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혁신창업박물관'을 만들자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전 한국벤처창업학회 회장 2025. 7. 15.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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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 전 한국벤처창업학회 회장

우리나라 경제에서 스타트업은 더없이 중요하다. 이제 'K스타트업'은 단순한 유행어를 넘어 한국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하나의 시스템이자 세계가 주목하는 브랜드다. 기술스타트업의 성장률, 정부의 창업예산, 창업인프라 모두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고 창업은 이제 개인의 도전을 넘어 국가전략의 중심축이 됐다. 그런데 과연 대한민국의 혁신창업은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오늘날의 창업생태계는 단기간에 형성된 결과가 아니다. 1960년대 과학기술 국가전략의 시작, 1980년대 정보기술 실험과 도전, 1990년대 이후 인터넷, 전자정부와 디지털산업의 융합까지 창업은 늘 국가의 기술적, 제도적, 사회적 맥락과 맞물려 진화했다. 이제는 이 창업사의 원형을 복원하고 미래세대에게 전하는 일, 곧 '혁신창업박물관' 건립이 절실하다.

대한민국 기술창업의 실질적인 출발점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찾을 수 있다. 1966년에 설립된 KIST는 국가 산업화를 위한 기반기술을 개발하는 종합연구기관으로 단지 학문적 연구에 그치지 않고 기술의 산업적 전환을 실천했다. 이곳에서 활동한 이용태 박사는 1980년 자신이 축적한 기술과 실험을 바탕으로 삼보컴퓨터를 창업하고 국산 PC(퍼스널컴퓨터)를 개발해 당시 수입 일색이던 국내 컴퓨터 시장에서 자립의 가능성을 보여줬고 이후 공공·교육기관을 중심으로 컴퓨터 보급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KIST가 개발한 국산 디지털교환기 기술과 삼보의 컴퓨터·서버기술은 전자정부의 물리적 토대를 형성했다.

이러한 흐름은 KAIST를 통해 문화적·제도적으로 제도화됐다. KAIST는 설립 초기부터 실리콘밸리식 산업연계 교육을 모델로 삼았고 '교육-연구-창업'의 삼위일체 구조를 추구했다. 그 중심에 있었던 전길남 박사는 1982년 아시아 최초로 인터넷을 연결하며 한국 인터넷 생태계의 시원을 열었고 그의 연구실은 이후 국내 최초 인터넷기술 기반 기업창업의 전초기지가 됐다. 그의 제자들은 인터넷 인프라, 정보검색, 콘텐츠 플랫폼 분야에서 창업을 이어갔다. 오늘날 이광형 총장이 주창한 '원랩원스타트업'(1 Lab 1 Start-up) 정책은 이러한 철학의 제도적 연장선이며 KAIST는 지금도 가장 왕성한 실험실 창업이 이뤄지는 대학 중 하나다.

한편 서울대학교 자동화시스템공동연구소는 창업이 대학 차원에서 자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실험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였다. 1980년대 후반 권욱현 교수는 실리콘밸리 현장을 체험하고 돌아온 뒤 연구보다 창업을 강조하며 학생들에게 벤처창업을 권장했다. 그의 제자들은 실제 기술기반 창업에 나섰고 연구소는 공간, 장비, 인력, 노하우를 제공하는 벤처사관학교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제도권의 노력 외에도 전국 대학생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동아리들도 주요한 역할을 했다. 전국대학컴퓨터서클 연합 '유니코사'(UNICOSA)가 대표적이다.고려대, 국민대, 광운대, 부산대, 서울대, 연세대, 한양대 등 이공계 중심의 대학 컴퓨터 동아리가 주축이 돼 결성한유니코사는 상업화 이전의 인터넷을 실험하며 공개 소프트웨어, 네트워크도구, 검색시스템을 개발했고 이후 IT 창업분야에서 인재요람이 됐다.

이처럼 대한민국 기술창업사는 단편적인 성공스토리가 아니라 정부, 국책연구소, 대학연구실의 혁신적 실험, 학생커뮤니티의 공동체정신 등 다양한 기억과 실천이 모여 형성된 입체적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이 모든 흐름을 한데 모아 미래세대에게 전하고 국가혁신 전략의 자산으로 활용토록 해야 한다.

'혁신창업박물관'은 단지 과거의 유물을 진열하는 공간이라기보다 혁신창업의 철학과 정신을 살아 있는 자료로 재구성하고 기술과 문화, 실패와 성공, 제도와 자율이 어떻게 창업으로 연결됐는지를 구조적으로 보여주는 기억의 플랫폼이자 교육의 인프라가 돼야 할 것이다. 디지털 아카이브와 실물전시, 구술사, 시제품, 창업계획서, 실패사례까지 포함된 이 플랫폼은 대한민국이 창업국가에서 혁신국가로 도약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의 희망, 혁신창업의 기억 위에 혁신을 세우는 일을 서둘러 시작할 때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전 한국벤처창업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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