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으로 읽는 오늘] ‘구복여행(求福旅行)’과 복 짓기

강지영 목포대학교 교양학부 조교수·고전문학 박사 2025. 7. 14.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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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영 목포대학교 교양학부 조교수·고전문학 박사

아무리 노력해도 앞이 보이지 않을 때, 태어나면서부터 복은 정해져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내 손에 쥐어지는 것은 없고 베짱이처럼 유유자적한 누군가의 손은 채워져 있어 보일 때면 더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자면 나의 노력이 억울하고 허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하여 뭔가를 하고자 하는 의지를 꺾게 된다. 복은 정말로 타고나는 것이기만 할까?

우리 설화 중에 복을 구하러 떠나는 총각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 있다. 살려고 안간힘을 써 보지만 가난의 사슬을 피해 갈 수 없었던 한 총각이 서천서역국으로 복을 빌러 떠난다. 그 여정 중 한 여인을 만난다. 총각에게 길을 안내해주던 여인은 서천서역국에 가면 자신의 배필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봐 달라고 한다. 여인의 길 안내가 끝나고 혼자 길을 가던 총각은 노인을 만난다. 노인은 서천서역국에서 자기 집의 꽃이 피지 않는 이유를 물어봐 달라고 부탁한다. 서천서역국에 이르기 직전 총각은 마지막으로 이무기의 도움으로 바다를 건넌다. 이무기는 그가 용이 되지 못하는 이유를 알려 달라고 한다.

복구하기 여정의 종착지인 서천서역국에 이른 총각은 여인과 노인 그리고 이무기의 질문에 관한 답을 듣고 돌아온다. 그런 다음 차례차례 답을 들려준다. 이무기에게는 두 개의 여의주 중 하나를 버리면 용이 된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이무기가 여의주를 버리고 그게 총각의 몫이 되어 남겨진다. 노인에게는 나무 밑에 금덩이가 있어 꽃이 결실을 보지 못한다고 한다. 나무 밑에서 금덩이를 파낸 노인이 그 금덩이를 총각에게 준다. 마지막으로 여인의 질문에는 총각 자신이 여인의 배필이 되는 것으로 답을 제시한다.

복을 구하러 떠나는 길에 만난 이들의 말을 흘려듣지 않고 그들의 질문에 대한 답까지 구해 온 총각은 그가 바랐던 바로 그 복을 얻었다. 그로 인해 가난에서도 벗어났을 뿐 아니라 아내까지 얻었다. 부와 가정을 전부 가지게 되었으니 평범했던 총각이 인생에서 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얻은 것과 다름이 없다. 총각의 여정을 지켜보고 있자면 총각이 복을 받게 한 중심에 무엇이 있었을까 하고 천천히 생각해 보게 된다. 복을 지으러 떠난 길에서 만난 이들의 부탁을 경청하여 답을 전해주는 것이 복이 되어 돌아온 것인지, 길을 떠난 것 자체가 복이 되어 돌아온 것인지, 그도 아니면 가난을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가 복이 되어 돌아온 것인지 하고 말이다.

숨이 턱 막힌 것 같을 정도로 막다른 길목에 다다랐을 때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돌아 나가거나, 기다리거나, 길을 열어가는 것의 세 가지다. 선택지는 제각각이다.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이 이야기는 복은 결국 선택을 하고 그 길을 꾸준히 이어가며 제대로 듣고 제대로 응하는 데서 오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서천서역국에 이른 총각이 어차피 목적지에 이르렀으니 그가 그곳에 도착할 수 있게 조력한 이들의 말을 무시해 버렸거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들에게 답을 들려주지 않았다면 총각이 받은 복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총각이 서천서역국에 이를 수 있도록 도와준 이들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고 그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성심껏 전한 데서 총각의 복 짓기는 시작된 것은 아니었을까?

복을 구하러 가는 설화는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광포한다. 이는 모두의 가슴에 복을 구하고자 하는 염원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곧 복은 바람만 가진다고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 무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뜻도 된다. 복이 독이 될지 집이 될지는 주변인에 대한 세심한 살핌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사소해 보일 수 있는 것들을 지켜나가는 데서 복이 지어지는 것은 아닐까. 주변의 말에 귀를 닫고 있지 않은지 그게 나의 복 짓기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