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했다' 싶었는데… 솔직한 내 이야기가 베스트셀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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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을 읽고 난 독자님들이 주변에서 시각 장애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대요. 장애인 콜택시가 보이기 시작했대요. 그들은 늘 그 자리에 있었거든요. 단지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죠."
15세 때부터 서서히 시력을 잃어 이젠 빛조차 지각하지 못하는 조승리(39) 작가는 "이 캄캄한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밝은 세상에 꺼내 놓는 게 나의 글쓰기의 사명"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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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이어
소설집 '나의 어린 어둠' 출간

"제 글을 읽고 난 독자님들이 주변에서 시각 장애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대요. 장애인 콜택시가 보이기 시작했대요. 그들은 늘 그 자리에 있었거든요. 단지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죠."
15세 때부터 서서히 시력을 잃어 이젠 빛조차 지각하지 못하는 조승리(39) 작가는 "이 캄캄한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밝은 세상에 꺼내 놓는 게 나의 글쓰기의 사명"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실명을 앞둔 청소년기 경험을 바탕으로 쓴 네 편의 연작 소설을 엮은 첫 소설집 '나의 어린 어둠'을 최근 펴낸 그를 서울 동작구 자택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첫 수필집 17쇄… 첫 소설은 "성장통"
중학생 시절 장래 희망을 '경리'라고 적었던 그는, 작가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불과 3년 전. 2022년 가을 비대면 글쓰기 수업을 들으면서다. 당시 강사였던 동화 작가 박현경씨가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글일 수 있다"며 책 출간을 권했고, 그렇게 나온 수필집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다. 지난해 3월 출간돼 1년 3개월여 만에 17쇄를 찍었다.
"첫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순간 처음 든 생각은 '아, 망했다. 다 탄로났네'였지요(웃음)."
당초 출간을 염두에 두지 않은 데다 평범한 시각 장애인 이야기를 누가 읽겠느냐는 생각에 솔직하게 써 내려간 글이었다. 이를테면 이번 소설집의 첫 단편 '네가 없는 시작'에서 앞이 점점 보이지 않는 '나'는 세상에 저주를 퍼붓는다. "왜 나만 이 꼴로 살아야 해. 왜 나만. (…) 너무 억울해. 다 죽어버려."
그는 '월급사실주의' 동인에 합류해, 지난 5월 출간된 앤솔러지(선집)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에 표제작을 실었다. 백화점 직원 복지를 위한 계약직 안마사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그는 "소설의 허구라는 가면 뒤에 숨어서 하고 싶은 이야기,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며 "특히 첫 소설만큼은 미성숙했을 때의 성장통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본업은 마사지사… 우리도 세상 한 축 담당"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자, 이야기는 흘러넘쳤다. 한 해에 써낸 원고만 원고지 1,500매가 넘는 분량. 장편소설(700매 이상) 두 편을 쓴 셈이다. 그는 주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오전 3~4시간 글을 쓰고,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마사지숍으로 출근한다. 장애인학교 고등부를 졸업한 뒤 줄곧 마사지사로 일해 왔다. 그는 "재미로 하는 글쓰기가 노동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본업은 마사지사"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도 세상의 한 축을 담당하며 이렇게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 놔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주변으로도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 이야기를 써 달라고 부탁하는 분들이 생겼다"며 "앞으로는 내가 주인공이 아닌, '이런 억울한 일, 이런 억압받았던 일, 이 한을 네 글로 풀어 달라'는 분들 이야기를 써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최근 복싱을 배우기 위해 동네 체육관을 찾았다가 문전박대를 당한 경험을 털어놨다. "신발을 벗자마자 거절당한" 그는 복싱 대신 일주일에 두 번, "분노의 퍼스널트레이닝(PT)"을 받고 있다. 그는 "첫날은 우왕좌왕하던 PT 강사가 두 번째 수업 때는 내 손을 잡지 않고 자신의 팔을 내어 줘 감동했다"고. 시각 장애인을 안내할 때는 팔을 잡도록 하는 게 기본이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거절당할 때는 여전히 섭섭해요. 해 보지도 않고 익숙하지 않으니까 거절하는 거겠죠. 누군가 억지로라도 수업을 한 번이라도 해 봤다면 달랐을 거예요. 처음에 한 번 기회를 만들어 놓으면 그다음 시각장애인들은 편하게 달릴 수 있거든요. 자신감이 붙은 PT선생님도 이제는 저한테 주변 시각 장애인은 다 데려오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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