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성운(省雲), 스승이 지어준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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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이 넘어 다시 글공부를 시작했다.
선생은 단지 이름 하나만을 남기신 것이 아니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말씀이었지만, 그날 이후 나는 스스로를 '성운'이라 부르며 이 길 위에 서게 됐다.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중어중문학과에 편입해 다시 학생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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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이 넘어 다시 글공부를 시작했다.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지는 오래됐지만 한문만큼은 초보에 가까웠다. 고전을 펼치면 아는 글자보다 모르는 글자가 더 많았고, 조선 선비의 문장을 읽으려면 한 줄 한 줄에 숨을 골라야 했다.
나는 학산 조종업 선생께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제자는 아니었다. 다만 학산의 스승인, 이철승 선생께서 성재 유중교 선생을 당대 최고의 석학이라 평하셨다는 말씀은 오래도록 전해 들었다.
학산 선생은 어느 날, 내게 여러 권의 책을 건네시며 뜻밖에도 호(號)를 지어주셨다. '성운(省雲)' ? 살필 성(省), 구름 운(雲). 그 순간은 지금도 또렷하다. 선생은 단지 이름 하나만을 남기신 것이 아니었다. 동시에 내 이름을 제자들 가운데 함께 적어주셨다. 직접 가르친 적도 없고, 한문도 아직 서툰 나에게. 그것은 거의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감격과 부끄러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선생은 말씀하셨다. "성운은 성재의 여운이다." 성운이라는 이름은 곧 성재 유중교 선생의 여운이라는 뜻이었다. 성재는 화서 이항로의 제자이며, 나의 5대조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화서학파의 학맥은 성재 선생에 이르러 찬란히 꽃피었고, 그 정신은 존재 유진하, 직암 이철승, 학산 조종업 선생으로 면면히 이어졌다. 말년의 선생은 내게 "스승을 본 것 같다"는 말씀을 남기셨고, 그 순간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감당하기 어려운 말씀이었지만, 그날 이후 나는 스스로를 '성운'이라 부르며 이 길 위에 서게 됐다.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중어중문학과에 편입해 다시 학생이 됐다. 이십대 청년들과 나란히 앉아 글자를 다시 쓰고, 외우고, 읽었다. 이어 고전번역원 연수과정에 입학해 3년 동안 한문 원전을 붙들고 살았다. 하루 여섯 시간 이상 글 곁을 지켰다. 지쳐 손을 놓고 싶을 때면, '성운'이라는 두 글자를 떠올렸다. 그 이름은 선생이 내게 남긴 뜻이자, 내가 걸어야 할 길이었다. 그 무렵, 시조 한 수가 떠올랐다.
'성운의 길-논어의 한 글귀가 마음에 닿을 적엔/뜻은 다 몰라도 스스로 고요하네/문은 다 열지 못하고 길 위에만 있어도/성운으로 호 지어준 학산 선생 뜻 새기며/어둡던 글 길 위를 말없이 걸어왔네/사은의 손길 아래서 길은 점점 넓어진다.'
나는 지금도 길 위에 있다. 이름 하나가 한 사람을 바꾸기도 한다. '성운'이라는 이름은 나를 바꾸었고, 나를 다시 걷게 했다. 살피는 마음으로, 스승의 여운처럼 조용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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