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의 근미래의 풍경] “당신의 아이, 믿고 맡기세요. 로봇에게”

기술이 인간의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STS(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과학기술과 사회) SF’라는 이름으로 소설을 써온 장강명 작가가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보게 될지도 모를 기묘한 풍경을 픽션으로 전달합니다.
‘당신을 닮아서, 안심할 수 있는.’
한국의 대기업 네카팡은 가사 도우미 안드로이드에 육아 모드를 추가하며 이런 광고 문구를 만들었다. 이 문구를 만들기 전 네카팡 계열 광고 회사가 젊은 어머니 수백 명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 조사를 벌였다. 왜 로봇 보모를 쓰지 않느냐는 질문에 젊은 어머니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기만큼은 로봇 손에 맡기고 싶지 않네요.”
“아기가 엄마랑 교감을 많이 해야 두뇌가 잘 발달하고 정서적으로도 안정감을 느낄 수 있대요.”
어쩔 수 없이 로봇 보모를 쓴다는 젊은 여성들은 죄책감을 호소했다. ‘아기를 기계에 맡기는 엄마’라고 비치는 게 신경 쓰인다는 응답자도 있었다.
네카팡은 그때까지 로봇 보모가 인기가 없었던 것은 기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런 심리적 거부감 때문이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타깃 고객층의 마음을 파고드는 전략을 썼다. 네카팡은 자신들의 안드로이드는 ‘당신이 대하듯 아기를 대하고, 당신이 돌보듯 아기를 돌본다’고 홍보했다.
네카팡의 가사 도우미 안드로이드는 평소 집안일을 하면서 젊은 어머니의 행동과 말투를 익혔다. 네카팡은 안드로이드가 어머니의 육아 모습을 10시간 관찰하면 행동을 85% 일치율로 모방할 수 있고, 100시간 관찰하면 그 일치율이 97~98% 수준으로 높아진다고 했다. 안드로이드에게 감시당하는 느낌이 꺼림칙하다는 사람은 가정용 CCTV나 카메라가 달린 가전제품의 메모리를 메일이나 메신저로 네카팡에 보낼 수도 있었다. 그러면 네카팡이 그 영상에서 예비 고객이 아이를 대하는 태도를 분석해서 안드로이드에게 사전 학습을 시켰다. 네카팡의 두 번째 광고 문구는 이러했다. ‘엄마만큼은 아니지만, 엄마처럼.’
네카팡은 연예인 부부에게 이 안드로이드를 무료로 제공했고, 그들은 토크쇼에서 체험 후기를 이야기했다. 뇌파를 측정했더니 아기들이 처음 만나는 베이비시터나 뜸하게 보는 친척보다 육아 안드로이드를 더 친숙하게 여기고 그 앞에서 편안해하더라는 ‘증거’도 나왔다. 네카팡의 지원을 받은 대학들이 그런 연구를 수행하고 논문을 발표했다. 이제 네카팡의 육아 안드로이드 이용자는 아기를 로봇에 맡기는 무책임한 부모가 아니었다. 늘 아기 곁에 있어주는, 적어도 아기는 그렇다고 느끼게 하는 자상한 부모, 과학기술을 이용할 줄 아는 현명한 부모였다.
네카팡의 그런 마케팅이 먹혀들면서 어느샌가 거부감은 옅어졌다. 육아 모드가 있는 가사 도우미 안드로이드는 젊은 부부의 필수품이 됐다. 추가 비용을 내면 청소나 음식 준비 등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오로지 아기 돌봄만 맡는 안드로이드를 구입하거나 대여할 수도 있었다. “아무리 로봇이라도 몸이 두 개인 건 아니잖아요. 기능이 똑같더라도 돌봄만 전문으로 하는 안드로이드가 한 대 더 있으면 그만큼 아기 정서에 더 좋지 않을까요?” 이런 제안에 흔들리지 않는 예비 부모는 거의 없었다.
키와 가슴둘레, 허리둘레, 팔다리 길이까지 어머니의 체형과 똑같은 안드로이드를 맞출 수도 있었다. 아기가 안드로이드 품에 안겨 있을 때와 엄마 품에 안겨 있을 때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게 장점이었다. 맞춤 제작비가 상당했기 때문에 초고가 명품처럼 부유층을 상대로만 홍보하는 서비스였다. 네카팡 상담사의 멘트 중에는 이런 게 있었다. “사람마다 손, 팔, 가슴의 체온이 조금씩 다른 걸 아시나요? 심장 박동 수가 다른 건 아시죠? 저희는 어머니의 그런 특징까지 재현한답니다. 아기들은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대신 촉감이나 온도에 민감하잖아요.”
젊은 어머니들의 커뮤니티에서 환영받은 기술은 원격 조종과 체험 모드였다. 어머니가 사무실에서 일하다 그 모드를 이용해 육아 안드로이드를 조종할 수 있었다. 특히 네카팡의 증강현실 안경과 웨어러블 기기를 착용하면 정말 아기를 안고 있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네카팡은 여성 노동자가 많은 대기업들에 원격 돌봄 장비를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칼럼니스트들은 그런 기업에 정부가 보조금을 줘야 한다고 썼다.
젊은 어머니 커뮤니티에서 큰 화제를 모은 글이 있었다. ‘육아 안드로이드 100배 활용법’이라는 제목의 그 게시물은 문장이 매서웠고, 내용도 도발적이었다. ‘솔직히 여러분 아기 앞에서 짜증 많이 내시고 한숨도 자주 쉬시잖아요. 아무리 친엄마라도 그러는 게 아기한테 좋을까요? 그러느니 로봇한테 맡기는 게 나아요.’ 게시물 작성자는 자신이 가장 다정할 때의 모습만 안드로이드에게 보여줘서 따라 하라고 학습시킨 뒤 이후 육아는 로봇에게 맡겼다고 했다. 덕분에 아기는 구김살 없이 잘 컸고, 자기 삶의 질도 높아졌다고 주장했다. 이 게시물에는 댓글이 수천 개 달리며 엄청난 논쟁이 벌어졌다. 그즈음 네카팡은 육아 안드로이드 광고 문구를 하나 추가했다. ‘우리 아기에게는 가장 좋은 것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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