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읍 체제 분리 승격 70년 ‘제주시’ 북제주군마저 흡수 가파른 성장

이동건 기자 2025. 7. 14.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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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승격 70주년, 격동의 세월] ① 인구 6만명 시작 70년만 50만 도시

사회·문화·경제·정치 등 탐라국 시대부터 현재까지 제주의 중심지인 제주시가 1955년 9월1일 읍(邑)에서 시(市)로 승격해 올해 승격 70주년을 맞았다. 북제주군 제주읍에서 분리돼 제주시로 성장을 거듭하면서 북제주군마저 흡수, 인구 50만명 도시에 이르렀다. 제주특별자치도 출범에 따른 우리나라 최초의 행정시 체제에서 인사권·예산권이 없다는 숱한 논란 속에 제주시가 법인격을 되찾으려 한다. 동제주-서제주로 구역을 나누는 방안도 함께 추진되면서 제주시의 앞날이 어떻게 펼쳐질 지 난해하다. [제주의소리]는 승격 70주년을 맞은 제주시의 역사와 향후 과제 등을 3차례 걸쳐 되짚는다. [편집자 주]

애월읍에 선사유적과 고산리 등에서 발견되는 신석기 유적을 토대로 석기시대때부터 제주는 인류의 역사를 함께하고 있다. 제주와 관련된 가장 오랜된 기록은 사마천의 사기로 추정된다. 백제 서남쪽 바다에 백제 소속 큰 섬이 있고, 15개 마을에 사람이 산다는 기록이다.  

각종 문헌에 제주를 주호나 영주로 언급한 기록이 있고, 고구려·백제·신라 우리나라 삼국시대를 담은 삼국사기 등 비슷한 시기 문헌부터 '탐라국'이 언급된다. 주로 탐라국이 공물을 바쳤다는 내용으로, 고려시대까지 탐라, 탁라, 탐모라, 섭라 등의 형태로 불렸다. 탐라국 지위를 상실해 고려 때부터 한반도 세력의 지배를 받았다. 

고려 고종 10년(1223년)에 행정단위가 탐라 '군'에서 제(濟) '주'로 개편되면서 제주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다. 한반도에서 바다 건너 있는 '주'라는 의미다. 조선 시대에 들어 전라에 속한 제주 섬의 행정구역이 제주목·대정현·정의현 등 더욱 세부적으로 나뉘면서 현대 제주시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14년 일제강점기에서 목사가 폐지돼 조선시대때부터 이어진 3읍(군) 체제가 단일군 체제로 바뀌면서 제주군(추자도 포함 제주 섬)을 13개 면으로 나눴다. 왼쪽(좌), 가운데(중), 오른쪽(우)면을 중심으로 신·구, 동·서 단어를 섞었으며, 제주군 중면이 제주시의 옛 이름이다.

1915년 5월에 도제(島制)가 실시되면서 군수가 사라지고 '도사'가 실질적인 제주도 통치권자가 됐고, 이듬해 제주도서귀포지청이 개설됐다. 제주도서귀포시청 설치는 제주 섬을 산남·산북으로 가르는 시초라고 할 수 있고, 이때 중면이 제주면으로, 좌면이 정의면으로, 우면이 대정면으로 개편됐다. 

제주도 제주면은 1931년에 제주읍으로 승격했고, 1935년에 상당수 면 단위 이름이 지금과 같은 한림, 조천, 애월, 안덕, 중문, 서귀, 남원, 표선, 성산 등으로 바뀐다. 구좌는 당시 이름을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있다.

1946년 미군정때 전라남도(道) 제주도(島)에서 분리돼 제주도(道)가 신설되면서 북제주군과 남제주군이 설치됐다. 미군정에서 임명돼 제주4.3 역사에서도 언급되는 마지막 박경훈 제주도사가 초대 제주도지사에 오르는 시기로, 2군 1읍(제주읍) 12면 167개리로 구성됐다. 

