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색 승복을 입은 잉어들이 오간다
물속에 비춰보면 하늘이 단청 같다
연꽃도 손을 모으는 저녁 예불의 법당 연못
황금색 승복을 입은 잉어들이 오간다
법당 연못에는 불자 아닌 것이 없어
연꽃 봉오리에 꼼짝 없이 손을 모으고
빨갛게 고추잠자리 성불기도 중이고
땀 젖은 몰골하고 직박구리 돌아왔다
열 받은 저잣거리 욕쟁이로 소문난 스님
승복도 벗지 않은 채 물에 몸을 담근다
살기 좋은 곳엔 죽기 또한 좋다 그랬지
얼룩무늬 개구리가 펄쩍 뛰어오르는 순간
산란 중 그 잠자리가 온데간데없었고
식욕 성욕 노욕 앞엔 부처님도 어쩌지 못해
보고서도 못 본 척, 알면서도 모르는 척
도통한 염불소리가 한 목청을 높일 때
저 목탁 염불이라면 누가 누굴 탓하며 살까
오는 자 떠나는 자 그 속내를 헤아리던
만다라 붉은 눈빛이 렌즈 속에 들어와
카메라 어깨에 걸치고 터벅터벅 내려왔네
남들이 밟고 지난 그 길 따라 걸어왔네
컴퓨터 바탕화면에 그 연꽃이 와 있네.
/2013년 고정국 詩
#시작노트
제주 수목원 입구 쪽에 아담한 크기의 사찰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엔 알맞은 정감으로 사람을 맞는 연못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미 기억 속에 추억의 형상으로 남아있는 그 연못은 그때만 하더라도 갖가지 미물들이 공존하면서 카메라 줌 속으로 들어와 인사를 나누곤 했습니다.
10여 년 전인가요, 도내 연 밭을 찾아다니며 연꽃을 찍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 법당의 연못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불제자 형상을 하고 나를 맞았습니다. 빨간색 연꽃봉오리에 공손히 손을 모으고 성불기도 드리는 고추잠자리에다, 연잎사이로 황금색 승복을 입은 잉어들이 사람에게 합장合掌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물녘이 돼서야 저잣거리에 욕쟁이로 소문난 직박구리 한 마리가 회색 장삼을 입고 돌아왔습니다. 그 직박구리 스님은 승복도 벗지 않은 채 연못으로 몸을 담그고 더위를 식히고 있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법당 쪽에서 저녁예불 목탁소리에 스님의 염불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목탁소리가 들려오면서 연못 안에 잠자리, 얼룩무늬 개구리, 연꽃봉오리 등이 약육강식과 생존본색의 갖가지 모습들이 저마다 다른 형상으로 다가와 시조 한 편을 건네주고 있었습니다.
절 마당 고양이가
앞발을 모아들고
지는 해 바라보며
사람 흉내 내는 저녁
빨갛게 성불한 나무가
맞절하고
있었다.

#고정국
▲ 1947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 출생
▲ 1972~1974년 일본 시즈오카 과수전문대학 본과 연구과 졸업
▲ 198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 저서: 시집 『서울은 가짜다』 외 8권, 시조선집 『그리운 나주평야』. 고향사투리 서사시조집 『지만울단 장쿨레기』, 시조로 노래하는 스토리텔링 『난쟁이 휘파람소리』, 관찰 산문집 『고개 숙인 날들의 기록』, 체험적 창작론 『助詞에게 길을 묻다』, 전원에세이 『손!』 외 감귤기술전문서적 『온주밀감』, 『고품질 시대의 전정기술』 등
▲ 수상: 제1회 남제주군 으뜸군민상(산업, 문화부문),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유심작품상, 이호우 문학상, 현대불교 문학상, 한국동서 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등
▲활동: 민족문학작가회의 제주도지회장 역임. 월간 《감귤과 농업정보》발행인(2001~2006), 월간 《시조갤러리》(2008~2018) 발행인. 한국작가회의 회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