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황병서 기자] 이재명 대통령은 13일 “지난해 12월 3일 대한민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친위 군사 쿠데타가 벌어졌고, 우리 국민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를 평화롭게 물리쳤다”면서 “민주주의를 지켜낸 것은 제도가 아니라 국민의 열망과 실천이였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서울에서 열린 ‘2025 세계정치학회 서울 총회’ 개막식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통해 이 같이 말했다. 이어 “K-민주주의는 갈등과 분열을 넘는 연대의 정신이며,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모든 것에 맞서는 유일한 해법은 ‘더 많은 민주주의’”라고 강조했다.
△ 아래는 이재명 대통령의 연설 전문
이재명 대통령이 1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5 세계정치학회(IPSA) 서울총회 개막식에서 연설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2025 세계정치학회 서울총회’ 참석을 위해
대한민국을 찾아주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뜻깊은 행사 개최를 위해 애써주신
세계정치학회 관계자분들께도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인류가 처한 공통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공동체의 질서를 창조해야 한다.”
1997년 세계정치학회 서울총회 자리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께서 남기신 말씀입니다.
전 세계가 마주한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서
과연 우리는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고 있는지, 자문해 봅니다.
위기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시대에 걸맞게 민주주의는 어떻게 진화해야 하는가,
정치는 더 나은 삶의 기반을 만들어 내고 있는가,
끊임없이 되물어야 미래로 전진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와 외환위기의 국난을 딛고
세계 10위 경제 강국으로 성장한 나라입니다.
동시에, 독재정권의 억압을 딛고 민주주의를 쟁취한
모범적 민주주의 국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모두가 생생히 기억하시는 것처럼,
지난해 12월 3일, 대한민국에서는
감히 상상조차 불가능했던 ‘친위 군사 쿠데타’가 벌어졌습니다.
12.3 친위 군사 쿠데타는 전 세계를 두 번 놀라게 했습니다.
첫 번째는, 세계 10위 경제 대국에서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가 벌어졌다는 경악할 사실이고,
두 번째는, 총칼을 든 군사 반란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평화롭게 물리쳤다는 사실입니다.
경악과 공포는 순식간에 찬사와 경이로움으로 바뀌었습니다.
지난 겨울부터 이번 여름에 이르기까지 6개월 동안,
대한민국이 절망 속에서 발견한 희망,
퇴행 속에서 발견한 도약의 가능성, 그 어딘가에
세계 민주주의의 현실과 과제가 모두 자리하고 있습니다.
12.3 내란은 민주주의 제도의 취약성을 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현직 대통령의 황당무계한 친위 군사 쿠데타는
대화와 타협을 배제한 채 상대를 말살하고
‘영구집권’하겠다는 욕망에서 비롯됐습니다.
생각이 다른 상대를 제거하겠다는 반민주적인 폭거는
헌법기관에 대한 근거 없는 불신과 폭력으로 이어졌고,
국민이 피땀으로 지켜온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여지없이 짓밟혔습니다.
무엇보다 갈등과 분열의 씨앗을 광범위하게 퍼뜨리며
우리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늘진 담벼락 밑에서도
기어코 빛을 찾아 피어나는 꽃처럼,
12.3 내란의 극복 과정은
민주주의가 가진 진정한 힘과 희망을 보여주었습니다.
전 세계가 주목한 것처럼 대한민국 국민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향한 꺼지지 않는 열망과 용기를 선보이며,
더 밝은 미래를 향한 희망을 기어코 만들어 냈습니다.
국회를 에워싼 시민들은 맨몸으로 장갑차와 총칼에 맞섰고
국회의원들이 국회 담장을 넘어 계엄 해제에 나서도록 독려했습니다.
일선의 군 장병들은 제복 입은 시민으로서
부당한 명령에 저항하며 존엄과 명예를 수호했습니다.
내란 세력은 국회의 유리창은 산산조각 냈을지 몰라도
민주주의를 지켜내겠다는 우리 국민의 결의에는
흠집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은 내란의 어둠에 맞서
평범한 일상을 회복할 장엄한 ‘빛의 혁명’을 시작했습니다.
123일간 이어진 ‘빛의 혁명’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광장에서 실현된 감격의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진정한 힘은 제도 그 자체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국민의 간절한 열망과 행동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도 증명됩니다.
