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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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의 엉뚱한 물음에 커피 잔을 들던 손이 멈칫했다.
손주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끝을 흐렸다.
특히 우리 손주 같은 순수한 눈에는 그게 '비싼 먼지'가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말인데, 우리 손주가 던진 '비싼 먼지'라는 말, 그냥 틀렸다고 하기엔 너무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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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아버지, 먼지도 비싼 먼지가 있어요?”
손주의 엉뚱한 물음에 커피 잔을 들던 손이 멈칫했다. 아니, 이석은 또 무슨 발칙한 상상을 한 걸까. 요즘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올랐지. 그래도 먼지까지 금값 되었다는 소식은 못 들었는데.
“비싼 먼지라니, 그게 뭔 소리고?”
“학교 가는 길에 공사장 앞에 ‘비산먼지 저감 운동’이라고 쓰여 있던데요. 비산먼지니까, 비싼 먼지 아닌가요?”
이 말을 듣고는 참던 웃음이 터졌다. 아이고, 세상에 이런 해석이 다 있나. ‘비산먼지’가 ‘비싼 먼지’라니. 얘 눈엔 한자도, 상식도 다 요술방망이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얘야, 그건 날 비(飛), 흩어질 산(散), 날아다니는 먼지란 뜻이란다. 값을 매기는 게 아니라, 괜히 돌아다니는 게 문제라서 줄이자는 말이지.”
손주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끝을 흐렸다.
“근데, 그냥 ‘날리는 먼지 줄이기’라고 쓰면 되잖아요. 왜 굳이 비산먼지, 저감운동 같은 어려운 말을 쓰는 거예요?”
그렇다 손주에게서 배울 점도 있다, 상식선에서 생각해 볼 문제다.
요즘은 간판도, 현수막도 다들 있어 보이려고 어려운 말을 골라 쓴다. 그게 더 그럴듯해 보인다고 생각하겠지만, 정작 보는 사람은 더 헷갈린다. 특히 우리 손주 같은 순수한 눈에는 그게 ‘비싼 먼지’가 되지 않겠는가.
생각난 김에 한자 이야기를 해주었다. 야구 얘기를 예로 들며, 투수는 ‘던질 투(投)’에 손 수(手), 포수는 ‘잡을 포(捕)’에 손 수, 타자는 ‘칠 타(打)’에 놈 자(者). 다이아몬드 첫 번째 자리를 진지 루(壘)를 써서 1루 2루 3루라 하고 심판은 심판할 심(審), 판단할 판(判). 이쯤 되면 한자 모르면 야구도 어렵다.
“와, 야구에도 다 한자가 있네요?”
손주는 눈이 동그래졌다. 그 눈을 보니 어릴 적 고향 생각이 났다. 마을 이름 하나도 다 사연이 있었다. ‘곰재’는 곰이 자주 나왔다는 고갯길이었고, ‘죽전’은 대나무 들판, ‘대암리’는 큰 바위가 많았다. 그런데 그걸 한자로 웅치(熊峙), 죽전(竹田), 대암리(大巖里)라고 써놓으면, 어디 무협지에 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글자만 보면 풍경이 그려지고 전설이 붙는다.
우리 육촌 자형 별명도 생각났다. 동네 사람들은 자형을 ‘개머리 자형’이라 불렀다. 처음엔 개처럼 생겼나 했는데, 알고 보니 ‘포두리(浦頭里)’라는 동네, 즉 ‘갯가머리’에 살아서 그렇게 부른 거였다. 물가 포, 머리 두, 줄이면 개머리. 이야, 동네 어른들도 줄이기의 달인이었다.
한자라는 게 참 묘하다. 어려운 듯하면서도 알면 재밌고, 모르면 오해하기 딱 좋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이 한자 모른다고 야단칠 건 아니지만, 한 자 속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우리 어른의 몫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손주가 던진 ‘비싼 먼지’라는 말, 그냥 틀렸다고 하기엔 너무 귀하다. 그 말 한마디로 온 가족이 웃었고, 덕분에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먼지가 이렇게 고급 콘텐츠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결론은 이렇다. 먼지는 원래 공짜다. 다만 웃음을 줄 수 있다면, 그건 세상에서 제일 비싼 먼지일지도 모른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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