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지역방송 노동자들은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가 간절하다

윤유경 기자 2025. 7. 15.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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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주 '보도지침' 후 사장 임명동의제 만든 SBS, 사측 폐기 선언으로 삭제
지역민방 대주주 방송 사유화 "가장 중요한 취재 일정이 된 대주주 일정"
독립법인이지만 본사와 실질적 종속관계인 지역MBC, 법안에선 제외?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와 10개 지역민영방송 지부(CJB청주방송·G1강원방송·JIBS제주방송·JTV전주방송·kbc광주방송·KNN부산경남방송·TBC대구방송·TJB대전방송·ubc울산방송·OBS지부) 및 EBS지부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정기획위원회 앞 기자회견에서 방송3법 개정안의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 의무화 대상을 '보도 기능이 있는 모든 방송사'로, '최소한 지상파 방송사'로 확대할 것을 요구했다. 사진=윤유경 기자.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방송3법 개정안의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 조항이 '지역'과 '민영' 방송을 배제해 연일 논란이다. 해당 개정안이 공개된 직후부터 SBS와 지역민영방송사 종사자들의 반발이 이어진 가운데 MBC 중에선 서울 본사만 포함된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돼 지역MBC 비판도 잇따르고 있다.

임명동의제의 본질은 대주주가 언론에 간섭하는 구조를 법적으로 견제하는 일이다. 그간 언론계에선 대주주가 통제할 수 있는 경영진과 보도책임자 임명이 언론 사유화로 이어져 공정성을 훼손하는 고질적 문제가 지적돼왔다. 사장과 편성·제작·보도 부문 책임자 임명 시 모두 구성원들의 동의를 받으면 좋겠지만, 최소한 보도부문 책임자라도 구성원들 동의를 받자는 것이 현재 논의되고 있는 개정안의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 조항이다.

공영방송이 정치권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면 민영방송은 자본(대주주)의 간섭으로부터 독립성을 지켜야 하지만 민영이라는 이유로 제동 장치를 법적으로 규제하기 쉽지 않다. 상대적으로 견제와 관심이 부족한 비수도권 지역에선 대주주의 간섭과 횡포가 더 횡행할 수 있다. 지역· 민영방송 종사자들은 이 점을 들어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 법제화를 방송 공공성·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이자 유일한 조건으로 꼽고 있다.

대주주 '보도지침' 후 사장 임명동의제 만든 SBS, 사측 폐기 선언으로 삭제

SBS는 언론계에서 '임명동의제' 도입 선례를 만든 대표적 언론사였다. SBS 노사는 2017년 10월 국내 방송사 최초로 사장을 비롯한 편성·시사교양·보도 최고책임자 임명동의제에 합의했다. 이는 대주주의 방송 사유화를 막기 위한 장치로서 도입됐다.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가 당시 SBS의 대주주인 윤세영 SBS미디어홀딩스 회장의 '보도지침'을 폭로한 후 투쟁 끝에 도입한 장치였다.

▲ SBS 대주주와 노사가 지난 2017년 10월 '사장 임명동의제' 등을 합의했다. 사진=언론노조 SBS본부

대주주 보도지침 사건은 윤 회장이 SBS 보도본부 간부들에게 박근혜 정부를 도우라는 내용의 '보도지침'을 보낸 사건이다. 이를 폭로했던 SBS본부에 따르면 윤 회장은 보도본부 간부들에게 '대통령 지원을 받기 위해선 박근혜 정부를 좀 도와줘야 한다', '대통령에게 빚을 졌다. 혜택을 받았다'고 말했다. 윤 회장이 '보도지침' 문건을 통해 '협찬과 정부광고 유치에 적극 나서라'라고 지시한 사실도 드러났다. 2009년 4대강 사업을 비판하던 당시 환경전문기자를 윤 회장이 독대해 보도 중단 외압을 행사한 정황도 이때 폭로됐다.

[관련기사: SBS 보도지침 있나…노조 “박근혜 지원·광고영업 지시” 폭로]

[관련기사: SBS 환경전문기자, 4대강 보도 이후 외압 정황 8년만에 폭로]

▲2015년 5월20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윤세영 SBS 회장이 서울 동대문디자인프라자에서 열린 서울디지털포럼 2015 개회식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러한 대주주의 방송 사유화를 막기 위해 임명동의제가 도입됐지만, SBS는 2021년 사측이 임명동의제 폐기를 선언하면서 단협 해지를 통보했고, 약 두 달간 이어진 무단협 사태로 결국 임명동의제 범위가 축소됐다. 사장 임명동의제가 없어졌고, 임명동의제 대상이 편성본부장에서 편성국장으로, 제작본부장에서 제작국장으로 바뀌었다. SBS본부 측에서 단협은 '종잇장' 같은 존재라며 법제화를 강경하게 요구하는 이유다.