헌정질서와 민주주의가 유린당했던 고비 고비마다
결집한 시민의 힘과 집단지성이 바닥으로 추락하던 민주주의를
다시 날개 치며 솟구쳐 오르게 한 경험을 우리는 갖고 있습니다.
대한국민이 보여준 놀라운 회복력과 민주주의의 저력은
대한민국의 것이면서 동시에 전 세계의 것입니다.
우리 국민께서 직접 보여준 오색 빛 K-민주주의가
길을 찾는 세계의 민주시민들에게 등불이자 이정표가 될 거라
확신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증명한 것처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승리하는 방법은
오직 ‘더 많은 민주주의’뿐입니다.
갈등과 분열을 심화하는 불평등과 양극화,
국민을 갈기갈기 갈라놓는 정치적 극단주의,
각자도생의 사회 질서가 유발한 고립과 소외에 맞서
공존과 화해, 연대의 다리를 놓을 시간입니다.
갈등보다 대화를, 상처보다는 치유를,
대립보다는 화해를, 비난보다는 협력을,
혐오보다 서로를 살피고 돌보는 상생의 가치를 회복할 때입니다.
우리의 미래를 구할 ‘K-민주주의’의 핵심 정신은
민주주의의 가치인 자유, 평등, 연대를 철저히 복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는 ‘자유’란 일각에서 말하듯
단지 간섭받지 않을 자유, 제약받지 않을 자유를 뜻하지 않습니다.
민생경제를 파괴한 ‘친위 군사 쿠데타’를 통해 목격했듯이
민주주의와 경제는 결코 떼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불평등과 양극화, 빈곤의 파고가 성장을 가로막는
위기의 시대, ‘자유’란 곧 ‘경제’입니다.
자유란 굶주림을 채워줄 따뜻한 식사이고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괜찮은 일자리이고,
빚의 늪에 허덕이던 나를 구해줄 사회안전망입니다.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는 가정에서,
휴게공간도 없이 땡볕을 견뎌내야 하는 일터에서,
어디에 사는 지가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사회에서,
한 번 탈락하고 실패하면 다시 일어설 수 없는 나라에서,
어떤 자유가 있겠습니까.
자유롭게 선택할 자유를 넘어선 평등할 자유,
공동체의 향방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참여할 수 있는 자유,
미래를 위해 꿈을 포기하지 않을 자유,
자신의 노력으로 삶의 조건을 바꿀 수 있는 자유,
한 사람의 사회구성원으로 자립할 수 있는 자유야말로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켜낼 원동력입니다.
우리 말에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냐’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민주주의가 밥 먹여준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합니다.
민주주의야말로 우리 모두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발견하고,
저마다 꿈을 꿀 수 있는 창의와 도전, 희망이 넘칠 나라를 만들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정치체제임을 끝없이 입증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장의 탈을 쓴 반민주 세력이
불평등과 빈곤의 틈새를 파고들어
우리의 민주주의를 파괴하지 못하도록 막아낼 수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께서 이미
우리가 나아갈 ‘더 나은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셨다는 점입니다.
자유롭고 평등한 광장에서,
서로 다른 색깔의 응원봉이 경쾌한 ‘K-팝’ 떼창으로 어우러지며
역사의 퇴행을 막아냈습니다.
찬연한 빛으로 부활한 민주주의의 공간에서,
저마다 자유롭게 토론하며 더 나은 세상을 함께 상상했습니다.
다른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서로를 존중하는
연대와 상생, 배려의 에너지를 모두 모아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열어젖혔습니다.
모진 추위를 서로의 온기로 이겨낸 키세스 시위대,
함께하지 못한 시민들의 핫팩·난방버스 연대,
금남로의 주먹밥을 계승한 여의도와 한남동의 ‘선결제’까지,
대한민국 국민은 내란극복 과정에서,
참여와 연대의 가치를 확인하며
민주주의 역사의 새로운 장을 써 내려갔습니다.
이제 우리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바로잡은 주권자의 집단지성이
제대로 발현될 수 있는 미래형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합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공직자들은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주권자의 뜻을 늘 반영하고 있다는 신뢰를 회복해야 하고,
고도화된 집단지성의 역량이 민주공화국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민주주의를 더 혁신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