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0만년 전 코뿔소 유전 정보를 캐내다 [강석기의 과학풍경]

한겨레 2025. 7. 15.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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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생각하면 그때가 최고를 경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일들이 있다.

1993년 여름에 본 '쥬라기 공원'이 그런 예로 공상과학(SF)영화에서 그 이상의 충격을 준 작품은 그 이전에도 뒤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설정에는 근본적인 오류가 있는데, 디엔에이는 그렇게 안정한 분자가 아니라서 공룡이 멸종한 6600만년 전 이전 화석을 아무리 들여다봐야 염기서열 정보가 전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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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쥬라기 공원’(1993) 스틸컷.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당시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생각하면 그때가 최고를 경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일들이 있다. 1993년 여름에 본 ‘쥬라기 공원’이 그런 예로 공상과학(SF)영화에서 그 이상의 충격을 준 작품은 그 이전에도 뒤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사오십대 독자 가운데 상당수가 필자의 의견에 공감하지 않을까.

‘쥬라기 공원’이 대단한 건 육식공룡의 행동을 실감나게 묘사했을 뿐 아니라 수천만년 전 멸종한 공룡을 되살린 방법이 꽤 그럴듯해 개연성이 높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즉 공룡 시대 수지(樹脂)가 굳은 광물인 호박(琥珀)에 갇힌 모기에서 공룡의 피를 추출해 얻은 디엔에이(DNA) 조각을 양서류 게놈에 넣어 부활시키는 방법이다. 놀랍게도 한 세대가 지난 오늘날 비슷한 방법으로 멸종된 매머드를 되살리는 탈멸종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다만 이 설정에는 근본적인 오류가 있는데, 디엔에이는 그렇게 안정한 분자가 아니라서 공룡이 멸종한 6600만년 전 이전 화석을 아무리 들여다봐야 염기서열 정보가 전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해독에 성공한 가장 오래된 디엔에이 염기서열은 약 100만년 전 시베리아에 살았던 매머드의 것으로, 논문이 발표된 2021년 꽤 큰 화제가 됐다.

그런데 과거 생물의 유전 정보가 디엔에이에만 남아 있는 건 아니다. 유전자의 산물인 단백질의 아미노산서열도 있기 때문이다. 단백질은 수만가지이고 이 가운데 디엔에이보다 훨씬 안정한 종류가 꽤 된다. 따라서 단백질의 아미노산서열을 분석하면 멸종된 생물을 부활시키지는 못하겠지만 현생 생물과의 분류 관계 등 유용한 정보를 줄 수 있다.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단백질 정보는 약 370만년 전 살았던 멸종된 낙타의 것이다.

지난주 학술지 네이처 사이트에는 이 기록을 훌쩍 뛰어넘어 가깝게 잡아도 2100만년 전 살았던 코뿔소의 단백질을 분석했다는 논문이 공개됐다. 덴마크 코펜하겐대가 주축이 된 다국적 공동연구팀은 북극권인 캐나다 호턴 분화구의 2400만~2100만년 전 지층에서 발굴한 코뿔소 화석에 주목했다.

이들은 가장 안정한 부분인 어금니의 에나멜층을 분석해 수백개의 아미노산 단편 서열 데이터를 얻는 데 성공했다. 이를 현존 코뿔소, 아미노산 서열 정보를 알고 있는 멸종된 코뿔소와 비교한 결과 호턴 분화구의 코뿔소는 이들과 약 3000만년 전 갈라졌다는 진화의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

단백질 아미노산 서열 정보로 재구성한 기제목(코뿔소과, 맥과, 말과) 계통도다. 캐나다 호턴 분화구의 2400만~2100만년 전 지층에서 발굴한 코뿔소(CMNF 59632)는 다른 코뿔소 계열과 약 3000만년 전 갈라졌다. 위에서 4~8번째가 현존하는 종들로 각각 수마트라코뿔소, 인도코뿔소, 자바코뿔소, 검은코뿔소, 흰코뿔소다. 아래 숫자는 연도로 단위는 100만년 전(Ma)이다. 네이처 제공

이번 성공으로 연구자들은 6600만년 이전에 살았던 공룡의 이빨에서도 단백질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구 온난화로 기온이 높았을 때 극지방까지 진출한 공룡의 잔해가 그 뒤 저온에서 잘 보존됐다면 지금 분석 기술 발달 속도로 보건대 머지않아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공룡을 부활시킬 수는 없겠지만 이번 코뿔소 연구처럼 화석만으로는 불확실한 진화 과정을 재구성할 정보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쥬라기 공원’의 7편인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이 개봉됐다. 2편과 3편에 연달아 실망한 뒤 4~6편은 극장에서 보지 않았고 이번에도 볼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다 보니 옛 추억이 떠오르며 그래도 한번 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32년 전의 감동까지는 기대하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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