지역민방 대주주의 방송 사유화 “가장 중요한 취재 일정이 된 대주주 일정”

지역민영방송은 상대적으로 자본과 권력의 간섭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다수의 지역종합일간지, 지역방송은 지역 건설자본이 지분 매입으로 대주주 자리를 차지했고, 대주주의 전횡이 취재·편성·경영 전반에 퍼져있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방송3법 개정안이 자본의 간섭에 제일 취약한 곳을 역설적으로 배제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 결과는 방송사들이 대주주를 우호적으로 다루거나 비판적으로는 다루지 않는 방식으로 소위 '보위'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JIBS제주방송은 2019년 메인뉴스에서 대주주 사업체인 테마파크 개장에 맞춰 노골적 홍보 기사를 내보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로부터 중징계를 받았다. 이후 해당 기사를 내보냈던 보도제작본부장을 사장으로 임명해 거센 반발이 일기도 했다. 당시에도 JIBS 노조에선 경영진의 언론 사유화를 규탄하며 '사장 임명동의제'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관련기사: 대주주 홍보로 징계받은 보도책임자가 사장에?]

▲ 자사 저녁 뉴스에서 대주주 사업체를 노골적으로 홍보한 JIBS 2019년 3월30일 리포트 화면 갈무리.

G1강원방송도 2018년 대주주 SG건설이 분양하는 아파트 광고를 보도해 방심위로부터 법정제재를 받았다. 그러나 2021년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G1방송은 방심위 제재 이후에도 대주주 관련 보도를 이어갔다. SG건설 보도를 줄이되 계열사들의 긍정 보도 비중을 늘리는 사실상의 '꼼수' 정황도 보였다. 지역MBC·지역민방 노조가 결성한 사단법인 지역방송협의회 토론회에선 대주주 동정을 하루에도 몇 꼭지씩 보도하고, 대주주 친인척이 언론사 경력이 전혀 없었음에도 특채로 채용되는 사례가 등장하기도 했다.

상황은 이렇지만, 지역민영방송 중 대주주를 견제할 장치가 있는 곳은 극소수다. 지역민영방송노동조합협의회에 속한 9개의 지역민영방송 중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를 시행하는 곳은 CJB청주방송 한 곳뿐이다. CJB는 보도·편성·기술국장의 임명과 해임 시 구성원들이 투표를 하는 '임면동의제'를 갖추고 있다. KNN부산경남방송, TBC대구방송, TJB대전방송, kbc광주방송, ubc울산방송, JIBS제주방송은 상향평가를, JTV전주방송과 G1강원방송은 보도·편성 책임자 중간평가제를 실시하고 있다.

박영훈 언론노조 TBC지부장은 지난 14일 미디어오늘에 “지역방송은 인사 평가 시스템이 상대적으로 취약해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이 보도책임자 임명에 반영되기 어렵다”며 “결국 경영진·대주주 성향에 맞는 인물이 임명되는 구조적 문제가 되풀이된다. 임명동의제는 이런 한계를 막고, 지역방송의 공정성을 지키는 법적 안전장치다. 지역방송이 지역사회를 위한 공적 미디어로서 기능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근거이자 약속”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지역민영방송 종사자도 같은 날 “대주주와 관계된 행사 촬영을 위해 다른 취재 일정을 축소 혹은 취소하는 일도 빈번하다. 그날의 가장 중요한 취재 일정이 대주주의 일정이 되는 것”이라며 “대주주의 눈 밖에 나면 임원이 되더라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상황이다. 지역을 위한다는 지역방송 취지를 근간부터 흔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언론노조 ubc울산방송지부, 지역민영방송노동조합협의회는 지난해 8월 서울 강서구 마곡동 SM R&D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언론노조 ubc울산방송지부 제공.

ubc울산방송은 최대주주 SM그룹이 경영에 부당하게 간섭해 구성원들이 투쟁을 지속해왔다. SM그룹 계열사가 ubc 자회사의 아파트 분양대금을 빌려가거나, SM그룹 측 전화 한 통으로 ubc가 아무 연고도 없는 지역의 부동산을 매입하는 등 부동산 개발 관련 대주주의 경영 간섭이 지속됐다는 설명이다.

대주주의 경영 간섭은 보도 간섭으로도 이어진다. 김영곤 ubc지부장은 미디어오늘에 “SM그룹이 최대주주가 된 뒤 토요일 뉴스가 기자협회와 노조 반대에도 일방적 통보로 폐지됐다. 뉴스 시간에 대표의 지역 행사 참여 보도가 빈번하게 보도된 바도 있다”며 “'상향평가'만으로는 뉴스의 공정성과 지역성, 소외계층 조명이라는 지역방송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데 한계가 분명하다. 회사는 '국장 임명동의제 실시'라는 노조의 단협 개정 요구를 10여년 간 묵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독립법인이지만 본사와 실질적 종속관계인 지역MBC, 법안에선 제외?

