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매일통신] 다섯번째 전직 대통령 구속

김진영 편집국장·이사 2025. 7. 13.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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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부끄러운 우리 정치사의 비극
잘못된 역사의 교훈 되새겨야
김진영 편집국장·이사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재구속됐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처음 구속됐다가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으로 풀려난 지 4개월 만이다. 전직 대통령이자 법원이 불구속 사유가 충분하다며 구속을 취소한 상태에서 조은석 특검의 재구속 행보는 의외였다. 특검이 꾸려진지 3주 만에 내란혐의의 '몸통' 신병 확보에 성공한 조은석 특검의 발빠른 수사의 비법은 뭘까. 윤 전대통령의 구속을 가능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윤석열의 남자'로 통하던 이들의 배신이 있어 가능했다는 후문이다.

 이번 구속영장 청구에서 드러난 윤의 남자는 강의구 전 대통령 부속실장과 김성훈 전 대통령 경호처 차장이다. 여기에 안보실장 김태효도 느닷없이 '격노'를 강조하며 배신의 대열에 합류하는 분위기다. 이들의 진술이 윤 전대통령의 신병확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황상 일정부분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조은석 특검의 속전속결에 자신감이 붙은 3대 특검은 염천 더위에 속사포를 겨눌 태세다. 이제 특검의 방향은 정해졌다. 김건희 여사와 내란 수사의 양방향에 해병대 특검으로 삼각편대를 만들어 윤석열 정권의 뿌리를 뽑겠다는 계산이다. 벌써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김건희 측근들에 대한 여권말소를 띄우며 백기투항을 유도하고 내란에 동조한 국민의힘 의원은 친윤과 내란동조로 묶어 색출 작업에 나선 상황이다. 

 집권당이 된 민주당은 신이 났다. 윤석열 재구속부터 대야공세 수위가 한층 높아졌다. 3대 특검은 내란·김건희·해병대원 특검을 말한다. 관련이 있거나 있어 보이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일제히 출국 금지, 압수 수색, 소환 조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는 중이다. 이참에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내란 정당'으로 규정하고 정당존립 자체를 무력화할 태세다.

 내란정당의 우두머리를 다시 구속시키는 일은 특검 수사의 핵심이기도 했지만 민주당의 적폐청산 시즌2의 근거이기도 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결정적 장면은 역시 '윤의 남자'가 보여준 진술의 번복이다. 조은석 특검은 김성훈 전 경호차장이 조사 초기 윤 전 대통령에게 유리한 진술을 하다가 변호인 부재 시 진술을 바꿨고, 강의구 전 부속실장도 특검 조사에서 변호인이 입회하자 기존 진술을 번복했다는 이야기를 흘렸다. 진술의 번복은 반대로 '진술 회유 의심 정황'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측근들의 진술 변화'가 재구속의 결정적 근거가 됐지만 한편으로는 한 때 당당했던 대통령의 심복들이 보여주는 씁쓸한 권력의 몰락 과정이기도 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구속을 바라보면서 권력의 핵심과 측근의 관계를 통해 운명이 결정됐던 과거를 소환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전두환, 그리고 전두환과 장세동의 인연이다. 

 전두환은 대위 시절인 1959년 가을, 장인 이규동의 손에 이끌려 박정희 당시 6관구 사령관을 처음 만났다. 이규동과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 동기이자 국군 창설 시 육사 2기 동기로, 실로 각별한 인연이 있다. 박정희는 전두환을 한눈에 마음에 들어 했고, "전 중위, 자네, 여기서 내 부관을 하게나!"라고 권했지만, 전두환은 "저는 부관 체질이 못됩니다"라며 사양했다고 한다.

 두 사람의 관계는 5·16 군사쿠데타를 계기로 하나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전두환은 박정희를 위해 신명을 바쳐 쿠데타 성공에 기여했고, 특히 육군사관학교 생도대의 서울 시가행진을 주도하며 박정희 반란군의 생명줄이 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 시국을 적절하게 활용한 동물적 본능이 유감없이 발휘된 장면이다. 

 이후 전두환은 박정희 정권 초기부터 말기까지 탄탄한 출세 가도에 올랐고, 대통령 '빽'을 과시하며 박정희 부부와 찍은 기념사진을 훈장처럼 걸고 다녔다. 박정희는 전두환에게 친필 위문편지를 보내는 등 각별한 애정을 보였고, 전두환은 이 편지를 하나회 후배들에게 자랑삼아 보여주며 "대통령 빽이 함께 한다"는 자부심을 불어넣었다고 한다.

  박정희의 지지와 후원 덕분에 전두환은 실제로 박정희의 '양아들'이라는 소문까지 돌았고, 그 배경 때문에 전두환이 중심이 된 하나회는 창군 이래 가장 막강한 군대 내 파벌로 일세를 풍미했다. 박정희가 측근의 총탄에 몰락한 이후 전두환은 주군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 박정희 정권과의 연루에는 거리를 두었지만 정치적 고립 상태였던 박근혜에게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처럼 그늘이 됐다는 후문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박정희라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다면, 전두환에게는 장세동 전 경호실장이라는 '의리의 사나이'가 있었다. 장세동은 자신이 모시던 대통령의 허물이 드러나지 않게 감옥에 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전두환에 대한 헌신적인 충성을 다한 인물이다. 경호실장에 임명된 후 장세동은 술, 담배, 테니스까지 끊고 혹시 모를 업무 차질을 우려해 식사량까지 줄였다고 하니, 그 맹목적인 충성심은 비상식적일 정도다. "사나이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바친다"는 그의 국회 청문회 발언은 전두환에 대한 그의 절대적인 충성심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장세동이 그 유명한 '용팔이 사건'으로 구속될 때 "용팔이 사건은 나 이상의 배후가 없다"고 증언하며 자신의 주군을 지키려 법적 책임을 스스로 떠안았고, 출소 후에는 전두환의 집을 찾아 "신고합니다. 각하! 휴가 잘 다녀왔습니다!"라며 거수경례를 한 일화는 우리 정치사에 의리의 심복을 보여주는 명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전두환은 군사 쿠데타와 5·18 빼면 정치는 잘했다"는 인물평을 내놓아 구설수에 올랐던 적이 있다. 어쩌면 전두환식 정치를 닮아가려 했던 마음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정치는 잘한' 전직 대통령을 벤치마킹하려 했던 그가 전두환이나 장세동같은 심복을 만들지 못한 것은 왜일까. 벌써 다섯 명의 전직 대통령 구속 사태를 맞은 우리 정치의 부끄러운 시간에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김진영 편집국장·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