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만 누린다고? 작고 소중한 돈 굴리는 나도 '투자 비서' 둔다
[편집자주] 증권업계의 자산관리(WM)시장이 폭풍 성장한다. IMA(종합투자계좌)가 도입되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주식만으론 모자란 시대. 펀드, ETF(상장지수펀드), 채권, 랩어카운트, 신탁 등 다양한 금융상품으로 자산 배분이 필수다. 채권·발행어음 특판은 순식간에 마감되고 VIP 고객에게만 제공되는 사모펀드 등 한정판 상품은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자산관리 전성시대'를 살펴본다.

#스마트폰으로 삼성증권 RA(로보어드바이저) '로보굴링'에 투자금액 100만원, 투자기간, 12개월, 기대수익률 연 7.5%를 입력했다. 잠시 후 RA가 ETF(상장지수펀드)인SOL 조선TOP3플러스 , SOL 초단기채권액티브 , TIGER 미국테크TOP10 INDXX 를 추천했다. 해당 ETF들을 통해 포트폴리오 비중은 국내주식 13.13%, 국내채권 42.2%, 북미주식 44.67%로 맞출 것을 권했다. 또 시장이 상황에 따라 최소 1만7912원에서 최대 13만2087원의 수익금을 얻을 수 있다고 제시했다.
고액 자산가(금융자산 10억원 이상 보유)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일임 서비스가 소액 투자자들에게까지 확대되고 있다. 증권사들은 기존 RA 서비스를 강화하고, 새롭게 퇴직연금 특화 RA를 내놓는 등 개인 투자자를 위한 WM(자산관리서비스)를 확대 중이다. 또 그동안 개인 투자자가 접근하기 어려웠던 글로벌 IB(투자은행) 펀드, 등을 판매하는 등 특화 상품을 내놓고 있다.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등이 RA 기반 퇴직연금 일임서비스를 출시했다. KB증권, 신한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한화투자증권 등도 하반기에 퇴직연금 RA 일임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이다. 지난해 12월 금융위원회가 퇴직연금 RA 일임서비스를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한 이후 증권사들이 RA를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RA는 투자자의 연령, 성향, 목표수익률 등을 종합 분석해 최적화된 포트폴리오를 자동 설계하고, 시장 변화에 따라 자동으로 리밸런싱하는 서비스다. RA가 고액자산가들의 개인 PB(프라이빗뱅커)처럼 퇴직연금을 관리해주는 것이다.
박상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비대면 금융거래가 보편화되면서 모바일·온라인 채널을 통한 간편한 투자 자문 수요가 증가했고, 그 결과 저비용·기술 기반의 RA가 빠르게 확산했다"고 말했다.
증권사들은 퇴직연금 RA 외에 기존에 운영하던 RA 서비스도 강화하고 있다. 최근 미래에셋증권은 2022년 자체 개발한 RA 서비스를 개인·퇴직연금에 이어 중개형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일반주식계좌, 비과세종합저축까지 확대했다. 지난 6월25일 기준 가입자 수는 약 5만명, 운용자산은 약 3조2000억원이다. 삼성증권은 지난 4월까지 로보굴링 투자 고객을 대상으로 이벤트를 진행하는 등 RA 관련 마케팅을 꾸준히 진행 중이다. 덕분에 삼성증권의 RA 로보굴링 이용자는 올해 1월 11만명을 돌파했다.
RA 외에 일반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도 늘어나고 있다. KB증권은 월 1만원에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라임 클럽을 운영 중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최소 가입액 조건 등으로 개인 투자자가 쉽게 접하지 못했던 글로벌 IB의 펀드를 단독 판매한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4월 골드만삭스 자산운용(골드만삭스)의 펀드와 미국 ETF(상장지수펀드)에 분산투자 하는 '한국투자 Global Strategic 멀티인컴펀드' 판매를 시작했다. 재간접 펀드를 만들어 국내 개인 고객이 국내 골드만삭스가 운용하는 해외 채권형 펀드에 투자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에 해당 상품은 지난 4월23일 설정된 후 3일 만에 판매액 1500억원을 돌파했다.
