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계파 소신·與野초월 소통… “정치가 국민 피곤할 일 없게 할 것”[Leadership]

나윤석 기자 2025. 7. 14.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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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adership - 대통령실과 국회의 ‘가교’ 우상호 정무수석
1999년 김대중 추천 정계 입문… “대화·타협정착이 정치 본령”
특정 이념에 쏠리지 않는 정무감각, 중도층 여론 민감하게 반응
“정무수석이 열심히 뛸수록 대통령실과 국회 가까워진다” 밝혀
국회 수 차례 오가며 여야 의견 듣고 송미령·이승엽 논란 진화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지난달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기자회견장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여야 지도부 오찬 관련 브리핑을 위해 연단에 오르고 있다. 뉴시스

“정무수석이 열심히 뛸수록 대통령실과 국회의 거리는 가까워지고, 오해는 옅어진다.”

‘86(1980년대 학번·1960년대생)그룹’의 대표 주자로 새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과 의회의 가교역할을 맡게 된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의 말이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달 8일 정무수석 인선을 발표하며 “우 수석은 소통과 상생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지닌 분”이라며 “여야를 초월한 소통은 물론 국민 갈등을 해소하고 통합을 이끌 적임자”라고 소개했다. 강 비서실장의 설명처럼 우 수석은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정착시키는 일이 정치의 본령이라고 생각한다. 199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천으로 정계에 입문한 이후부터 ‘계파 정치’를 경계했다. 당 대변인만 여덟 차례나 역임한 그에게 ‘무(無) 계파’이자 ‘전(全) 계파’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다.

◇친화력·스킨십으로 대통령실과 국회 가교역할=지향이 다른 사람을 아우르는 우 수석의 소통력은 국회와의 관계 설정에서 특히 빛을 발하고 있다. 한 달 남짓한 기간에 우 수석이 대통령 시정연설 외에 현안 중재나 주요 인사 상견례를 위해 국회를 찾은 것만 여섯 차례에 달한다. 김용태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10일 예방한 우 수석에게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대통령 재판 중지법(형사소송법 개정안)’과 헌법재판관 후보에 포함된 이승엽 변호사의 과거 이력, 민생회복지원금 지급 계획 등을 문제 삼았다. 이에 우 수석은 “야당의 의견까지 포함해 여과 없이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것이 제 임무”라며 “대통령님의 견해도 들어보겠다. 저희는 비판을 다 수용할 준비가 돼 있다”고 답했다. 민주당은 당초 6월 12일에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상정할 계획이었으나 이재명 대통령이 ‘속도 조절’을 주문하면서 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변호사는 이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지명한 헌법재판관 후보자 명단에서 빠졌다.

우 수석은 이 대통령이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유임하자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등 여권 일각에서 제기된 불만을 진화하기도 했다. 그는 송 장관 유임은 보수 진영에서도 높이 평가하는 결정이라는 점, 송 장관이 새 정부의 국정 철학에 부합하는 인물임을 적극적으로 강조했다고 한다. 우 수석은 통화에서 “대통령실과 국회의 생각이 달라도 오해가 쌓이지 않으면 국정이 원활하게 돌아간다”며 “정치를 오래 한 사람으로서 정치권의 갈등 때문에 국민이 피곤한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대위원장 시절 신속한 일 처리·균형감 호평=우 수석이 지난 2022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대선 패배 이후 내홍에 빠진 당을 빠르게 안정시킨 성과는 지금도 자주 회자된다. 우 수석은 당시 비대위 출범 이후 주말마다 간담회를 자청해 언론과 소통했다. 이 대통령의 강성 지지층들이 ‘비명(비이재명)계’ 의원들을 가리키는 별칭인 ‘수박(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미) 용어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당시 당 원내대표로서 우 수석에게 비대위원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던 박홍근 민주당 의원은 통화에서 “우 수석은 실익이 아니라 대의명분을 좇는 선비 같은 사람”이라며 “분당 위기까지 내몰린 당을 통합시킬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돌이켰다. 박 의원은 “우 수석은 비대위를 계파와 선수 안배를 고려해 구성하자는 내 제안을 흔쾌히 수용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와 같이 일해본 사람들은 우 수석의 폭넓은 스킨십과 함께 신속한 의사 결정을 칭찬한다. 30년 넘게 그를 지켜본 여권 인사는 통화에서 “실무자들은 윗사람이 빠르게 ‘가르마’를 타주는 것을 제일 선호한다”고 전했다. 이 인사는 “정치의 세계에 만고불변의 진리는 따로 없는 만큼 다수 의견에 바탕을 둔 빠른 결정이 최선이라는 것이 그의 소신”이라며 “‘우상호 체제로 계속 가면 좋겠다’고 말하는 당직자가 많았다”고 귀띔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서 열린 여야 지도부 오찬 행사에서 환담하고 있다. 이 대통령을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김용태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 우상호 정무수석, 강훈식 비서실장,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 뉴시스