6.25 한국전쟁 중인 1952년 시·읍·면의회 의원 선거가 치러지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민선 지방의회가 구성됐다. 시가 없던 제주는 제주읍의회 선거를 치렀고, 제주읍 주민(7만905명)에서 선거인명부에 등재된 2만5574명 중 2만1866명에 선거에 참여해 22명의 의원을 선출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제주읍의회는 3년만에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읍의회가 시제실시 요청을 만장일치로 의결해 국회에 결의문을 보내는 등의 요구를 이어갔고, 2명의 군수와 각 면의회 의장들까지 도민들이 한 목소리를 내면서 1955년 9월1일 제주도 북제주군 제주읍이 제주시로 승격하면서 제주시의회가 구성됐다. 6만명 정도 인구로 제주시 70년 역사가 시작된 셈이다. 
특별자치도 출범 전 4개 시군 체제의 제주도. ⓒ제주의소리

군사독재 등으로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암흑기로 불린다. 제주도의회마저 3대 의회(1960~1961년) 이후 30년만인 1991년 7월에야 4대 의회가 출범했다. 

제주 섬의 중심지는 지금의 제주시 외도동과 무근성 일대, 제주목관아로 이어져 역사적으로도 제주시는 제주에서 가장 먼저 행정단위가 승격되는 등의 핵심 지역으로 분류됐다. 

원도심을 중심으로 한 제주시의 성장은 가팔랐다. 먹거리부터 즐길거리 등이 집중됐고, 대부분의 브랜드 제주 1호점이 제주시 원도심에 자리 잡았다. 유명 브랜드 의류 등을 구매하기 위해 시외버스를 타 제주시에 오는 도민도 상당했고, 제주 최초의 햄버거 가게도 제주시 원도심에 생겼다. 1980년대 전국적으로 백화점이 문을 열 때 칠성로 한가운데 '아리랑백화점'이 3층 건물로 운영되기도 했다. 

1981년에는 서귀읍과 중문면이 통합해 서귀포시로 승격하면서 제주 섬 북쪽이 북제주군 사이에 제주시, 남쪽 남제주군 사이 서귀포시라는 기초자치단체 체계가 잡혀 2000년대까지 유지됐다. 

제주도청이 원도심에서 제주시 연동으로 이전하고, 제주시청이 이도2동으로 옮기며 원도심은 중심지의 기능을 점차 잃어갔다. 제주시 내에서 공공기관 이전 등이 이뤄지고, 제주시 쏠림 현상이 심화되자 지역 균형발전 차원에서 서귀포시와 북제주군·남제주군이 개발됐다. 

1993년 제주시의 공무원 수는 1128명에 이른다. 지방자치 부활 이후인 1995년 6월27일 실시된 지방선거를 통해 관선 제주도지사-제주시장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선거를 통해 고민수, 신구범이 각각 민선 1기 제주시장(제18대)과 제주도지사(제31대)로 이름을 올린다.

1962년 14개이던 행정동은 1985년 19개로 늘었다. 2002년에는 인구가 30만명에 육박했고,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서 북제주군 제주읍에서 승격한 제주시가 51년만에 북제주군마저 흡수하게 된다. 덩치는 커졌지만 법인격은 사라진 행정시 형태다. 

특별자치도 준비 단계와 출범 초기만하더라도 각 읍·면·동의 목소리가 제주특별자치도로 직접 전달되는 체계가 구축될 때까지의 과도기적 형태가 행정시라고 했다. 지난해 기준 제주시 행정구역은 4읍, 3면, 19개 행정동에 공무원 규모는 공무직과 청원경찰을 포함해 1734명에 달한다. 약 10년 전인 1993년과 비교해 600명 이상 증가했다. 

재정규모 2조1357억원에 인구 50만명이 넘는 대도시지만, 법인격(자치권)이 없다보니 제주도지사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시장이 "행정시장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하소연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이러한 이유로 '특별자치'를 실시한 제주에서 '기초자치를 부활해야 한다'는 역설이 등장하게 된다. 도정이 바뀔 때마다 명칭은 조금씩 달리 했지만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 논의의 서막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