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호정의 톱밥 먹는 중입니다] [1] 나는 왜 망치를 들었는가

정치를 그만뒀다.
전쟁 같던 일상은 끝나고, 평화가 찾아온 듯했다. 눈을 뜨자마자 메신저를 확인하지 않아도 되었다. 여전히 사건 사고는 발생했지만, 내가 대응할 필요는 없었다. 늦잠을 실컷 자고, 게임도 원 없이 했다. 누구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그동안 소홀했던 고양이들과 함께 보낼 시간이 넉넉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두 달, 행복했다.
일해야 했다. 통장 잔액은 꾸준히 줄어들었다. 아직 바닥까진 아니었고, 몇 달 더 논다고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아니었으나, K장녀는 수입을 찾아야 했다. 사실 좀 지루하기도 했다. 방학이 두 달인 데는 다 이유가 있구나, 새삼 깨달았다. 백지에서 시작해야 했다. 게임 업계, 노동조합, 그리고 정치. 돌아갈 곳도, 돌아갈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판타지 소설 제목처럼 생각해 봤다.
“국회의원이었던 내가 자고 일어나니 000?”
대학원 진학이나 유학을 권유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시민사회 단체 같은 걸 만들어 보자는 이도 있었다. 그럴 수가 없었다. 학업이나 사회 활동을 향한 뚜렷한 의지 없이 가짜 옷을 입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노동자였고, 노동 의제를 주로 다루던 정치인이었다. 앞으로도 노동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장직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바라봤다. 단순히 ‘사무직보다 낫겠다’는 마음은 아니었다. 여의도를 막 벗어난 나는, 내가 땀 흘려 만든, 내 손에 잡히는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경험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문과 출신으로서 내 미래를 걱정할 때마다 자주 중얼거리던 ‘사람은 기술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실현하고 싶었다. 목수, 타일공, 조경사, 화물차 운전기사 같은 직업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그리고 결국, 목수를 택했다.
나는 당장 고용노동부의 직업능력개발훈련 제도인 ‘내일배움카드’를 발급받아 학원에 등록했다. 주 5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론과 실기를 배웠다. 정부가 전직 의원에게도 취업을 지원해야 하나 의문이 생길 수 있겠다. 그 제도는 전 국민 대상이고, 국가 차원에서는 류호정 역시 빨리 취업시켜야 할 청년 백수에 불과하다.

최저임금 받는 목수가 됐다. 다소 특이한 내 이력이 취업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고용하는 처지에선 오히려 부담이었다. 만나는 목수마다 “일하고 싶다”고 간청했다. 너무 늦지 않게 받아주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국회에서처럼 사업장에서도 막내다. 처음에는 청소와 자재 옮기기를 주로 했고, 조금씩 일을 배우며 가구 제작이나 인테리어 작업에 손을 보탠다. 그런 결과물이 고객들의 생활에 편의를 더하고, 공간 분위기를 바꾸면 뿌듯하다. 그리고 그 덕분에 그들이 기뻐하면 목수는 더 기쁘다.
누군가 우리 손으로 만든 가구에 기대 쉴 수 있다는 것. 내 노동의 의미는 그거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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