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울분의 시간…‘희망고문’ 이제 끝나길”

윤석열, 단 한 번도 현장 안 찾고
김건희는 분향소 인근 동물원만
고위직 책임 회피에 말단만 처벌
이 대통령, 취임사 언급에 울컥
16일 면담 자리 ‘작은 희망’ 품어
신속한 국정조사 등 요청할 것
7월15일은 1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 2주기가 되는 날이다. 유가족들은 여전히 그날의 고통 속에 머물러 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더디고, 상처를 보듬어야 할 지자체는 책임회피에 급급하다. 유가족들은 정권 교체 이후 이재명 대통령이 보여주는 관심에 작은 희망을 품고 있다고 했다.
“취임사에서 저희 오송참사를 거론해 주셨을 때 눈물이 났어요.”
오송 지하차도 참사 2주기를 나흘 앞둔 지난 11일 최은경 오송참사유가족협의회 공동대표는 “새 정부 출범 이후 변화된 분위기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오는 16일에는 유가족협의회와 이 대통령 간 면담도 예정돼 있다.

참사 후 지난 2년은 무관심과 외면의 시간이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임기 중 발생한 참사임에도 단 한 번도 현장을 찾지 않았다. 참사 발생 약 석 달 뒤인 같은 해 10월 청주 국제공예비엔날레 행사장을 찾았던 김건희 여사도 마찬가지다. 김 여사는 일명 ‘갈비사자’로 유명해진 ‘바람이’가 있는 청주동물원을 방문했지만, 불과 몇분 거리에 있는 오송참사 시민분향소는 외면했다.
최 대표는 “김건희 여사에 큰 충격과 실망감을 느꼈다”며 “‘국민의 목숨이 동물보다 못한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책임자들은 혐의를 여전히 부인하고 있고, 처벌은 더디기만 하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범석 청주시장은 지난 12일 열린 첫 공판에서 “(범람한) 미호강의 법적 관리 책임이 없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최 대표는 “5~6명의 변호인을 대동하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피고인들의 모습에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족들이 참사의 최종 책임자로 지목하는 김영환 충북지사는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유족들은 이에 불복해 지난 2월 항고했지만 5개월째 감감무소식이다.
최 대표는 “모든 사건의 흐름을 보면 말단만 처벌받고 있다. 기소 여부조차 2년이 다 되도록 판단을 못한다는 것은 문제”라며 “국정조사 등으로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들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궁평2지하차도 입구에 ‘오송참사 희생자 기억의 길’이라는 현판을 설치하겠다고 유족들과 약속한 충북도는 최근 말을 바꿨다. ‘국토부 유권해석’ ‘지역 주민 민원’ 등이 그 이유다. 그사이 참사 현장 주변에는 유가족을 비난하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추모비 역시 설치 장소 선정을 두고 2년 넘게 미루다 최근 정권이 바뀌자 도청 내 부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충북도가 약속한 심리치료 지원도 진전이 없다. 최 대표는 “진정성 있는 애도는 없고, 저희를 위하는 척하며 상처만 주고 있다”며 “될 것처럼 했다가 안 되는 일이 반복되는 희망고문이 가장 힘들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유족과 생존자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최 대표의 어머니는 참사 당일 버스에 탑승했다가 다음날인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최 대표의 가족들은 토요일마다 어머니가 있는 봉안당을 찾는다. 그는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맞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더 힘들다”며 “돌아가신 엄마 생각에 지금도 운전을 하다, 세수하다 눈물이 터져 나온다”고 말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유족들에게는 희망이 싹트고 있다. 이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분향소를 찾았던 데 이어, 취임사에서 “오송참사 등 사회적 참사의 진상을 명확히 규명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16일 면담은 2시간가량 열린다. 최 대표는 이 자리에서 ‘참사 발생 시 유가족을 1대1로 지원하는 매뉴얼 마련’ ‘신속한 국정조사’ 등을 요청할 계획이다.
최 대표는 “참사 당시 유가족을 위한 장소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고, 유가족 스스로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식장을 정해야 했다”며 “이 같은 고통스러운 상황이 반복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오송참사 국정조사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로 나선 정청래·박찬대 의원도 국정조사에 동의했다. 민주당 소속 청주시의회 의원들도 거들고 있다.
최 대표를 비롯한 유족들이 원하는 것은 오송참사와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시민단체와 연대해 거리로 나서는 것도, 이 시장과 김 지사 등 단체장을 중대 재해 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최 대표는 “유가족이 돼 보니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등 희생자 유가족들이 거리로 나서는 이유를 이해했다”며 “다시는 엄마같이 억울하게 죽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삭 기자 isak8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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