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서 온 서울시민①] 주민센터 공무원도 '당황'…"전입신고만 2시간"

정세진 기자 2025. 7. 14.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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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 출신 북한이탈주민의 힘겨운 서울살이 3일차
서울남부하나센터 지역전입 초기집중교육 동행취재
[편집자주] 매년 7월14일은 '북한이탈주민의 날'이다. 지난해 국가기념일 지정 이후 두 번째 '북한이탈주민의 날'을 맞아 북한 출신 서울시민의 삶을 동행 취재했다. 서울에 사는 북한이탈주민은 모두 6372명. 국내 거주 중인 북한이탈주민의 약 20%가 서울에 산다. 북한이탈주민 대다수는 "수도에 살고 싶다"며 서울살이를 택했다고 한다. 쉽지 않은 서울살이를 시작한 '북에서 온 서울시민'의 삶을 따라가 본다.

지난 11일 서울 구로구의 한 주민센터에서 북한이탈주민 A씨가 자녀의 출생신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지금 선생님(사회복지사) 아이가 태어났다는 거예요?"
"아니요, 이 분이 북한이탈주민이신데 자녀를 출생신고하러 오신 거예요."

지난 11일 오후 서울 구로구의 한 주민센터. 함경북도 출신 30대 여성 A씨가 서류 뭉치가 든 종이 봉투에서 주민등록증 발급신청 확인서와 북한이탈주민 신원사실확인서를 꺼냈다. A씨는 아들 B군(7)의 출생신고서를 함께 제출했다. 낯선 상황이었는지 주민센터 직원은 A씨와 사회복지사 지혜주씨를 번갈아 쳐다봤다. 지씨는 익숙한 듯 자신이 아니라 중국에서 태어난 이탈주민의 자녀 출생신고를 위해 왔다고 설명했다. 주민센터 직원은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주변 동료에게 도움을 청했다. A씨가 서울에 온 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통일부의 '북한이탈주민(이탈주민) 정착지원 실무편람'에 따르면 제3국에서 출생한 이탈주민 자녀는 관할 지자체에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출생신고서 작성 후 이탈주민 신원사실확인서를 함께 제출해야 한다. 통일부 실무편람이 무색하게 일선 주민센터에선 이탈주민 관련 행정 업무가 낯설어 보였다.

머니투데이는 서울살이를 위해 서울남부하나센터에서 지역전입 초기집중교육을 받는 북한이탈주민(이탈주민) 3명을 하루 동안 동행취재했다. 이탈주민은 입국 후 국가정보원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를 거쳐 통일부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에서 3개월간 사회적응 훈련을 받는다. 하나원에서 퇴소하면 배정 받은 지자체의 지역하나센터에서 약 일주일간의 초기 집중교육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해당 지자체에 전입신고를 한다.

이탈주민들에게 서울살이는 첫 관문부터 난관이다. 전날 A씨의 전입 신고엔 2시간이 꼬박 걸렸다. 8년째 서울 남부하나센터에서 북한이탈주민의 지역적응을 돕고 있는 지씨는 "주민센터에 올 때마다 공무원의 대응이 다르다"며 "1~2년 단위로 담당자가 바뀌어 절차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입국 후 서울에 정착한 이탈주민은 30명이 채 안 된다. 서울시 426개 행정동 주민센터 공무원 대다수는 이탈주민 관련 업무를 해 본 적이 없다. 지씨는 "작년부터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인식 개선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출생신고도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지씨는 "공무원 잘못은 아니다"라며 "사람이 하는 일이라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서울살이 3일차인 A씨는 아직 주민등록증이 없다.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통일부에서 나눠준 종이봉투에 서류뭉치와 종이통장을 넣어 가지고 다닌다. /그래픽=이지혜


처음 하는 행정 업무인데도 최대한 노력하는 주민센터 직원들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중국에서 태어난 7살 소년의 신분을 증명하는 서류는 북한이탈주민 신원 사실관계 확인서 1장이 전부다. A씨가 함경북도에서 탈북한 시점, 중국에서 B군을 출산한 날짜, B군의 아버지 이름, A씨와 B군의 한국 입국 시점 등이 두 줄로 간략히 쓰여 있다. 사진이나 주민등록번호처럼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주민센터 직원은 동일 업무를 처리했던 인근 자치구와 여러 차례 통화하고 나서야 출생신고를 진행할 방법을 찾아 냈다.

1시간 10분 만에 아들의 출생신고를 마친 A씨는 기초생활수급비와 아동수당 신청을 위해 옆 창구로 자리를 옮겼으나 결국 수급비와 아동수당은 이날 신청하지 못했다. 출생신고 전산 접수가 완료되지 않아 2인 가구를 증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씨는 "이탈주민들이 전입을 오면 주민센터 업무에만 보통 이틀은 써야 한다"고 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서울에 사는 북한이탈주민은 총 6372명. 국내 거주 중인 북한이탈주민의 약 20%가 서울에 살고 있다. 북한이탈주민들 대다수는 "수도에 살고 싶어서" 서울살이를 택했다. /그래픽=이지혜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서울 생활을 시작하는 이탈주민들에겐 지씨와 같은 사회복지사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A씨는 경기 안성의 하나원에서 퇴소한 직후 서울 구로구의 한 임대아파트에 짐을 풀었다. 다음날 남북하나재단의 도움으로 김치냉장고를 샀다. 언니 도움으로 벽걸이 에어컨도 장만했다.에어컨을 마련하지 못한 이탈주민은 폭염을 피하기 위해 지인 집을 찾아야 한다.

이탈주민의 한국살이는 시작부터 버겁지만 그나마 서울시에선 사정이 나은 편이다. 서울시는 이탈주민 세대원수에 따라 가구당 125만~180만원 상당의 가전·가구 물품 비용을 지원한다. 임대아파트에 입주하기 전 청소와 방역비용 25만원도 지원한다. 서울남부하나센터를 운영 중인 한빛종합사회복지관 관계자는 "예산이 없는 지자체에선 사회복지사들이 입주 청소까지 도와줘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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