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톡톡] ‘교실 속 금쪽이’ 제도적 개입이 절실

교직 경력이 10년,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감당하기 어려운 아이들이 있다. 교육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아이들이다.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해 보이지만, 부모의 무관심으로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곤 한다.
TV 프로그램 ‘금쪽같은 내 새끼’에 등장하는 아이들 중 일부는 상담이나 부모의 양육 태도 변화만으로 호전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조차 한계가 있는 경우가 많다. 병원 진단과 의사의 처방을 통해 상태가 뚜렷이 개선되고, 가정과 학교 모두에서 안정을 되찾는 사례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교실 속 ‘현실 금쪽이’들은 어떤가. 이들 대부분은 여전히 적절한 치료와 지원 없이 또래와 교사에게 영향을 주며 일상을 이어간다. 현행 제도상, 학교는 부모의 동의 없이는 상담조차 강제로 진행할 수 없다. 고작 ‘권고’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한계는 “아이가 상담받기 싫어해요” “나중에 시간 될 때요”라는 회피성 반응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정신병자로 보시나요” 같은 날선 반응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교사가 학생의 실패를 바랄 리 없다. 교사는 언제나 아이의 가능성을 믿고, 주변과 더불어 성장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럼에도 그 마음은 종종 왜곡되고, ‘아동학대 고소’라는 극단적 상황을 우려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교사는 점점 움츠러든다.
미국과 독일은 법적·제도적 장치를 통해 일정 조건 아래 학교가 상담이나 치료를 공식적으로 요청하고, 경우에 따라 이를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특히 미국은 학생의 행동이 학업과 타인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줄 경우, ‘행동개입계획(BIP)’에 따라 심리 상담이나 치료 프로그램 참여를 요구할 수 있으며, 학부모가 이를 거부할 경우 교육청이 법적 절차로 대응한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실효성 없는 권고에 머물러 있다. 결국 아픈 아이의 변화는 부모의 의지에 달려 있고, 교사는 무력한 방관자가 되기 쉽다. 치료 여부가 부모의 선택에만 맡겨진 현실 속에서 교실은 더 이상 안전한 배움터가 되지 못한다. 이제는 교사의 선의가 아닌, 제도의 개입이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