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국민적 합의'라는 권력의 가면

최윤필 2025. 7. 15.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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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년 '인디언 이주법'으로 체로키 등 미국 남동부 원주민 부족은 이후 약 20년에 걸쳐 미시시피 서부 새 거주지로 강제 이주당했다.

그 행진(의 길)은 '파기된 조약의 길(The Trail of Broken Treaties)'이다.

의회와 정부가 '원주민 기회평등법'으로 기존의 모든 조약들을 백지화하고, 다국적 기업들에 그들 땅에서 석유와 광물을 채굴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총 11개 법률을 제정하려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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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5 1978년의 '기나긴 행진'
수만 명의 시위대가 국가 기념물 광장(National Mall)을 따라 링컨 기념관(Lincoln Memorial)까지 진행된 기후 연대 날(Solidary Day) 행진에서 빈곤층을 위한 캠페인(Poor People's Campaign)을 지지했습니다. 많은 행진 참가자들이 반사 연못(Reflecting Pool)에 발을 담그며 행진했습니다. 배경에는 워싱턴 기념탑(Washington Monument)이 눈에 띄었습니다. DC Public Library

1830년 ‘인디언 이주법’으로 체로키 등 미국 남동부 원주민 부족은 이후 약 20년에 걸쳐 미시시피 서부 새 거주지로 강제 이주당했다. 백인 기병대의 호위(감시) 속에 추위와 굶주림, 질병으로 숨져간 친지들을 묻으며 걸었던 그 길이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이다.
고향을 떠나는 조건으로 백인 정부는 부족들의 종교와 사냥 등 문화 자율성과 교육·복지를 보장하는 여러 조약을 체결했다. 그 조약들은 하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후손들은 1972년 ‘조약 준수- 20개 요구’ 조건을 걸고 서부 해안에서 워싱턴 D.C까지, 당국의 방해를 뚫고 분노의 행진에 나섰다. 워싱턴 인디언사무국(BIA)을 점거한 채 경찰과 대치하기도 했던 참가자들은, 가시적 성과는 얻지 못했지만 원주민 권리와 자치권 운동의 당위를 환기했다. 그 행진(의 길)은 ‘파기된 조약의 길(The Trail of Broken Treaties)’이다.
6년 뒤인 1978년 2월, 원주민들은 다시 먼 길을 나섰다.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서 워싱턴D.C에 이르는 2,800마일(약 4,506㎞)의 ‘기나긴 행진(The Longest Walk)’. 의회와 정부가 ‘원주민 기회평등법’으로 기존의 모든 조약들을 백지화하고, 다국적 기업들에 그들 땅에서 석유와 광물을 채굴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총 11개 법률을 제정하려던 때였다.
72년 행진 때와 달리 지미 카터 행정부와 상당수 주정부는 그들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국립공원관리청은 중도의 그린벨트 지역 내 캠프 설치를 허용했고, 참가자들이 머문 8일 동안 워싱턴 기념탑 광장 등에 간이 샤워 시설과 화장실을 지원했다. 일부 주방위군은 이동 병원을 열어 참가자들의 건강을 보살폈다.
대의정치하의 '국민적 합의'라는 건 변검에 능한 국가(권력)의 가면 중 하나일 뿐이다. 의회는 원주민이 반대한 11개 법을 모두 폐기했고, 인디언 종교자유법과 아동복지법을 제정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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