◇“중도층 여론 살피며 개혁 추진해야”=중도층 여론에 민감한 촉수를 지니고 있다는 점도 우 수석의 장점이다. 흔히 정치는 ‘지지층 표밭을 지키고 중도층을 더 확보하는 게임’이라고 말한다. 여권 인사들은 이 대통령이 운동권 출신이면서도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정무감각을 높이 사 ‘핵심 친명(친이재명)’이 아닌 우 수석을 요직에 기용했다고 입을 모은다. 우 수석은 지난해 민주당이 총선에서 압승한 이후 원외에서 ‘이재명 지도부’를 향해 끊임없이 쓴소리를 날리기도 했다. ‘당권·대권 분리 원칙’에 예외를 두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판한 것이 대표적이다.

강성 지지층의 ‘문자 폭탄’을 무릅쓰고 공개 비판을 한 것은 수평적 당·정·청 관계에 대한 오랜 소신과 무관하지 않다. 우 수석은 지난해 출간한 당사(黨史)인 ‘민주당 1999-2024’(메디치)에서 “나는 2021년 전당대회에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출마하려 했을 때도, 이재명 대통령 후보가 2022년 전당대회에 대표 후보로 출마하려 했을 때도 만류한 바 있었다”라며 “유력한 대권 후보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당 대표가 되면 공천을 둘러싼 갈등을 피할 수 없고, 그 갈등이 심해져 분당에 이르는 경험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심지어 ‘옳은 방향의 개혁’마저도 국민 일반의 합의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우 수석은 책에서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개혁 입법’을 거론하며 “개혁을 추진할 때는 정치적 언어 선택에도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며 “특히 선민의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용어 선정은 자제해야 한다”고 적었다. 그는 “여기서 유심히 살펴야 하는 것이 이른바 중도층 여론”이라고 했다.

◇20대 총선 후 최단 기간 원 구성 협상 이끌기도=우 수석은 지난 2016년 4월 총선 이후 민주당 원내대표로 최단 기간 원 구성 협상을 마친 당사자이기도 하다. 우 수석과 당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20대 국회 임기 시작 후 14일 만에 원 구성을 마쳤다. 우 수석은 총선에서 123석을 얻은 민주당이 불과 1석 차이로 1당이 된 만큼 양보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대신, ‘무엇을 양보하고, 무엇을 얻을지’에 관한 치밀한 전략을 세웠다. 우 수석은 3당 원내대표가 만난 자리에서 “국회의장은 우리 당이 맡겠다”며 정 원내대표에게 “법제사법위원장 양보할 수 있어요, 없어요?”라고 물었다. 민주당 내에서 국회의장은 물론 법사위원장까지 가져와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법사위원장은 새누리당에 내줘야 협상을 이어갈 수 있다고 판단한 터였다. 예상대로 정 원내대표는 “법사위원장 양보하면 나 사퇴해야 돼”라고 답했다. 대신 그는 “그럼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우리한테 달라”는 우 수석의 제안을 수용했다. 우 수석은 “다른 정당과 싸울 때 싸우더라도 평소에는 대화가 가능한 구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뒀다”라며 “서로 신뢰를 잘 쌓은 덕분에 ‘탄핵 태풍’이 부는 거친 바다에서도 무사히 항해를 계속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나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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