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봉 집회, 성숙한 민주사회의 증거”
초대 수상 타자 바르키 폴 교수
국제안보·갈등 해결 연구 인정
“DJ, 생전에 변혁 실현한 정치인”
“윤 탄핵 과정 행동 나선 시민들
한국의 내면화된 행동력 보여줘”

지난 13일 개막해 16일까지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리는 제28회 세계정치학회(IPSA) 총회에서는 103개국에서 온 정치학자 3570여명이 국제사회의 정치·외교 현안에 대한 최신 연구 성과를 나누고 있다. 특히 올해 총회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민주주의 정신을 기리는 김대중상이 제정돼 첫 수상자를 배출했다. 국제관계, 국제안보와 평화적 갈등 해결에 연구 초점을 맞춰온 타자 바르키 폴(69) 캐나다 맥길대 교수가 주인공이다. 14일 오후 시상식이 열렸다.
한겨레는 13일 오전 서울 총회 행사장 인근의 한 호텔에서 폴 교수를 만났다. 그는 전날 휴전선을 방문했다고 했다. “비무장지대 건너편에 지어진 공장, 남북을 잇는 도로와 철도도 봤습니다. 그건 남과 북 모두에 평화를 위한 진심 어린 노력이었어요. 중요한 건 이런 기회의 창들을 어떻게 갖게 되는지, 사람들이 그걸 어떻게 활용하거나 오용하는지 여부입니다.”
1시간가량 이어진 폴 교수와의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김대중상 첫 수상자로 선정된 소감은?
“큰 영광이다. 학자로서 나는 평화, 분쟁 해결과 종식, 특히 장기화한 분쟁의 평화적 변화를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사람들은 지난 한 세기 동안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은 수백만명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오래전에 해결되었어야 할 문제들과 씨름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상은 제가 국제 평화와 민주화(를 위한 연구와 활동)에 전념해온 점을 인정해서 주셨다고 생각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학자인 당신에게 어떤 정치인인가?
“김대중 대통령이 생전에 투옥을 포함해 민주주의를 위한 도전을 해온 이력에서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진정한 자유 투사이자 민주주의자였다. 그는 비전과 포부를 가진 정치인, 변혁을 실현시키는 정치인,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 질서를 바꾸고자 했던 인물이다. 그는 한국이든 세계든 어느 대통령보다 더 많은 일을 해냈는데, 그런 사례는 매우 드물다.”
―최근 몇달 새 한국은 극적인 정치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 국회의 탄핵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시민들의 응원봉 집회, 조기 대선을 통한 정권교체에 이르는 정치적 과정을 어떻게 봤나?
“인류 역사상 이 시점에서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한 그 투쟁은 정말 놀라운 광경이었다. 젊은이, 여성, 여러 단체,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특별한 조직이 없이도 행동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놀라웠다. 사실 한국의 민주주의 투쟁은 민주주의에 관심 있는 외부자로서 이전부터 감동적이었다. 한국인들은 민주주의에 대해 얼마나 깊이 사회화되고 내면화되었는지 보여주는데, 그게 바로 민주주의의 가치다. 인간은 처음부터 민주주의자 또는 자유주의자로 태어나진 않는다. 우리는 말 많은 정치인들, 이데올로기, 정체성 정치에 쉽게 조작당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은 독재 정권을 겪으면서도 경제적 번영과 진보적 변화를 이뤄왔다. 또 경제적 부가 동기부여나 가치의 유일한 요소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이는 성숙한 사회의 또 다른 징후로 존경할 만하다.”

―최근 들어 한국 사회에서도 극우세력이 목소리를 높이고 폭력적 행태도 보였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세계적인 극우화 경향의 이유와 대응책은?
“현재 극우주의는 과거에 지배적이었던 그룹들의 정체성 주장과 관련이 있다. 예컨대 서구에서 백인 그룹은 세계 시스템에서 지배적 지위였다. 이러한 국가들은 특정 민족 집단일 수도 있고, 미국에서는 백인 중산층일 수도 있는데, 자유주의(진보) 정당들이 그들의 분리나 고립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위협감을 느끼는 거다. 과거에는 계급이 주로 경제적 분류였지만, 오늘날 우리는 인종적 정체성이나 지역적 정체성과 계급의 결합을 목격하고 있다.”
―많은 나라에서, 다양성을 대표해야 할 의회를 엘리트 그룹이 장악하고, 정치·사회·경제적 양극화가 깊어지고 있다.
“엘리트가 지배하는 체제에서 엘리트는 꼭 정치권력만 가리키는 건 아니다. 기업가일 수도 있다. 엘리트 독점을 방지하기 위해 민주주의는 더 민주적이 되어야 한다. 가치와 권력의 공유, 지역의 권한 강화, 여성과 소수자 그룹의 권한 강화가 필요하다. 쉽지는 않다. 시민들이 정치 지도자들의 정체성 정치에 휘둘리거나, ‘나에게 어떤 이익이 있는가’만 따지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아이디어와 정책을 가진 각성된 그룹이 필요하다. 어쩌면 큰 위기가 필요할 수도 있다. 한국도 민주주의 위기가 없었다면 지금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한반도는 이른바 ‘신냉전’의 최전선이다. 한반도 평화가 동북아시아 지역 안보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과거 냉전과 달리 오늘날 신냉전의 표현 양식은 시민들에게 기본적인 생활·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보다 무기와 군대에 더 많은 돈을 쏟아붓는 것이다. 이는 모든 사회복지 예산을 크게 줄이게 된다. 유럽의 모든 국가도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동맹국들에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5%까지 늘리라고 압박하고 있다. 국가 안보 패러다임이 여러 나라에 확산하고 있다. 세계질서에서 군사화가 진행되면, 냉전시대의 사고방식이 등장한다.”
―한반도, 나아가 갈등 지역의 평화를 어떻게 성취할 수 있을까?
“매우 도전적인 과제다. 냉전과 군비경쟁이 격화하면 한반도도 영향을 받는다. 중국과 미국이 태평양, 특히 남중국해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중요하다. 우리는 현재 매우 민감한 시기에 처해 있다. 무기 통제도, 신뢰 구축도 없다. 지도자들이 신중하지 않거나 국가들이 자기 이익만을 위해 행동하거나 자기 파괴적인 행위를 할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행위자들 간에 신뢰 구축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런 현실에서 정치학은 어떤 쓸모가 있는가?
“정치학은 매우 광범위한 학문 분야다. 정치학 커리큘럼에는 국제관계, 안보, 협상 등 다른 학문에서 다루지 않는 많은 것들이 있다. 정치학은 전쟁과 평화를 가르치는 유일한 학문이다.사람들은 정치학을 배우면서 비판적 분석 능력을 습득한다. 다만 우리가 놓친 점은 정치학이 진보적 성향의 학문이다 보니, 보수주의나 포퓰리즘 같은 다른 쪽에는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거다. 진보적 이데올로기에 구애받지 않고 그들을 더 잘 이해하는 게 과제다.
다른 한편으로, 오늘날 세계가 갈수록 기술 관료주의 쪽으로 바뀌고 있다. 그들은 정보통신(IT) 과학에서는 매우 뛰어난 인재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진보적 사회 교육이 부족하며, 관점이 때로는 매우 뒤떨어져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시민의식과 시민 교육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싶다면 더 나은 시민 교육을 해야 한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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