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 [85] 과학과 기술의 차이
한국, 일본, 중국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은 과학기술(科学技術 또는 科学技术)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 분야에서 우리나라 첫 정부 부처 이름이 과학기술처였고, 지금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다. 과학이란 단어와 기술이라는 단어가 함께 부처 이름에 들어간다. 그래서 과학과 기술은 한 묶음처럼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은 서로 다른 역사적 경로를 겪으면서 발전했다. 추구하는 목표와 가치 체계가 서로 다르다. 과학은 자연에 대한 사실과 진리를 추구하지만, 기술은 현실 세계에 실용적으로 사용되는 인공물을 만들려고 한다. 과학은 객관성과 엄밀성을 잣대로 하지만, 기술은 유용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것이 된다.
따라서 과학과 기술을 지원하는 정책도 달라야 한다. 어떤 기술이 유용하고 사업화될 수 있는가를 가장 잘 아는 집단은 기업이다. 새로운 기술은 기존의 관습이나 법률 같은 제도와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의 지원은 기업이 신속하게 기술 개발을 하고 이를 사업화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요소를 제거해 ‘판’을 잘 깔아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과학에 대해서는 땅을 일구고 씨를 뿌려서 열매를 기다리는 장기적인 안목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놀라운 점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과학이 신기술이나 신산업의 모태가 된다는 것이다. 과학은 기술을 낳고, 기술의 발전은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자연의 신비를 드러내는 데 도움을 준다.
대한민국의 헌법 제127조 1항은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한다. 여기서 과학이 국민경제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조항은 진취적인 과학 정책에 걸림돌이었다. 1960년대 이후 지금까지 과학 정책은 기술 또는 산업 정책의 곁다리였다.
이제 변화가 생길지 모른다. 이재명 정부의 첫 과학기술혁신본부장(차관급)에 기초과학자가 임명됐다. 물리학자인 그는 그동안 과학 정책이 잘못됐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과학 정책과 기술 정책을 바라보는 정부의 관점이 달라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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