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골목·바다가 만든 감성 휴식처, 경주 동해안으로 오세요
읍촌항 등대 소공원… 하얀 등대와 붉은 등대·포토존까지
감포항 송대말… 빛체험전시관과 스노클링 명소로 인기
감포해국길… 보라빛 해국 벽화·목욕탕 리모델링한 카페
감포항 남방파제 등대… 감은사지 삼층석탑 형상화 등대
용오름 광장… 물길 산책로·목교·징검다리가 주는 휴식

경주의 여름은 소란스럽지 않다. 양남의 해풍은 솔향을 머금은 듯 상쾌하고, 발끝으로 밀려드는 파도는 시원한 위로가 된다. 어디를 걸어도 풍경이 곧 이야기가 되고, 머물다 보면 그 이야기가 곧 추억이 된다. 바다는 눈앞에 있지만, 그보다 더 깊은 감성은 골목 어귀에서, 등대 아래서, 바람 끝에서 피어난다.

감포항 북쪽, 조용한 해안선을 따라 약 1.5km를 오르면 '척사항 방파제'가 조용히 여행자를 맞는다. 이 작은 어항은 도시의 소음이 미치지 않는 곳, 마치 시간이 쉬어가는 듯한 풍경 속에 있다. 무엇보다 이곳의 등대는 특별하다. 붉은 기둥 위에 얹힌 성덕대왕신종 형상의 종은 바다를 지나는 이들에게 여기가 신라였음을 알려준다.
파도는 낮게 밀려오고, 고요한 바다 위로 등대의 실루엣이 길게 드리운다. 방파제 끝에 서면 바다 너머로 펼쳐진 어촌 마을의 풍경이 눈을 사로잡고, 귓가에는 파도와 갈매기 소리가 리듬처럼 흐른다. 이곳에선 무엇을 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바다를 바라보며 바람을 느끼고, 잠시 걸음을 멈춘 채 마음을 쉬게 하면 된다.

경주 동해안의 남쪽 끝자락, 양남주상절리의 파도소리가 시작되는 지점에 자리한 '읍천항 등대 소공원'. 이곳은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걷는, 한 폭의 풍경 같은 산책길이다. 하얀 등대와 붉은 등대가 마주한 장면은 마치 오래된 엽서처럼 정겹고, 그 사이를 스치는 바람엔 짠내와 함께 여름의 청량함이 실려온다.
길을 따라 조성된 포토존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작은 추억을 남겨주고, 파고라 그늘 아래 앉으면 마음까지도 그늘에 쉬어간다.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지압 산책길의 촉감은 피로를 말없이 씻어주고, 눈앞에 펼쳐진 바다 풍경은 더위에 지친 감성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소나무가 있는 언덕 끝'이라는 뜻을 지닌 송대말은, 이름부터가 시처럼 울림을 준다. 경주의 동해안 풍경 중에서도 이곳은 전통과 현대, 자연과 문화가 은근한 조화를 이루는 특별한 장소다. 언덕 위엔 감은사지 삼층석탑을 형상화한 독특한 등대가 우뚝 서 있고, 그 아래 '빛체험전시관'에서는 바다와 빛, 사람의 이야기가 오색빛 영상으로 흐른다.
전시관 안에서는 바다의 시간들이 빛으로 환원돼 눈앞에 펼쳐지고, 아이들도 어른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그 빛을 따라 걷는다. 유리창 너머로 들어오는 바다 햇살마저 전시의 한 부분처럼 느껴지는 순간, 이곳은 단순한 전시관을 넘어 감성의 피난처가 된다.
바닷가 아래로 내려가면, 일제강점기 시절 수족관으로 쓰이던 석조 구조물이 고요히 남아 있다. 지금은 스노클링 명소로 인기이며, 앞으로는 다이빙과 해양체험의 거점으로 다시 태어날 예정이다. 지난 시간의 흔적 위에 미래가 포개지는 송대말은, 경주의 바다가 지닌 시간의 깊이를 그대로 품고 있다.
빛체험전시관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며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월요일은 잠시 문을 닫고 쉬어가지만, 그 시간마저도 이곳의 고즈넉한 리듬과 닮아 있다.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한 감포활어직판장 공용주차장을 이용하면, 여행은 더욱 여유로워진다.