홍지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디지털 전환이 일어나면서 기존 부유층, 고령층이 주요 대상이었던 WM 서비스가 소액자산가, 젊은 층으로 확대되는 등 대중화됐다"며 "이에 금융사들은 WM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초고액 자산가 가문 전체를 관리하는 '패밀리오피스'가 증권사 새 먹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거액 자산가들이 고령화되면서 세대 간 부의 이전 수요가 급등하고 있어서다. 패밀리오피스는 금융 서비스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메리츠증권과 현대차증권은 올해 본격적으로 패밀리오피스 사업에 뛰어든다. 메리츠증권은 지난 4월 말 특화 자산관리센터인 'PIB(프라이빗투자은행)센터' 두 곳을 출범했다. PIB센터는 고액 자산가나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종합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현대차증권은 '더 에이치(The H)'라는 브랜드를 중심으로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연내 서비스 출시를 목표로 법률·승계·세무 전문가와 협업 중이다. 미국 부동산 플랫폼 코리니, 법무법인 태평양 가업승계센터, 다솔세무법인이 현대차증권과 MOU(업무협약)를 맺은 상태다.
메리츠증권과 현대차증권의 합류로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증권사는 기존 △삼성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신한투자증권 △KB증권 △하나증권 △미래에셋증권 △신영증권을 포함해 총 10곳이 된다.
패밀리오피스는 단순한 투자자문 등 자산관리를 넘어 세무·법률·상속 및 승계·자선 등 초고액 자산가와 가족 전체의 자산을 관리해준다. 고객의 세금 관리부터 상속·승계를 위한 작업, 부동산·대체투자 등 자산 관리법까지 한 가문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유럽의 로스차일드 가문부터 미국의 록펠러, 카네기 가문 등 유명 가문의 자산을 전담 관리하는 '집사'로부터 시작한 개념이다. 서구권에서는 금융시장의 주요 사업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국내에서는 베이비부머 세대를 중심으로 은퇴를 앞둔 고액자산가층이 늘면서 원활한 상속을 위한 패밀리오피스 수요가 점점 늘고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지난해 말 발표한 '2024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0억원 이상 자산을 보유한 부자는 46만1000명으로 2020년(35만4000명) 대비 30.2% 늘었다. 전체 인구의 0.9% 수준이다. 이 중 10억원 이상 100억원 미만 자산가는 42만1800명, 100억원 이상 300억원 미만 고자산가는 2만9100명, 300억원 이상 초고자산가는 1만100명이다. 패밀리오피스가 고객으로 모시는 100억원 이상 자산가가 약 4만명에 달한다.
국내 증권사가 패밀리오피스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2020년대 들어서다. 삼성증권은 2020년 서울 강남구 강남파이낸스센터에 국내 최초 패밀리오피스센터인 'SNI(Success & Investment) 패밀리오피스센터'를 열었다. 대상은 투자 가능 자산 1000억원 이상, 삼성증권 예치금 300억원 이상 자산가다.
삼성증권 SNI 패밀리오피스센터는 현재 100개 가문, 30조원 자산을 관리하고 있다. 삼성증권은 국내 1호 패밀리오피스 사업자로서 골드만삭스·칼라일·MBK파트너스 등 글로벌 상위 운용사의 사모대체펀드를 고객에게 독점 공급하는 등 차별화된 상품을 제공한다. 가문별 전담 위원회를 구성해 기업 운영 솔루션부터 유언장 작성 등 비재무적 헤리티지 서비스도 제공한다.
2위 사업자인 NH투자증권은 현재 195가문을 관리 중이다. 2022년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NH투자증권의 '프리미어블루 패밀리오피스'에는 지난해에만 78가문이 신규 유입됐다. 국내 패밀리오피스 중 최다 가문을 관리하고 있다. NH투자증권은 특히 상속을 염두에 둔 고객을 위해 차세대 CEO를 위한 자녀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단순 상속 문제나 경영 교육뿐만 아니라 중·고·대학교 입시 컨설팅까지 진행한다.
한국투자증권은 GWM 패밀리오피스를 운영 중이다. GWM 패밀리오피스는 매년 초 1년간 관리할 가문을 선별한다. 단순히 금융자산 등 정량적 기준뿐만 아니라 각 WM지점이나 고객 추천 등 정성적 기준까지 더해 고객을 받는다. 지난해는 10개, 올해는 20개 가문이 GWM 패밀리오피스 관리 가문으로 선정됐다.
최근 첫 패밀리오피스 사무실을 연 미래에셋증권의 The Sage(더 세이지)는 1달 만에 약 2조원 규모의 관리 자금을 모았다. 더 세이지 패밀리오피스에서는 모든 과정을 프라이빗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4개의 상담실에서 서비스를 진행한다.
