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시론┃법정] 동일노동 동일임금 법제화의 전제 요건

이재명 정부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법제화하겠다는 소식이 있었다. 고용노동부는 일단 기사에서 언급하고 있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법제화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결정된 바 없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이재명 대통령의 선거 공약 목록에 들어있는 주제로서 새 정부에서 결론을 내려야 하는 과제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물론 윤석열 정부에서도 추진하려다 중단된 사안으로 그만큼 대한민국 노동정책에서 중요한 화두라는 뜻이다.
‘같은 일을 하면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라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당연한 명제로 들린다. 그러나 법제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단순한 당위나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원칙이 서구에서 실질적 제도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경제적 구조, 노동시장 체계, 문화적 가치관, 정치적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있었다.
이 원칙의 법제화를 위해서는 직무 중심의 임금체계가 보편화돼야 한다. 북유럽과 독일 등 다수의 서구 국가는 오래전부터 ‘직무급’이 정착돼 있었다. 이는 동일한 직무에 동일한 보상을 지급하는 임금 설계 방식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제도적 기초가 됐다. 반면 우리나라처럼 연공서열과 호봉제가 강하게 작동하는 구조에서는 ‘같은 일을 하더라도 더 오래 근무한 사람은 더 많이 받는다’라는 인식과 관행이 뿌리 깊다. 이런 문화 아래에서 동일임금 원칙은 정면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부모와 자녀 부양이 상당 부분 개인에게 맡겨져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연공서열과 호봉제가 생애주기와 맞물려 나름대로 적절하다는 지적도 있다.
서구 사회는 안정적인 고용구조를 바탕으로 동일한 직무의 비교가 가능했다. 정규직 중심의 고용 형태는 ‘누가 같은 일을 하고 있는가?’를 판별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여기에 산별노조 중심의 임금 협상 구조가 더해지면서 산업별로 동일 직무에 동일한 보수를 지급하는 체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독일의 경우 직능별 임금협약이 전국적으로 통일 적용되고, 프랑스도 산업별 단체협약에서 근로자의 직무를 분류하고 그에 따른 임금의 수준이 어느 정도 결정되는 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경제적 기반 위에 자리 잡은 것은 평등에 대한 문화적 공감대였다. 북유럽 사회를 중심으로 평등주의의 전통과 ‘같은 노동에는 같은 존중이 따라야 한다’라는 인식이 윤리적 상식으로 작동했다. 노동조합 역시 동일임금 원칙을 단순한 경제적 권리로서가 아니라, 노동의 존엄성과 사회적 연대의 실현 방식으로 주장해왔다.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노동력의 부족이 여성 노동의 확대를 가져왔고, 동일한 직무를 수행함에도 임금이 차별받는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이 사회 전체로 확산했다. 이는 여성운동과 결합해 단순한 근로조건 문제를 넘어 시민권의 문제, 사회정의의 실현이라는 정치적 쟁점으로 전환됐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것은 정치와 법의 역할이다. 서구의 복지 국가들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사회보장의 전제 조건으로 간주했고, 진보정당을 중심으로 이를 헌법적 가치로 승격시키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유럽연합은 회원국들에 동일가치노동에 대한 동일임금 지급을 강제하는 지침(Directive (EU) 2023/970)을 발효했고, 국제노동기구 역시 제100호, 제111호 협약 등을 통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국제규범으로 선포하고 있다.
결국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법제화는 하나의 조문을 신설하거나 몇몇 규정을 개정한다고 완성되는 일이 아니다. 직무급 체계로의 구조적 전환, 고용 형태의 단순화, 사회적 연대와 평등에 대한 문화적 인식, 여성 노동에 대한 성찰, 그리고 노사정 간의 신뢰에 기반한 정치적 합의가 함께할 때, 비로소 원칙은 살아 숨 쉬게 된다. 선언이 아니라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법 기술이 아니라 사회의 방향성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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