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직필]‘짝퉁 잡스’는 산업정책의 적이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2025. 7. 15.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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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의 주요 경제정책은 경기 회복을 위한 재정정책, 코스피 5000으로 상징되는 자본시장 활성화 전략, 인공지능(AI)을 중심축으로 한 산업정책 등이다. 앞의 두 정책은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상법 개정을 통해 이미 시동이 걸렸고, AI 분야는 ‘글로벌 AI 3강 도약’을 목표로 이제 시작이다. 과학기술 중심의 산업정책 자체는 바람직하다. 특정 산업의 성장을 정부가 주도하는 방식은 한때 구시대적 발상으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미국·유럽 등 주요 선진국들도 다시 산업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유는 분명하다. 저성장과 생산성 정체라는 구조적 문제를 돌파할 수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산업정책이 실패하는 가장 흔한 이유는 정경유착과 과장된 서사다.

21세기 들어 선진국 전반에서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는 현상은 이미 익숙한 이야기다. 한국의 잠재성장률 또한 하락세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점은, 이 시기가 바로 디지털 기술이 급격히 발전한 시대라는 사실이다. AI, 빅데이터, 로보틱스, 블록체인 등 혁신적 기술이 속속 등장했지만, 이들이 실제로 거시적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증기기관, 전기, 컴퓨터처럼 과거 산업혁명을 주도한 일반목적기술에는 일정한 공통점이 존재한다. 다양한 산업에 적용 가능한 범용성, 다른 기술·조직과 결합해 시너지를 내는 상호보완성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오늘날 디지털 기술들이 과연 이 기준에 부합하는지를 두고는 평가가 엇갈린다. 나는 챗GPT에 매일 감탄하지만 모든 디지털 기술에 감동하지는 않는다. 산업혁명을 단숨에 이뤄내겠다고 하는 ‘짝퉁 스티브 잡스’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가상자산 산업은 한때 기술 혁신의 상징처럼 떠올랐지만, 그 이면에는 사기와 로비가 결합된 구조적 문제가 있었다. 가상자산 거래소 FTX는 고객 자산을 무단 유용하면서도 ‘규제 친화적 거래소’라는 이미지를 내세워 투자자와 당국의 경계를 무장해제시켰다.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는 양당을 넘나드는 정치 기부와 로비로 규제 설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고, 결국 사기·횡령 혐의로 25년형을 선고받았다. 테라·루나는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이라는 복잡한 서사로 수십조원의 피해를 유발했고, 창업자 권도형은 싱가포르·미국·한국 등 여러 관할권에 법인을 분산시켜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는 자금세탁방지 규정을 위반하고 각국의 금융 규제를 조직적으로 회피했고, 그 결과 창업자 자오창펑이 막대한 벌금과 함께 CEO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대체불가토큰(NFT)은 디지털 자산에 고유한 소유권을 부여할 수 있다는 기술적 특성 덕분에 예술, 게임, 패션 등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하지만 ‘창작자 경제’와 ‘탈중앙화’라는 이상적인 담론 뒤에는 사기가 끊이지 않았다. 가격 급등, 프로젝트 해체, 자금 이탈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도망형 사기가 반복됐고 투자자 보호 장치는 부재했다. 대표 사례는 2021년의 ‘이볼브드 에이프스(Evolved Apes)’ 프로젝트다. 유인원 캐릭터 기반의 게임을 만든다며 약 280만달러를 모았지만, 익명 개발자 ‘악당 유인원’은 아무런 개발 없이 자금을 인출한 뒤 잠적했다. 웹사이트는 폐쇄됐고, 남은 건 기능 없는 이미지뿐이었다. 책임을 물을 주체가 없는 탈중앙화 구조는 사후 구제도 어렵게 만들었다.

이처럼 ‘혁신’이라는 서사는 때로 규제를 무력화시키며, 시장에 구조적 위험을 증폭시키는 도구로 악용되기도 한다.

‘짝퉁 스티브 잡스’들을 경계해야 한다. 이들은 과도한 낙관과 자기 우월감, 확신에 찬 태도로 무장한 채 상반된 의견을 무시하고 토론보다는 서사를 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테라노스라는 기업의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스는 그 전형이었다. 단 몇 방울의 혈액으로 수백 가지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는 기술을 내세워 ‘의료 혁신’을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허상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기업가치는 한때 90억달러에 달했고, 수년간 언론과 투자자의 찬사를 받았다. 이처럼 허술한 기술이 의심 없이 성장한 데는 후광이 크게 작용했다. 홈스는 ‘제2의 잡스’라는 이미지를 활용해 정계 거물들을 이사회에 영입했다. 헨리 키신저, 조지 슐츠, 윌리엄 페리, 제임스 매티스, 샘 넌 등 이름만 들어도 무게감 있는 전직 미국 국방·외교 관료들이 진실은 모른 채 신뢰의 방패가 되어주었다.

허상이 신화가 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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