전문가들은 증권사 간 차별화된 전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때 국내 패밀리오피스 서비스가 발전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최순영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 선임연구원은 '국내 증권사의 초고액자산가 자산관리 전략 : 패밀리오피스 서비스' 보고서에서 "단순한 금융자산 기준이 아니라 부의 원천, 연령, 가족 구성, 투자 성향 등을 반영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무료로 제공되는 자문 서비스를 유료화하는 등 수익 구조를 구축해야 체계적이고 지속 가능한 사업모델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르포]The Sage 패밀리오피스 강남

30대 후반 A씨는 지난해 말 자신이 창업한 AI(인공지능) SaaS(Software as a Service) 스타트업을 50억원에 매각했다. 성공적인 엑시트로 큰 자산을 얻은 A씨는 효율적인 자산관리를 위해 미래에셋증권 The Sage(더 세이지) 패밀리오피스 강남을 찾았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파르나스타워 30층, The Sage 패밀리오피스 강남의 문이 열리자 마치 호텔 같은 프론트가 나왔다. 리셉셔니스트와 예약 일정을 확인 후 안쪽으로 들어서자 넓은 로비 창밖으로 탁 트인 테헤란로 풍경이 펼쳐졌다. 실내는 국내 유명 현대미술 화가들의 작품으로 장식됐다.

첫 상담에서 전반적인 자산 상태와 후속 창업 계획 등을 공유했고, 오늘은 각 분야 전문가와 만나 본격적인 자산 배분 전략을 수립할 차례다. PB(프라이빗뱅커)를 따라 상담실로 이동하니 WS(Wealth Solution)팀 전문가들이 A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A씨는 IB(투자은행) 전문가와 후속 창업에 투입할 자본금 규모를 정했다.
A씨는 패밀리오피스의 도움으로 창업에 도움을 줄 VC(벤처캐피탈)와의 미팅도 예약했다. 2주 후로 잡힌 다음 상담에서는 부동산 전문 컨설턴트도 동행할 예정이다. 첫 상담 때 스타트업이 밀집한 서울 성수동에 아파트를 하나 얻고 싶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아울러 후속 창업에 사용하고 남은 자본 투자처를 정하고 효율적으로 세금을 관리하기 위해 변호사, 세무사와도 상담할 예정이다.

지난 5월 말 문을 연 미래에셋증권의 1호 패밀리오피스 센터 'The Sage 패밀리오피스 강남'은 13명의 WM(자산관리) 전문가와 3명의 고객 지원팀, 2명의 리셉셔니스트까지 총 18명이 운영한다. 모두 전국 미래에셋증권 WM센터를 통틀어 수익률 1, 2위를 기록하는 우수 직원이다. 이들이 주로 고객을 응대하고, 필요시 세무·부동산·법률 전문가를 연결해준다. 예술 작품 투자를 위한 상담도 가능하다.
이에 힘입어 The Sage 패밀리오피스 강남은 문을 연 지 한 달여 만에 약 2조원의 자산 유치에 성공했다. 업계 1위인 삼성증권의 'SNI 패밀리오피스'는 약 30조원의 자산 관리하고 있다.
장의성 The Sage 패밀리오피스 강남 센터장은 "기존 WM센터가 개별 분야에서 진찰하는 개인병원이라면 패밀리오피스는 다양한 분야에서 협진할 수 있는 종합병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며 "내가 운영 중인 법인에 대한 고민, 가족들 자산 관리에 대한 고민, 가업 승계나 엑시트 방식, 현금 흐름이나 세대 간 부의 이전 등 종합적인 관리를 장기적 관점에서 받을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장 센터장은 The Sage 패밀리오피스의 강점이 넓은 '네트워크'에 있다고 설명했다. 미래에셋그룹이 보유한 전문가 네트워크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미래에셋이 VC나 IB 업무도 하고 있고, 법무법인과도 협업하고 있기 때문에 법인을 보유한 자산가의 모든 니즈를 충족할 수 있다"며 "특히 법인의 IPO(기업공개)·채권 발행·M&A(인수합병) 등을 돕는 IB 코디네이터 서비스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했다.
The Sage 패밀리오피스 강남은 입구부터 대기 공간, 상담실, 업무 창구, 세미나실 등 240여 평 중 60%를 고객 공간으로 구성했다. 장 센터장은 "고객들이 느끼기에 개방감 있으면서도 프라이빗한 동선을 만들기 위해 공간 배치에 신경 썼다"며 "4개의 상담실이 있는데, 이 중 일부는 고객과 고객의 가족, 그리고 전문가들이 종합 미팅도 할 수 있도록 큰 공간으로 마련했다"고 했다. 장 센터장은 "기존 금융사 상담이 길어야 1시간이었다면 The Sage 패밀리오피스에서는 최장 3~4시간까지 다양한 전문가들과 맞춤 컨설팅을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김근희 기자 keun7@mt.co.kr 배한님 기자 bhn2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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