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미 협상카드 된 농산물 개방, 농민은 희생만 해야 하나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농축산물 수입 확대를 미국과의 관세 협상카드로 쓸 가능성을 내비쳤다. 관세 협상 실무를 총괄하는 여 본부장은 지난 14일 언론 브리핑에서 “농축산물은 미국뿐 아니라 동남아 등 어떤 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진행해도 고통스럽지 않은 부분이 없다”며 “농축산물 부분의 경우 우리가 전략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민감한 부분은 지키되, 그렇지 않은 것은 협상의 전체 큰 틀에서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미국 농산물 개방을 확대하고, 그 대가로 자동차·철강·반도체 등 주력 산업 관세 인하를 관철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금도 위기감 큰 농민과 농업이 언제까지 통상 협상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 건지 우려스럽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일본의 쌀 시장 개방을 압박하듯이 미국은 각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농산물 수입 확대를 밀어붙이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수입 허용, 쌀 구입 확대, 감자 등 유전자변형작물(LMO) 수입 허용, 사과 등 과일 검역 완화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요구들은 미 무역대표부(USRT) 보고서 등에서도 이미 나온 것들이다. 협상 테이블이 본격화되기에 앞서 통상 책임자가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는 건 성급하다. 농산물 개방에 완강하던 농정당국까지 소고기와 사과 등 일부를 내주는 방향을 용인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니, 정부가 너무 쉽게 농업을 포기하는 것 아닌가.
동맹국에도 가차 없이 청구서를 내미는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에 맞서 정부로서는 관세 협상이 난제일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농업을 협상의 수단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농축산물 분야는 식량 자급률과 직결돼 있고, 가뜩이나 사상 최대의 농가 부채에 빠진 농민들의 생계·미래가 달린 문제다. 유전자변형작물 수입 역시 국민적 거부감이 크고, 식품안전 우려도 남아 있다. 내부적 소통과 합의를 중시해야 한다. 농민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통상 협상의 전체 틀 속에서 이해를 구할 게 있으면 보상·미래 대책과 함께 자세히 설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가 간 협상은 상호 호혜와 이익 증진을 목표로 해야 한다. 농업이 가진 민감성을 미국에 최대한 설명하고 과도한 요구에 대해선 당당히 맞서야 한다. 일방적 압박을 거부할 명분도 있다. 이미 한국은 미국 농산물 5대 수입국이고 무역적자는 80억달러에 달한다. 우리 농업과 식량주권과 국민 건강을 지키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통상 협상에서 농업 문제가 뒷전으로 밀리거나 홀대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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