방송법 개정안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 조항엔 민영방송뿐만 아니라 지역MBC도 배제됐다. 개정안에서 MBC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가 최다출자자인 방송사업자'로 규정해, 방문진이 지분 70%를 소유한 본사 서울MBC만 포함되고 법적으로 독립법인인 16개 지역MBC는 제외됐다. 이에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를 서울에만 적용하는 건 지역 차별이자 논리에도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현재 서울MBC와 16개사 지역MBC가 함께 적용받는 단협은 편성·보도·제작 담당 국장에 대한 임명동의 투표 조항을 규정하고 있다. 지역MBC 종사자들은 해당 조항이 없었다면 일어났을 일들을 우려하며 법제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양현승 언론노조 목포MBC지부장은 미디어오늘에 “박근혜 정부 세월호 참사 당시 서울MBC 사측은 조직적으로 세월호 뉴스를 방해했다. 다행히 목포MBC에선 세월호 사고를 명확히 기록하자는 보도국장이 있었기에 지역에서 기록이 가능한 상황이었고, 사실상 세월호 유가족의 창구 역할을 했다”며 “만약 목포MBC조차도 보도책임자가 인위적으로 세월호 뉴를 외면했다면 MBC 안에선 참사가 제대로 기록되지 못했을 것이다. 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하는 상황은 서울에만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단협이 있어도 사측이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광주MBC는 지난 2월 사측에서 단협에 근거한 보도본부장 중간평가에 대해 계속해 '사유서'를 요구하며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 15일 지역MBC 사옥에 걸려있던 언론노조 현수막이 철거되고, 지역MBC 연대회의 현수막으로 교체되고 있다. 사진=공영방송 지역MBC 노조연대회의 제공.

더군다나 1980년 언론통폐합 이후 서울MBC는 16개사 지역MBC 각사의 주식을 최소 51%에서 많게는 100%까지 소유한 최대주주가 됐고, 서울MBC 출신이 지역MBC 사장으로 선임되는 관행 등 실질적 종속 관계가 존재함에도 법안 적용에서 제외한 건 지역언론의 공공성과 독립성 요구를 무시하는 처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16개 지역MBC 중 목포, 충북, 춘천, 부산, 광주MBC 5개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본사 출신 인사가 사장을 맡고 있다.

지역사회가 좁기 때문에 임명동의제 필요성이 더 크다는 주장도 있다. 안병훈 언론노조 울산MBC지부장은 미디어오늘에 “지역은 특히 지역 기득권세력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기자과 PD들이 지역에서 나고 자라 자연스럽게 지역 유지들과 같이 자라온 사람들이 많다”며 “그런 사람들이 보도책임자가 되면 제대로 된 비판을 하기 어려워지는데, 서울보다 훨씬 더 심하고 취약한 구조다. 친한 정치권 인사와 연계돼 '위험하니 (비판 보도를) 빼자'는 경우도 있다. 지역사회의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 15일 지역MBC 사옥에 걸려있던 언론노조 현수막이 철거되고, 지역MBC 연대회의 현수막으로 교체되고 있다. 사진=공영방송 지역MBC 노조연대회의 제공.

지역방송의 취약한 수익 구조로부터도 보도 공정성을 지켜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안 지부장은 “지역방송사가 어렵다 보니 지역 정치권, 지자체와 연계한 사업을 진행하게 되면 제대로 된 비판을 하기 어렵다. 돈이 없으니 포기해버리는 것”이라며 “임명동의제를 통해 최소한의 견제 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 지역은 재정적으로도, 인적 커뮤니티로도 더 취약하기 때문에 임명동의제라는 시스템으로 한 번 더 막아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안 지부장은 “지역은 서울에 준하는 법제화가 아니라 오히려 더 체계화된 법제화가 필요하다”며 “서울과 지역은 왜 달라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언론노조 MBC본부 산하 16개 지역MBC지부가 모인 '공영방송 지역MBC 노동조합연대회의'는 15일 성명을 내고 “방송 독립은 지역 시청자들이 누릴 권리”라며 “소멸 위기에서 버티고 있는 방송 독립성과 공영성의 보호가 필요한 곳이 바로 지역방송이라는 점에서, 이번 법 개정의 구조적 불균형은 심각한 제도적 역행”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방송법 개정안은 대한민국 국민을 서울 안에 가둬버렸다. 국회 스스로 진전시켰다고 자화자찬하는 제도는 명백히 서울 중심의 선택적 진보였을 뿐”이라며 “서울 공화국의, 서울 소재 대형방송사만을 위한 제도를 만들어 내는 데 머물러 버린 국회의 지역방송 몰이해를 규탄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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