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설] 수박

"수박을 먹는 기쁨은 우선 식칼을 들고 이 검푸른 구형의 과일을 두 쪽으로 가르는 데 있다. 잘 익은 수박은 터질 듯이 팽팽해서, 식칼을 반쯤만 밀어 넣어도 나머지는 저절로 열린다. 수박은 천지개벽하듯이 갈라진다. 수박이 두 쪽으로 벌어지는 순간, '앗!' 소리를 지를 여유도 없이 초록은 빨강으로 바뀐다. 한 번 칼질로 이처럼 선명하게도 세계를 전환시키는 사물은 이 세상에 오직 수박뿐이다."
소설가 김훈의 이 문장처럼 수박은 단순한 과일이 아니다.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은유와 상징의 대상이기도 하다. 경북일보 12층 편집국 창가에 주먹만 한 수박이 달렸다. 지난봄 배달된 과일을 먹다 뱉은 수박씨를 화분에 심은 것이 싹을 틔워 넝쿨을 뻗었다. 덩굴손이 달린 줄기에 노란 꽃을 단 수박이 달리고, 밀리터리룩의 얼룩무늬를 점점 키워가고 있다. 수박은 가는 줄기에 그 굵은 열매를 단다는 것 자체가 신비롭고 놀랍다. 아침저녁으로 직원들이 들여다보고 있다.
수박은 이처럼 그저 감성적 대상만은 아니다. 여름철 대표 과일인 수박 값이 큰 폭으로 올랐다. 1년 전보다 36% 넘게 뛰어서 수박 한 통이 3만 원에 육박하고 있다. 본격 피서철이 시작됐는데 으레 들고 가던 수박 한 통도 없이 피서지로 떠나야 할 지경이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 속에 수요가 몰리면서 오이나 애호박 등 주요 농산물 가격도 일제히 오름세다.
정치권에서도 수박이 등장했다. 더불어민주당 대표 경선에 나선 정청래 의원이 일부 당원들이 '겉과 속이 다른 수박'이라 비난하자 12kg짜리 왕수박을 들고 "수박 노노!"를 외쳤다고 한다. 그는 2016년 공천 탈락 뒤 텃밭 농사를 시작해 딱 한 번 왕수박 농사를 성공했던 경험을 예로 들며 그 어려운 길을 스스로 걸을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정치 권력 다툼의 '수박 논란'은 일년생 풀에 불과하지만 검푸른 원구 속에 엄청난 수분과 붉은 색 과육, 청량한 향기를 간직한 경이롭고 신비롭기까지 한 수박에 대한 모독인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