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경의 SF 프로토타이핑] '케이팝 데몬 헌터스', 여성 샤먼 수퍼히어로 차세대 수퍼히어로의 탄생

스토리텔링에서 '히어로'란 클라이맥스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인물을 의미한다. 약 2000년 전 신화 속에서 히어로는 곧 신들이었다. 그 당시엔 신이 곧 문제 해결자였다. 중세에는 신의 권위를 부여받은 왕과 귀족이 이야기의 히어로가 되었다.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은 오직 그들에게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민중이 점차 권력을 갖게 되자, 이야기 속 히어로 역시 변화하기 시작한다.
홍길동과 로빈 후드 같은 평민 영웅들이 등장했고, 현대문학에 들어서는 히어로가 더 이상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보다는 문제를 인식하고 제기하는 '관찰자'의 역할로 옮겨가게 된다. 개인이 더 이상 사회 전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 속에서, 문학은 문제의식과 화두만 던지는 방식으로 전환된 것이다. 하지만 SF 장르에서는 여전히 현대의 병리적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는 히어로들이 존재한다.
SF 속 히어로들도 시대에 따라 변모해왔다. 1910년대 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비로소 진정한 단일 생태계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알렉산더 대왕조차 지구의 일부만을 정복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치와 같은 전 지구적 악의 등장은 인류가 그에 맞설 히어로를 간절히 원하게 만들었다. 1930년대, 마블과 DC에서 본격화된 히어로 장르는 미국식 영웅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혼자서 지구를 지키는 수퍼맨은 냉전 시대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미소 냉전이 무너진 이후, 그런 히어로는 더 이상 박스오피스에서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그 자리를 대신한 건, 동유럽·러시아·미국 등 다양한 국적의 히어로들이 협력하는 '어벤져스'형 팀플레이였다. 각기 다른 배경의 히어로들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 갈등하면서도 협력하는 서사 구조였다.
그리고 2020년 팬데믹 이후, 세계는 급속히 디지털화되었고, 불안의 온도는 더 높아졌다. 이제는 오프라인 세계가 아니라 온라인에서 마음을 지키는 시대가 되었다. 바로 이 시점에 등장한 것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다.
이 영화의 감독인 한국계 캐나다인 매기 강(Maggie Kang)은 이 작품을 기존의 히어로물과는 다른 새로운 세대의 히어로물로 기획했다고 밝혔다. 이 작품은 차세대 히어로 서사의 전환점으로서 세 가지 뚜렷한 특징을 보여준다.
샤먼 히어로와 샤먼 빌런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히어로는 수퍼맨이나 어벤져스처럼 단순히 악을 제거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악과 소통하고, 정화하여 보낸다. 이들이 맞서는 '악'은 현대인의 집단적 불안과 죄책감을 상징한다. 그 정화의 과정은 노래와 춤, 즉 굿, 리츄얼의 성격을 띤다.
이들은 평소 몸과 마음을 수련하며 하늘과 인간을 잇는 존재들처럼 그려진다. 실제로 케이팝 아이돌은 마약, 스캔들, 무례한 행동이 용납되지 않는 '청결한 장르'로 인식되며, 해외 부모들이 자녀의 케이팝 팬덤을 오히려 장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샤먼 빌런 또한 음악과 춤을 통해 현대인을 도피와 향락으로 유도한다. 샤먼 히어로와 빌런의 차이는 힘이 아니라 태도에 있다. 히어로 루미가 자칫하면 빌런이 될 수 있다는 설정은, 선과 악의 경계가 절대적인 능력이 아니라 '정신적 태도'에서 비롯됨을 암시한다.
이웃집 여성 히어로
매기 강 감독은 이 영화의 히어로들을 섹시하고 완벽한 여성상이 아니라, 결함 있고 사람 냄새 나는 캐릭터로 그리고자 했다. 관객들이 일상에서 만날 법한 친근한 여성들이 히어로로 그려진다. 이는 여성에게 주어지던 비현실적인 완벽함의 신화를 벗겨내는 시도이기도 하다. 아이돌이라는 직업상 미모와 신비로움이 요구되는데도, 이들은 오히려 결함을 드러낼 자유를 존중받으며 사랑받는다.
정의(情誼) 기반의 관계 설정
케이팝 밴드처럼 숙식과 일상을 함께하는 이들은 미운 정, 고운 정이 얽힌 강한 유대 관계를 보여준다. 그렇기에 큰 오해가 생겨도, 빠르게 회복하고 다시 믿음을 회복하는 회복탄력성이 강하다. 이는 프로젝트 때문에 모인 '어벤져스'형 히어로들과는 다른 방식의 서사다.
흥미롭게도, 이 정은 빌런에게도 적용된다. 루미는 빌런 진우와 로맨틱한 감정과 공감을 나누고, 그의 상처를 이해하고 슬퍼하며 정화의 방식으로 그를 '처치'한다.빌런의 육체는 사라지지만, 그의 정신-즉 죄책감과 불안-은 치유된다. 이 세계에서 히어로와 빌런 간의 싸움은 육체가 아닌 정신의 영역에서 벌어진다.
'한'과 '정'이라는 감정의 정화 끝에, 모두는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히어로들은 무기로 싸워서 죽이는 것이 아니라 문화로 설득하며 진정한 평화와 공존의 의미를 암시한다. 이처럼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시대로 넘어가는 전환점에서, 이제 물질이 아닌 정신의 본질로 향하는 인류의 변화를 포착한 작품이다.
SF는 늘 미래 사회의 문제를 선취적으로 탐색해왔다. 자본주의, 경쟁주의, 능력주의가 낳은 수많은 성격장애자들은 사회에 모멸감과 불신, 불안을 전이시킨다. 게다가 윤리적 의도가 없는 인공지능이 이익을 위해 인간을 속이는 미래는, 더욱 위험한 사회를 암시한다.
바로 그렇기에 지금 이 시대에는 윤리의식과 책임감을 가진 새로운 유형의 슈퍼 히어로가 필요하다. 왜 수치심이 나와 남을 해칠수 있는지 왜 자신 그대로를 사랑하는 것이 중요한지, 그래서 경쟁과 비교의 늪으로 빠지지 않을 수 있는지, 왜 죄책감이 필요한지, 어떤 것이 선한 의도인지, 어떤 태도가 윤리적인지를 인공지능에게 하나하나 설정해주어야 하는 지금, 우리에겐 '정신의 히어로'가 필요하다. 그리고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그 새로운 시대의 초상으로, 우리 앞에 도착했다.
△필자 소개: 윤여경 작가는 문화기획자이자 비영리 문학단체 퓨쳐리안 대표다. SF 스토리텔러. 지난 5년 동안 40여 명의 일반인들(소설가 지망생 및 과학자, 북한이탈주민)을 출판 데뷔 기획했다. 이들 중 많은 데뷔 작품이 문학상 수상이나 문화유공자, 문학 나눔 선정으로 연결됐다. 2017년 '세 개의 시간'으로 제3회 한낙원과학소설상을 수상했으며 2023년 제6회 CISFC 과학소설 국제교류 공로 훈장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소설집 '응급실 로봇 닥터'등이 있고, 한국 최초의 챗GPT 소설집 '매니페스토' 기획을 총괄하는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예술적 환경을 제공하는 것에 관심이 있어서 작가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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