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하다] 새우파시 이뤘던 ‘문갑도’…남은 가마터와 섬이 간직한 이야기
1958년 문 닫은 독공장…해변에는 장독 파편만
이충환 이장 “가마터와 항고만큼은 꼭 지켜야"

"문갑도는 새우파시였어요. 연평도의 조기파시처럼요."
2025년 7월 11일 인천 옹진군 덕적면 문갑리 한월리 해변.
무성한 풀숲을 지나 경사 20도 남짓의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자 거대한 돌담이 모습을 드러냈다.
길이 60m에 달하는 이 돌담은 1948년부터 1958년까지 10년간 운영됐던 새우젓 독공장의 가마터다.
"새우가 넘쳐났어요. 그래서 새우젓을 보관할 옹기 독을 만들었죠. 독 굽는 날이면 마을 잔칫날처럼 사람들이 다 구경 나왔어요."
이충환(75) 문갑리 이장이 가마터 입구에서 숨을 고르며 말했다.
해방 직후인 1948년 이북에서 넘어온 옹기 장인들이 문갑도에 터를 잡아 돌과 흙으로 전형적인 '북방식 오름가마'를 세웠다.
"연평도가 조기파시라면, 문갑도는 새우파시였죠. 어선이 35척은 됐어요. 500m 해변이 배로 꽉 찼다니까요."

그 시절 문갑도는 새우젓 하나로도 풍요로웠다. 독공장 종사자만 100여 명, 마을 인구는 700명에 달했다. 초등학생만 해도 120명이 넘었다. 지금은 인구 80명 남짓의 조용한 섬이지만, 그 시절엔 새우와 옹기가 마을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가마터를 지나 새우젓을 보관했던 '항고'로 향했다. 해변엔 하얀 모래 사이로 붉은 옹기 조각이 흩어져 있었다. 해변 한쪽에는 한 변이 2m가 넘는 정육면체 시멘트 구조물이 남아 있었고, 외벽은 군데군데 갈라져 있었다.

"어선 한 척당 새우젓 독 저장고가 두세 칸씩 있었어요. 항고가 워낙 커서 엄청난 양을 저장했죠. 하지만 6·25 이후 미군에서 드럼통이 유입되면서 독이 필요 없어졌어요. 새우젓을 드럼통에 담게 되니 독공장도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죠."
결국 1958년 가마터는 문을 닫았다. 이후 마을 안쪽에 두 번째 가마가 세워졌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지금 남아있는 가마터와 항고만큼은 잘 보존해야 해요. 이북에서 온 분들의 기술과 새우가 만나 만든 문갑도의 역사이자 흔적이니까요."
/연평도=이나라 기자 nara@inceh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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