감포 마을 안쪽, 번잡함에서 멀어진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오래된 숨결이 스미는 '감포해국길'이 조용히 발걸음을 붙잡는다. 일제강점기 개항의 기억이 스쳐간 이 마을에는, 시간을 이고 선 골목들이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걷는 것만으로도 과거와 현재를 잇는 대화에 잠긴 듯한 느낌, 감포해국길은 그런 묘한 매력을 품고 있다.
오래된 적산가옥들이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며, 100년 항구의 무게감과 함께 고요한 품격을 더한다. 낡은 담장 위에 곱게 피어난 보랏빛 해국 벽화는, 이 골목이 단순한 길이 아니라 감정을 품은 공간임을 말해준다. 그 따스한 그림들은 마치 옛 아픔을 감싸는 위로처럼 다가와, 걷는 이의 마음을 조용히 다독인다.
최근엔 이곳의 계단 포토존이 여행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보랏빛 해국이 내려앉은 계단을 따라 한 걸음씩 올라서면, 감포항의 푸른 바다와 하늘이 한눈에 펼쳐지며 마치 또 하나의 그림처럼 가슴에 담긴다. 이 계단은 드라마 '조립식가족'의 촬영지로도 알려져, 감성 충만한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감포해국길을 따라 걷다 보면, 보랏빛 골목의 끝자락에서 오래된 건물 하나가 조용히 시선을 끈다. '1925감포'. 이름부터가 시간을 품은 이 카페는, 무려 100년 전 지어진 옛 목욕탕 건물을 리모델링해 탄생한 공간이다. 외관은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지만,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과거와 현재가 부드럽게 맞닿은 감각적인 분위기가 펼쳐진다.
타일 하나, 사물함 하나에도 시간이 묻어 있고, 한때 증기 가득했던 탕 공간은 이제 은은한 커피 향이 감도는 감성의 장이 되었다. 테이블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면, 마치 시간도 커피처럼 천천히 내려앉는 기분. 이곳에서는 향기로운 한 잔 속에 감포의 지난 세월이 녹아든다.
'1925감포'는 경주시와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사업에 선정된 '경주 가자미마을'이 직접 운영하며, 청년들의 손길로 지역의 옛 공간이 새로운 문화로 거듭나는 상징적인 장소다.
운영시간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매주 수요일은 문을 닫고 쉼을 갖는다. 인근 감포공설시장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면 한결 여유롭게 이 공간에 다가설 수 있다.

감포항 남쪽 방파제의 끝,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지점에 우뚝 선 등대 하나가 눈길을 붙잡는다. 감은사지 삼층석탑의 형태를 음각으로 형상화한 이 등대는, 전통의 아름다움을 바다 위에 새긴 듯한 존재다. 석조의 무게감과 바다의 유연함이 어우러져, 이곳에선 마치 문화재와 자연이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듯하다.
2021년 해양수산부가 선정한 '이달의 등대'에 이름을 올린 이곳은, 그저 길을 밝히는 역할을 넘어 하나의 풍경이자 이야기로 남는다. 해 질 무렵, 수평선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과 어우러진 등대의 실루엣은 사진으로 담기엔 아쉽다. 눈과 마음에 고이 간직하고픈 장면을 선사한다.

감포항 남방파제를 따라 걷다 보면, 그 끝자락에서 바다와 마을을 잇는 새로운 공간 하나를 만나게 된다. 태풍의 상처를 딛고 다시 태어난 '용오름 광장'은, 이름처럼 힘찬 기운과 함께 여름날의 여유를 품고 있는 곳이다.
시원하게 흐르는 물길 옆으로 산책로가 이어지고, 목교와 징검다리가 그 위에 포근하게 놓여 있다. 아이들은 물장구를 치고, 어른들은 바람을 마시며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도심 속에서 느낄 수 없는 자연의 순수함과 사람 사이의 온기가 이 작은 광장에 스며 있다.
무더운 여름날, 햇살이 뜨거워질수록 이곳의 물소리와 그늘은 더욱 귀한 쉼이 된다. 남방파제 공용주차장(무료)을 이용하면 접근도 편리해, 여행자들에게는 일상에서 살짝 빠져나온 보물 같은 공간이 되어준다.
용오름 광장은 바다와 마을, 기억과 회복이 만나 흐르는 감성의 쉼표다. 여름이 깊어질수록 그 의미는 더욱 선명해진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유니크한 경관과 깊은 이야기를 간직한 동해안 명소들을 중심으로, 무더운 여름에도 경주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휴식과 감동을 선사하겠다"며 "경주로의 여름 여행에 많은 분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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