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같은 내 인생’ 써 내려가는 어르신들

장유진 2025. 7. 14.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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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을 써 보자는 아이디어는 어르신들의 입버릇 같은 말에서 시작됐다.

문학은 모두 삶을 담은 이야기다.

자서전 쓰기반의 반장 김종복(76)씨는 "내 삶의 걸림돌 같았던 고비들이 이 책을 읽을 누군가에겐 디딤돌이 될 수 있길 바라며 글을 쓴다"고 했다.

도희주 작가는 "글 쓰는 이론적 방법만을 가르치기보다 어르신들이 서로 소통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해 낼 수 있게 유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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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문학관 ‘은빛 자서전 쓰기’ 11명 참가
수업 맡은 도희주 작가 먼저 옛 추억 꺼내면
저마다의 이야기 글로 써내며 즐거운 시간
오는 9월 책 한 권으로 묶어 간직할 계획도
‘내 살아온 이야기로 소설책 몇 권은 나온다’

자서전을 써 보자는 아이디어는 어르신들의 입버릇 같은 말에서 시작됐다.

문학은 모두 삶을 담은 이야기다. 저마다 다른 배경과 사건, 주제를 가진 이들이 자신을 문학으로 녹여내고자 모였다. 지난 11일 진해노인종합복지관에서 ‘은빛 자서전 쓰기’에 도전 중인 11명의 어르신을 만났다.

경남문학관의 2025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찾아가는 문학관-은빛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은 거동이 불편해 문학관 방문이 힘들 고령층을 위해 상주 작가인 도희주 아동문학가가 직접 노인복지관을 찾아 운영하는 문학 수업이다.

지난 11일 진해노인종합복지관에서 수강생들이 ‘은빛 자서전 쓰기’ 교육을 듣고 있다.

‘은빛’ 수강생들은 인생을 한 편의 작품으로 묶어내기 위해 차근히 계단을 밟아 올라가고 있었다.

매주 1회씩 총 12주간 이어지는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은 회차마다 인생의 한 시기를 되돌아보고 정리해 작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네 번째 강의가 펼쳐진 이날 거슬러 올라간 곳은 20대 시절, 결혼 상대를 만나고 신혼을 꾸려 나가던 때의 기억이다.

수업을 맡은 도희주 작가가 먼저 자신의 배우자를 처음 만났던 순간과 결혼을 결심한 이유를 풀어놓자, 강의실 여기저기서 저마다의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한쪽에서 “보면 남편들이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가정이 잘사느냐 못사느냐 결정되더라. 꼼꼼히 골라 만나라”하고 조언하면, 어디선가 “아닌데. 우리 집은 바깥 아저씨 말고 내가 다 써버렸는데”하고 받아치는 식이다.

두런두런 말을 나누면서도 어르신들의 손은 바삐 움직인다. 대화하며 풀어놓은 이야기를 글로 담기 위해 각자의 방식대로 기록한다. 첫사랑의 이름을 원고 속에 숨겨 적어 두는 이도 있고, 공책이 빼곡해질 만큼 줄글을 써 내리는 학생도 있다.

자서전 쓰기반의 반장 김종복(76)씨는 “내 삶의 걸림돌 같았던 고비들이 이 책을 읽을 누군가에겐 디딤돌이 될 수 있길 바라며 글을 쓴다”고 했다. 그는 모집과정에서부터 “우리가 과거의 삶을 돌이켜 바라보는 것은 후손에게 전할 수 있는 하나의 유산이 될 수 있다”고 동료 학생들을 북돋웠다.

걸어온 길을 차근차근 되짚으며 잊고 지냈던 자기 모습들을 재발견하기도 한다. 수업을 계기로 오랜만에 옛 기억을 회상해 봤다는 홍정애(71)씨는 “지금껏 나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쓰다 보니 어릴 적엔 여행을 엄청 좋아하는 사람이었단 걸 새삼 알게 됐다”고 전했다.

오직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해 펜을 든 수강생도 있다. 조선미(64)씨는 “딸이 언젠가 ‘우리 엄마는 어떤 사람이지?’ 궁금해졌을 때 대답이 될 만한 걸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했다. 딸은 어린 나이에 유학 생활을 시작해 서른넷이 된 현재까지도 외국에 머물고 있다. 자기 청년 시절 삶을 돌이켜보는 지금, 청년기를 살아가고 있는 딸에게 어떤 말을 남기고 싶냐 물으니 조씨는 “결혼도 하지 말고, 아이도 낳지 말고. 너는 그저 너만을 생각하며 멋진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해 줄 것”이라며 웃었다.

도희주 작가는 “글 쓰는 이론적 방법만을 가르치기보다 어르신들이 서로 소통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해 낼 수 있게 유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업은 문맥상의 서두를 찾아 길을 터 드리고, 오탈자를 손봐드리는 정도다. 문장에 크게 손을 대지 않아도 그럴싸한 이야기들이 툭 툭 나온다”며 어르신 학생이 쓴 원고를 건넸다.

“자서전을 써 보겠다고 거창한 계획을 세웠건만 막상 지난 기억을 끄집어내는 게 아름답지도, 행복하지도, 그렇다고 불행하지도 않은 것 같다. 이 미묘한 감정들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나를 바라보고 싶다.” - 조선미 씨의 자서전 중

어르신들은 수십 년 세월의 감정을 반추한 그들만의 문학을 오는 9월 한 권의 책으로 묶어 간직할 예정이다.

글·사진= 장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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