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전서 독자들이 줄 선 이유?… ‘북 마케터’ 사인 받으러

박진성 기자 2025. 7. 15.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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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인스타로 독자들과 소통
조아란·박중혁 등 작가급 인기

지난달 22일 폐막한 ‘2025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특별한 ‘팬 사인회’가 열렸다. 주인공은 유튜브 ‘민음사TV’(구독자 31만명) 진행자 조아란 민음사 마케팅 부장. 그의 사인을 받은 직장인 박은혜(30)씨는 “조 부장이 도서전에서 박정민 배우나 박찬욱 영화감독보다 인기가 많은 것 같더라”며 “줄 서는 동안 연예인을 기다리는 것처럼 설렜다”고 말했다.

‘2025 서울국제도서전’이 개막한 지난달 18일 서울 코엑스 전시장에서 조아란(맨 오른쪽) 민음사 마케팅 부장에게 사인을 받으려는 독자들이 줄을 서고 있다./곽아람 기자

출판사에서 책 홍보, 굿즈 기획 등을 맡아 판매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는 ‘출판 마케터’가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과거 출판사들은 주로 서점 중심의 오프라인 책 홍보를 해왔지만 최근엔 소셜미디어 홍보가 핵심이다. 유튜브·인스타그램 전면에 나선 마케터들이 이른바 ‘B급 감성’으로 무장하며 인플루언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조아란 민음사 부장은 “마케터들은 직접 책을 만들지 않으니 독자들과 책을 보는 시각이 비슷한 것 같다”면서 “독자들이 한번 영상을 보고 나서는 ‘어? 출판사가 꼭 어려운 얘길 하는 게 아니네? 재밌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조 부장이 꼭 책 소개만 하는 것은 아니다. 2030 여성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는 이벤트 ‘왓츠 인 마이백’을 활용해 출판사 직원들의 가방에 어떤 아이템이 들어 있는지를 보여주기도 하고, 신입 사원 시절 실수담을 공유하기도 한다. “책 한 권도 안 읽고 살았는데 올해만 10권 읽었다는 독자의 말을 들을 때가 제일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래픽=양진경

흐름출판 마케터인 박중혁 과장도 소셜미디어를 달구는 파워 인플루언서다. 그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출판사 박대리’ 팔로어는 1만1000명. 지속적인 출판계 불황을 감안할 때, 책 관련 소셜미디어 팔로어 수가 1만명을 넘는다는 것은 의미 있는 수치다. 박 과장은 “일부러 책 소개 영상이라는 게 안 느껴지게 기획한다. 조회 수 100만을 넘으면 확실히 판매량도 쭉쭉 는다”면서 “32만부 팔린 우리 책 ‘숨결이 바람 될 때’는 다른 홍보도 안 했는데 릴스가 히트 치고 난 후 판매량이 3배 늘었다”고 했다.

‘살면서 들었던 가장 슬픈 죽음’ ‘꼰대 특징 세 가지’…. 섬네일만 보면 책 홍보 영상인지도 모를 정도다. 화려한 편집이나 배경도 없다. 투박하게 화이트보드에다 글을 쓰며 재미있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독자들은 영상 말미에 가서야 ‘아, 책 내용이구나’ 깨닫게 된다.

박 과장이 자신이 근무하는 출판사 책만 소개하는 건 아니다. 그의 인스타그램 릴스 중 최고 조회 수(449만회)를 기록한 ‘경상도 사투리 치트키 알려줌’은 유유 출판사에서 나온 책 ‘경상의 말들’ 관련 영상이다. 그는 “인스타그램 운영 초반에는 내가 재미있게 읽은 다른 회사 책 관련 게시물도 올렸는데, 요즘은 다른 출판사 책은 광고비를 받고 게시한다”고 했다.

직원이 대표 포함 2명뿐인 출판사 무제는 배우 박정민 대표가 자신의 맨파워로 마케팅을 한다. 지난 국제도서전에서 책을 사기 위한 독자들이 ‘오픈런’을 하는 등, 도서전 최고 스타 중 한 명이었다. 대기 줄이 길어 구매가 어렵다는 공지를 출판사 소셜미디어에 올릴 정도였다. 출판 업계 관계자는 “박정민의 추천 한마디가 서평 열 개보다 더 화제가 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본명보다 ‘최초딩’이라는 예명으로 출판계에서 더 잘 알려진 소미미디어 마케터 최원석 팀장의 인스타그램도 독자들에게 꾸준한 관심을 받는다. 팔로어 1만7000명. 잔잔한 일상과 함께 책을 소개하고, 간간이 팔로어들에게 책을 나눠주는 이벤트도 연다. 최 팀장은 지난해 ‘교보문고 출판 어워즈’에서 올해의 마케터상을 받기도 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잠깐 선 좀 넘겠습니다’ ‘내 마음을 믿는 일’ 등 에세이를 내기도 했다.

이처럼 출판 마케터가 독자들의 뜨거운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소셜미디어 시대가 도래하면서 독자와 출판사 간 거리가 가까워지고, 독자들이 책 내용을 넘어 ‘책 만드는 일’에까지 관심을 가지게 된 영향이 크다. 최근 전통적으로 ‘저자의 그림자’였던 편집자까지 조명받은 흐름에 이어 이제는 마케터에게도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출판계 주 독자층인 20~30대 여성들이 독자들과 상호작용하며 책 판매에 골몰하는 마케터들을 ’나와 같은 처지의 회사원’이라 여기며 친근감을 느끼는 것도 마케터 인기에 한몫한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마케터와 비대면 친구가 되다 보니 친근감과 의리가 생긴다”며 “인기를 끌던 마케터가 퇴사하자 친구를 잃은 상실감을 느끼는 독자들도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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