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 박정훈 대령의 선택이 ‘정의’ 지켰다

허시언 기자 2025. 7. 14.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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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사는 법입니다. 수해 피해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가 순직한 해병대 채모 상병의 2주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진전 없던 사건 수사는 정권 교체와 함께 급물살을 탔고, 이 사건 핵심 당사자들의 운명이 극명하게 엇갈렸는데요. 부당한 처우를 감수할 각오로 진상 규명에 나섰던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은 ‘항명’ 혐의로 재판을 받다가 무죄로 풀려났고요. 살아남기 위해 박 대령에게 엉뚱한 혐의를 씌우고, ‘채상병특검법’에 세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윤석열 전 대통령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구속돼 서울구치소에 갇혔습니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 연합뉴스


박 대령은 2023년 7월 19일 숨진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뒤, 같은 달 30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에게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특정해 사건을 경찰에 이첩하겠다고 보고했습니다. 승인도 받았죠. 하지만 이 전 장관은 바로 다음 날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합니다. 사건 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윤 전 대통령이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고 ‘격노’하면서 손바닥 뒤집듯 결정이 바뀐 것입니다. 그런데도 박 대령은 관련 서류를 경북경찰청에 넘겼습니다. 국방부 검찰단은 경찰로부터 사건 자료를 회수함과 동시에 박 대령을 ‘집단 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했고, 해병대는 그를 보직 해임합니다. 이 과정에서 박 대령은 기자회견을 열어 사건 축소 외압을 느꼈다고 폭로했고, 군검찰은 그의 혐의를 ‘집단 항명’에서 ‘항명’으로 변경합니다. 그러고는 항명 및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사실 박 대령은 다른 사람들처럼 외면할 수 있었습니다. 김계환 전 해병대 사령관이 돌연 언론 브리핑 취소를 통보하며 부대 복귀를 지시했을 때 “그러마” 하고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전화해 “대통령실 VIP 주재 회의에서 1사단 수사 결과 언급이 있었다. VIP가 격노하면서 장관과 통화했다. 혐의자의 혐의 내용을 다 빼라”고 했을 때 “알겠다”고 수긍한 뒤 침묵하면 됐습니다. 덮어주고 모른 척하면, 그렇게 끝날 일이었습니다.

같은 상황에 놓였던 다른 사람들은 침묵했습니다. 이종섭 전 장관은 ‘VIP가 격노’하자 김계환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경찰 이첩 보류 및 국회·언론 브리핑 취소를 지시합니다. 김 전 사령관은 이 전 장관이 명령하자 ‘VIP 격노설’을 언급하며 박 대령에게 보류하라고 말하죠. 그러나 박 대령은 모른 척하지 않은 대가로 ‘파도처럼 몰려오는 나쁜 일’에 휩쓸립니다. 항명 및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고요. 보직 해임 이후 보직 없이 근무하기도 하는 등 인사 조치의 탈을 쓴 괴롭힘에 시달립니다.

진실과 거짓, 폭로와 침묵의 갈림길에서 ‘옳은 길’을 찾아 걸어간 박 대령의 지난 2년은 처참했습니다. 하지만 정의는 늦어도 바로 세워지는 법입니다. 12·3 비상계엄 이후 윤석열 정권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지난 1월 중앙지역군사법원은 박 대령에게 무죄를 선고합니다. 법원은 그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기록의 이첩을 보류하라는 명령을 애초에 받지 않았다고 판결했습니다. 또 이첩 중단 명령 자체가 정당하지 않아서 따를 의무가 없다고 봤죠. 그런데도 군검찰은 1심에 불복해 항소했습니다.

하지만 정권 교체와 함께 ‘채상병특검법’이 통과되고, 연이어 이명현 전 국방부 검찰단 고등검찰부장이 특별검사로 임명됩니다. 그리고 지난 9일 특검은 박 대령에 대한 항소를 취하함으로써 무죄를 확정했습니다. 특검은 “박 대령이 해병대 수사단장으로서 채 상병 사망 사건을 초동 수사하고 사건 기록을 경찰에 이첩한 것은 법령에 따른 적법한 행위”라며 “국방부 검찰단이 박 대령을 항명 혐의로 공소 제기한 것은 공소권 남용에 해당한다”고 밝혔죠. 이에 해병대는 지난 11일 박 대령을 원직 복직합니다. 그는 2023년 8월 수사단장에서 보직 해임된 지 1년 11개월 만에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반면 이 사건을 덮으려 고군분투했던 이들은 앞으로 특검 수사를 받을 일만 남았습니다. 지난 2일 특검은 임 전 사단장을 불러 채 상병 등 부대원들을 무리한 실종자 수색 작전에 투입했다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등을 추궁합니다. 특검은 또 다음 날 이 전 장관, 김 전 사령관, 임 전 사단장을 출국금지 조치하고요. 이어 지난 7일 김 전 사령관은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특검에 출석합니다. 특검은 지난 10일 국방부 국방정책실, 법무관리관실, 대변인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전격 단행하죠. 결국 특검의 칼끝은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인 윤 전 대통령을 겨누고 있습니다. 이명현 특검은 윤 전 대통령 소환 조사를 두고 “당연히 할 것”이라며 “최종적인,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분을 모시는 것은 수사가 다 이뤄진 뒤에 해야 한다”고 방침을 밝혔습니다.

박 대령의 선택은 윤석열 정권의 몰락을 앞당기는 방아쇠로 작용했습니다. 그가 덮고 눈감지 않은 덕분에 수사 방해와 은폐 시도가 드러났습니다. 또 사건 핵심 인물인 이 전 장관의 호주 대사 임명·취소 사건은 국민의힘의 2024년 총선 참패에 직격탄이 됐습니다. 그의 선택이 부당한 권력에 저항할 힘을 줬기에 계엄 사태 속에서 또 다른 항명들을 추동한 힘이 됐다는 평가도 나오죠.

박 대령은 지난 1월 1심 선고 후 “‘너(채 상병)의 죽음에 억울함이 없도록 하겠다’는 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결코 흔들리거나 좌절하거나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그것이 바로 정의이고 법치를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무엇이 진실이며 정의인지, 특검 수사가 마무리되면 명확히 드러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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