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세계로, 다시 제주로” 크루즈 항해사 3인의 귀환
인재양성과 글로벌 커리어의 선순환
글로벌 크루즈 선사에 승선한 세 명의 한국인 항해사가 제주에 왔다. 단순한 방문이 아니다. 세계 바다 위에서 경험을 쌓은 그들이 '연사'로 제주국제크루즈포럼에 다시 선 것이다.
이들은 모두 과거 제주국제크루즈포럼에 학생 신분으로 참석했었고, 당시의 경험이 진로에 확신을 심어줬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제12회 제주국제크루즈포럼이 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에서 12개국 크루즈업계 관계자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2035 아시아 크루즈의 비전: 글로벌 시장의 9%에서 20%를 향한 항해'를 주제로, 지속가능한 크루즈 산업과 글로벌 협력 전략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특히 지난 11일 진행된 특별세션 '크루즈산업 인재양성과 글로벌 커리어'는 단순한 취업 멘토링을 넘어 대한민국 해양 인재 양성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를 짚고,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대안을 제시한 전략 세션으로 주목받았다.
발표자들은 국내 실습 중심 교육의 미비, 국제 기준 부족 등 현실을 지적하고, 시뮬레이터 교육 강화, 산학협력 등 제도 개선안을 제안했다.

▲제주에서 출발한 꿈, 세계 바다에서 현실로이날 발표자로 나선 항해사 3인은 모두 목포해양대학교를 졸업한 박민형(59기), 구남재(58기), 류지민(59기)씨다.
이들은 현재 Carnival Cruise Line, Royal Caribbean International, Norwegian Cruise Line Holgings 등 세계 3대 크루즈 선사에 승선 중이다.
팀명 '바다토끼'로 활동하며 유튜브와 방송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청년 항해사의 새로운 롤모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박민형 항해사는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당시 크루즈 탐방 대외활동을 계기로 이 길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그때 바다 위를 항해하는 선장을 보고 꿈을 키웠습니다. 한국에는 크루즈 항해사가 없었기에, 우리가 그 첫 사례가 되어보자고 셋이서 다짐했죠."
당시 이들이 처음 제주크루즈포럼에 참석했을 때는 연줄도, 정보도, 확신도 없었다. 오히려 '절망감'을 안고 돌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좌절 대신 이들은 '직접 부딪쳐보자'는 각오로 해외 선사를 향한 길을 열기 시작했다.
글로벌 선사 승선의 길은 녹록지 않았다.
박민형 항해사는 "오션 크루즈 60여 곳, 리버 크루즈 40여 곳에 무작정 이메일을 보내고 전화했다"고 했다.
구남재 항해사는 "2019년 코로나가 터지면서 크루즈 시장이 문을 닫았을 때 저희도 절망스러죠. 하지만 인력시장이 다시 문이 열릴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고, 실제로 경력을 쌓으면서 지켜보다보니 2021년 들어 서서히 인력 채용 문이 열리기 시작했어요."라고 전했다.
제주 출신인 류지민 항해사는 "선원수첩부터 해기면허 공인까지, 모든 서류를 직접 만들고 항만청을 다니며 일일이 해결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당시엔 크루즈 항해사를 위한 에이전트도 없었다.
게다가 이들의 첫 승선 시점은 코로나19의 한복판이던 2021년. 구남재 항해사는 "방호복과 마스크를 착용한 채 근무했고, 다양한 언어가 오가는 환경에서 입 모양도 보이지 않아 의사소통이 특히 힘들었다"고 전했다.
셋은 스마트워치에 녹음한 낮 대화를 저녁마다 반복 청취하며 언어 적응에 몰두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한국인 항해사라는 편견과 의심을 깨기 위해 두 배로 노력했다.

▲교육의 한계를 뛰어넘어야그들은 현재 한국 해양 교육의 가장 큰 한계로 '현직자 중심의 실무 교육 부재'를 지적했다.
박민형 항해사는 "우리가 현직자로 나서면서 후배들 교육 과정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며 실무 기반 아카데미와 시뮬레이션 교육의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류지민 항해사 역시 "실무자를 통한 교육 시스템이 자리 잡으면 현장에서 적응력 있는 인재 양성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크루즈 항해사는 단순한 기술직이 아닌 다국적 인력과의 협업이 핵심인 만큼, 언어와 문화 이해력도 필수다.
이들은 "크루즈 산업에 관심 있는 청년이라면 언어 역량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제 이들은 단순히 자신의 커리어를 넘어 후배 세대에게 길을 열어주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박민형 항해사는 "예전엔 우리가 길이 없어 하나하나 찾아야 했지만, 지금은 그 길을 보여줄 수 있다"며 의미를 되새겼다.
류지민 항해사는 "국제 무대에서 캡틴이 되는 게 목표지만, 언젠가는 한국 크루즈 산업 발전에도 기여하고 싶다"며 미래의 비전을 내비쳤다.
구남재 항해사는 "아시아크루즈 시장이 커지는 만큼 하나의 항으로서 아름다운 제주의 모습을 더 많이 알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제주가 출발지였던 그들에게 제주는 '다시 돌아와야 할 곳'이며, 더 많은 한국인 항해사가 세계 바다를 누빌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크루즈포럼, 진짜 인재 플랫폼으로
'크루즈산업 인재양성과 글로벌 커리어' 세션은 단순한 성공담 발표를 넘어 해양 인재 양성의 구조적 문제를 현장 경험에 기반해 진단하고,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한 전략 세션이었다.
연사자들이 남긴 메시지는 명료하다.
"제주에서 출발해 세계로 나아갔고, 이제는 제주에서 다음 세대를 출발시키려 한다."
이제 크루즈 항해사의 길은 더 이상 외로운 개척의 여정이 아니다.
누군가 먼저 지나간 길, 그리고 그 길을 환하게 비춰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다음 세대의 꿈을 위한 가장 든든한 항해등이다.
포럼 참가자였던 청년들이 글로벌 항해사로 성장해 다시 같은 자리에 연단에 오른 순환 구조는 크루즈포럼이 단순한 박람회 이상의 가치를 지닌 플랫폼임을 입증하고 있다.

진주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