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불

김경수 시조시인 2025. 7. 14.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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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어느 날 상우가 민호에게 가불을 신청하였다. 
민호는 반색을 하며 한마디로 거절하였다. 
상우는 친구가 상을 당했다고 했다. 민호는 못 들은 척 했다. 
민호는 규모가 작은 건설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건설업체 일이라는 것이 특성상 날씨와 계절을 예민하게 접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성격을 갖고 있었다. 
민호는 지금처럼 한창 바쁜 계절에 인력을 구하기가 무엇보다 절실한 때였다. 
노동 인력이 어디에 소속되지 않는 관계로 그때그때 인력을 모집해서 일처리를 해야만 했다. 
규모가 그럴싸하다면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면모를 갖추고 움직일 수 있겠지만 민호의 사정은 그렇지 못했다. 
민호는 무조건 상우를 내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게다가 주변 노동자들의 눈치도 한 몫 거들었다. 
민호의 머리속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민호는 의심이 많은 편의 사람이었다. 그런 민호가 쉽게 가불을 해 줄 리가 만무해서다. 
상우가 큰 소리로 거칠게 대들었다. 눈을 부릅뜬 두 사람의 얼굴 표정이 한바탕 큰 싸움이라도 벌일 태세였다. 
민호는 가뜩이나 한창 바쁜 지금 상우의 가불이 못마땅 함으로 인해 심기가 어지러웠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가불을 해가면 그 다음날 안 나온다는 소문이 예부터 전해져 왔다. 
득이 될 것이 하나도 없었다. 돈 주고 일에 차질이 생기니 말이다. 
상우도 큰소리를 쳐 놓고 괜한 후회감이 들었다. 아무리 바쁜 철이라 하지만 당장 일거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였다. 
민호도 상우가 말한 상갓집이 민호에게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민호는 자칫 인심 사나운 사람으로 소문이 날까 난처하였다. 악소문은 때로는 일을 어렵게 만들기도 해서다. 
민호는 켕기는 찜찜함을 뒤로하고 상우에게 굳게 약속을 다짐하며 가불을 해주었다. 
한켠에 자꾸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상우는 일이 끝나자 곧장 장례식장으로 달려가 아는 지인들을 만나 한자리에 어울려 술을 거나하게 마셨다. 
어찌보면 민호의 의심이 이해가 갔다. 시간이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돌아간 텅 빈 장례식장은 상주들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상우는 어쩔 수 없이 장례식장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에 갑자기 나타난 차를 피하려다 휘청이는 술취한 몸을 가누지 못해 돌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상우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집으로 돌아왔다. 몸이 성치 않은 듯 보였다. 
다음 날 건설현장에 상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민호가 전화를 했다. 상우가 받지 않았다. 
상우는 간밤에 일로 누워 있었다. 어떤 연유가 되었든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은 빗겨가지 않았다. 
민호는 몹시 후회를 했다. 마치 속은 것 같은 배신감에 화가 났다. 그때 누군가 민호에게 다가와 확인한 바 없지만 상우에게 간밤에 있었던 일로 얼굴과 몸을 다쳐 보이지 않는 것 같다고 누군가 보았다는 얘기를 해 주었다. 
민호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민호는 점점 상무의 진실이 궁금해져 갔다. 
잠시 후 민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상우였다. 우선 상우는 민호에게 미안하다는 말로 사과를 하였다. 
상우는 간 밤에 있었던 일로 자신을 변론하면서 스스로의 진심을 전달하였다. 그렇게나마 민호는 변명이라 할지라도 다소나마 위로가 되었다. 
비록 약속을 지키지 못해 어기게 되었지만 거짓은 아니라는 것이 교감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며칠 후 상우가 얼굴에 상처 딱지를 붙이고 웃으며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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