "의료 클러스터는 지역소멸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며 "예타 통과 지연은 폐광지역 주민을 우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밖에 투쟁위는 △폐광지 면세점 △대체산업 정착까지 도계광업소 채굴을 유지하는 가행탄광 특구 지정 △폐갱도 수몰 반대 △석탄공사 자산의 지방자치단체 기부채납 등 지역경제 회생 대책을 정부에 요구했다. 이원학(50) 강원연구원 연구위원은 "폐광이 현실이 됐으나 대책이 늦어 지역소멸 위기가 닥치고 말았다"며 "이제라도 정부가 대체산업 추진에 속도를 내는 게 폐광지를 위한 유일한 대책"이라고 진단했다.

삼척=글·사진 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판도라 상자' 법사폰 확보한 특검…"하늘님께 청원" 사업가도 압수수색 | 한국일보
- "가둔 후 1000회 성매매 강요"... 36년 차 형사도 놀란 가해자들 정체 | 한국일보
- 정은경 복지 장관 후보 "남편 마스크·손소독제 주식, 직무 관련성 없음 판단 받았다" | 한국일보
- 사유리 "어렸을 때부터 귀신 잘 봐" 고백... 건강 악화 이유 알고 보니 | 한국일보
- 고3 수험생 얼굴에 니킥… 주차장에서 '6명 무차별 폭행' 중년男 | 한국일보
- 군인 아들 마중 가던 엄마 사망… 음주운전 20대, 무면허였다 | 한국일보
- 부패해서야 발견된 '대전 모자'…이번에도 작동하지 않은 복지망 | 한국일보
- 배우 강서하, 암 투병 끝 사망… 향년 31세 | 한국일보
- 신지, 예비 신랑 문원에 '남편' 공개 언급... "매일 황제 밥상 차려줘" | 한국일보
- 남아 엄마들이 한번씩 하는 고민... '포경수술, 시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 |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