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웅의역사산책] 독립군 이끈 신팔균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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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7월 2일 중국 만주의 홍경현 이도구에서 대한통의부 독립군들이 사령관의 지휘 아래 야외 훈련을 하는 가운데 정체불명의 중국 마적 300여 명에게 습격을 받았다.
이때 사령관 신팔균(申八均)이 향년 42세로 운명하였다.
이어서 1882년에는 미국과의 협상에도 대표로 임명되어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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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팔균 사망 소식에 아내마저 자결 비운
1924년 7월 2일 중국 만주의 홍경현 이도구에서 대한통의부 독립군들이 사령관의 지휘 아래 야외 훈련을 하는 가운데 정체불명의 중국 마적 300여 명에게 습격을 받았다. 이때 사령관 신팔균(申八均)이 향년 42세로 운명하였다. 이들 마적의 배후에 관해서는 정설이 없지만 일각에서는 이들 마적이 일제에게 매수된 군벌 장쭤린(張作霖) 부대에 훗날 편입되었음에 주목하고 있다.

후일담에 따르면 신팔균의 전사 소식은 가족들에게 즉시 알려지지 않았다. 주변에서 만삭인 부인 임수명(任壽命)이 받을 충격을 염려하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한 채 지인들의 강권으로 국내에 귀국했다. 그리고 4개월 뒤 남편의 죽음을 알자, 11월 2일 유복녀와 함께 음독 자결하였다. 향년 30세였다. 간호사이자 독립운동가로서 운명을 같이 했던 평생 동지의 죽음이었다. 당시 아무개 일간지는 임수명이 자결 직전에 사직동 332번지 셋방 한 칸을 얻어서 굶으며 근근이 연명하다가 남편 사망 소식을 접한 데다가 세 살배기 둘째 아들이 병으로 사망하자 희망을 잃고 자결하였음을 보도하였다. 그 뒤 신팔균의 유족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김태웅 서울대 교수·역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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