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流 4.0시대ㅣK-콘텐츠가 구비해야 할 NEW 생존 키트

아이즈 ize 박현민(대중문화 평론가) 2025. 7. 14.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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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한방은 없다! 체계적인 전략과 설계가 급선무

아이즈 ize 박현민(대중문화 평론가)

슈퍼 IP '나 혼자만 레벨업'의 드라마 판 주인공 변우석, 사진출처=스타뉴스DB

한류가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는 건 모두가 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이다. 어디로, 그리고 어떻게 가야 할까? 한때 'K-콘텐츠'라는 이름만으로 프리미엄이 붙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꼬리표만으로는 팔리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건 IP(Intellectual Property, 지식재산), 유니버스, 그리고 그라데이션K다. 이 세 가지가 한류의 새로운 생존 키트다. 여전히 '오징어 게임' 신드롬에 기대 "우리도 일단 만들면 히트칠 거야"라는 안일한 믿음에 빠진 이들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앞다퉈 쏟아낸 K-콘텐츠 중 상당수는 기대에 못 미치는 완성도와 성과로, 오히려 'K'라는 브랜드의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

◆ 진짜 핵심은 IP

넷플릭스가 바꾼 건 단순한 유통 구조가 아니다. 이제 전 세계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같은 콘텐츠를 소비하고, 같은 밈을 공유하는 '동시성의 시대'에 들어섰다. '오징어 게임'은 그 변화의 상징이었지만, 이후 파생된 실사판 예능 '더 챌린지'와 미국판 스핀오프 등은 원작자의 손을 떠나 넷플릭스의 자산이 됐다. 본질은 분명히 K-콘텐츠였지만, 2차 저작권은 전혀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 맛있는 레시피를 개발해놓고 프랜차이즈 권리는 다른 회사가 가져간 꼴이다. 오늘날 콘텐츠 산업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누가 이야기의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IP를 소유한 자가 콘텐츠 시장을 지배하는 시대, 이제는 상식이 됐다.

'오징어게임' 시즌3, 사진제공=넷플릭스

'나 혼자만 레벨업'은 그 흐름의 교과서적 사례다. 원작 웹소설과 웹툰은 글로벌 누적 조회수 143억 뷰를 기록하며 초대형 IP로 자리 잡았고, 일본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 역시 주인공 '성진우'의 이름과 한국이라는 배경을 유지한 채 공개됐다. 한미일 다국적 합작이었지만, 이야기는 분명히 '한국의 것'이었다. 그리고 이 IP는 다시 변우석 주연의 넷플릭스 실사 시리즈로 확장될 예정이다. 하나의 이야기가 장르와 매체, 국경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증식하는 구조다. IP 없이 콘텐츠를 만드는 건 언제 퇴거 명령이 떨어질지 몰라 늘 불안한 세입자의 삶과 다름없다.

◆ 유니버스 : 하나의 세계, 무한한 이야기

IP가 안정적으로 확보되면, 그다음 단계는 세계를 확장해가는 '유니버스' 구축이다. 최근 K-콘텐츠는 단발성 서사를 넘어 장기 프로젝트를 염두에 둔 확장형 설계를 지향한다. 강풀 작가의 '무빙'이 대표적인 사례다. 원작 웹툰을 바탕으로 한 디즈니+ 시리즈가 성공적으로 안착했고, 다층적 세계관은 후속작 '조명가게'와 예정된 '무빙2'를 통해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무빙'의 희수(고윤정), 시간을 멈추는 능력자 영탁(박정민) 같은 캐릭터들은 각기 다른 이야기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무빙', 사진제공=디즈니+

신원호 감독과 이우정 작가의 '슬기로운 의사생활' 유니버스도 마찬가지다. 스핀오프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은 새로운 인물과 배경을 중심으로 두되, 기존 율제병원과 인물들을 연결하며 세계관을 확장했다. 본편 주인공들이 카메오로 출연해 유니버스의 연속성을 공고히 한다. 연상호 감독의 영화 '부산행' 역시 프리퀄 애니메이션 '서울역'과 시퀄 '반도' 등으로 연결되며 '연니버스'(연상호+유니버스)라는 독자적 세계관을 구축했다.

이처럼 유니버스는 하나의 IP를 단편적인 소비에 그치지 않고, 세계관을 구축해 무한 확장 가능성을 제공한다. 관객은 '이 세계에서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라는 기대감을 품으며 콘텐츠 안에 더 오래 머물게 된다.

◆ 그라데이션K :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

검증된 IP 기반 콘텐츠는 점점 글로벌 협업의 중심에 놓이고 있다. 공지영과 츠지 히토나리의 소설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은 이세영과 사카구치 켄타로가 함께한 OTT 시리즈로 탄생했고, 웹소설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한국에 이어 일본에서도 드라마화됐다. 일본판은 원작 IP뿐 아니라 '더 글로리'의 안길호 감독이 연출을 맡아 한국 콘텐츠 제작 노하우까지 직접 수출한 사례가 됐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미키17' 역시 한국 감독과 일부 인력을 제외하면 대부분 해외 배우와 스태프로 구성됐으며,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팝 등 한국 요소를 활용했지만 실질적으론 해외 제작 콘텐츠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 일본판 포스터, 사진제공=CJ  ENM

이제 K-콘텐츠를 단일한 색으로 정의하긴 어렵다. 명확한 국경과 제작 경계가 사라졌고, 단색이 아니라 그라데이션처럼 다양한 색조로 존재한다. 순수 국내 제작 콘텐츠부터 한국적 요소를 일부만 차용한 글로벌 협업 작품까지, 그 사이 어디쯤에서 새로운 색을 띤 작품들이 끊임없이 탄생하고 있다. 전통적인 '순수 한국산'과 '완전 해외 제작' 사이의 무수한 조합이 가능한 시대가 온 것이다. 이러한 그라데이션K 환경 속에서 K-콘텐츠는 단순한 확산을 넘어, 조합과 확장이라는 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글로벌 제작 환경에서 콘텐츠의 정체성을 지키는 방식, 국가 간 문화 코드의 절충 방안, 현지화와 자산화를 동시에 도모하는 전략이 더 치밀하게 요구된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누가 이야기의 권리를 가지고, 그것을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고 확장할 수 있느냐다. IP를 소유한 자는 하나의 서사를 만들고, 그 서사는 유니버스를 통해 증식되며, 그라데이션K라는 글로벌 환경 속에서 유연하게 재해석된다. 콘텐츠를 잘 만드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이야기를 어떻게 자산화하고, 세계 시장과 연결하며,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로 설계할 것인가. 이것이 한류 4.0 시대가 우리에게 던진 진짜 과제다.

콘텐츠 산업은 이제 완전히 새로운 게임의 룰을 요구한다.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넘어, 그 이야기가 어떻게 확장되고 진화할 수 있는지까지 고민해야 하는 시대다. IP 소유권부터 시작해 유니버스 구축, 글로벌 협업까지, 모든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역량만이 K-콘텐츠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든다. 더 이상 '운 좋게 한 방' 터뜨리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전략과 설계로 승부해야 할 때다.

박현민(대중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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