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장 재량에 묶여 에어컨 스위치 꺼졌다

"출장을 떠날 땐 여비가 나오는 게 당연한데 그걸 아껴요. 새로 온 교장이."
인천시 남동구 간석동에서 만난 A고 교사 심모(45·여)씨는 "학교마다 여비가 책정돼 있는데 교장은 출장을 못 가게 하거나 자기 부담을 지시해 지출을 줄였다"며 "학교 운영을 위해서라지만 아끼는 게 너무 심해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고 말했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은 출장여비 지급 기준을 정하고 교원이 출장을 떠나면 교통비나 숙박비 등을 기본 운영비나 목적사업비에서 지급하도록 규정했지만 지급 여부를 학교장 재량에 맡기면서 지급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심 씨는 지난 7일 부평구 삼산동 B초등학교에서 학교장 재량으로 각 교실과 관리동(교무실·교장실 등)의 에어컨을 멈추며 제기된 논란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주장한다.
B초등학교는 이날 오전 10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모든 교실과 관리동의 에어컨 스위치를 내렸다. 또 학생들이 하교한 오후 3시 30분부터 4시 30분까지 관리동의 모든 에어컨을 껐다.
기본 운영비 예산 부족을 만회할 대안으로 이뤄진 조치다. 이 학교의 올해 기본 운영비는 6억5천여만 원으로 지난해보다 5천700여만 원(3%)이 줄었다.
심 씨는 "아무리 예산을 아끼겠다는 계획이라지만 폭염특보가 내려진 상황에서 에어컨을 끈 비상식적인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학부모 민원도 분명 예상했을 테고, 모든 교원이 수긍하지도 않았겠지만 예산을 아끼겠다는 생각에 학교장이 재량으로 밀어붙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교육계 일각에선 인천시교육청이 올해 도성훈 교육감의 공약사업을 위해 일선 학교 예산을 줄이면서 발생한 당연한 귀결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학령인구는 매년 줄어드는 상황에서 시교육청의 올해 예산은 지난해보다 되레 늘었다는 이유에서다.
시교육청 등이 집계한 인천지역 학령인구(6~21세)는 2021년 43만9천 명에서 올해는 43만여 명으로 1만 명 가까이 줄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본예산은 4조298억 원에서 올해는 5조2천915억 원으로 1조2천617억 원이 늘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학령인구가 2천여 명이 줄었음에도 예산은 되레 1천844억 원이 증가했다.
교육계 관계자는 "교육청 예산은 교육목표와 정부 재정지침 말고도 학령인구 변화 등도 반영해 세워진다"며 "학령인구가 줄면 예산도 줄어야 하지만 교육청 예산은 외려 늘었다"고 말했다.
이어 "교육감선거가 내년에 있는 상황에서 일선 학교 예산을 줄였다면 공약사업에 초점을 맞췄을 가능성이 크다"며 "에어컨을 끈 학교도 기본 운영비가 부족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교육청이 유치원을 비롯한 초·중·고·특수·기타학교에 내려주는 예산은 기본 운영비와 목적사업비로 구분된다. 목적사업비는 학교 특성 사업을 위해 편성한 예산으로 다른 분야에 사용하지 못한다. 결국 학교 운영을 위해선 기본 운영비 확보가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기타 수입도 있지만 돌봄비와 기부금 등으로 수입 비중이 낮다.
학교 현장에서는 기본 운영비가 적어 혼란이 생기고 있다. 시교육청은 올해 946개 학교(분교 제외)에 총 4천13억 원의 기본 운영비를 학급·학생 수 등을 계산해 지원했다. 이는 지난해 예산인 3천938억 원보다 75억 원이 늘어났지만 증가 폭은 오히려 줄었다. 2023년 3천90억 원을 기준으로 지난해에는 893억 원이 증가한 데 비해 올해는 무려 818억 원이 줄어든 셈이다.
학생 감소에도 급증하는 물가를 반영하지 않은 기본 운영비로는 정상 운영이 어려워지자 학교장들은 비난을 감수하면서 재량으로 예산 절감에 나설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대형 인천교원단체총연합회장은 "일선 학교 예산 중 목적사업비가 큰 비중을 차지해 풍요 속에 빈곤에 놓인 곳이 많다"며 "특별한 지원책이 없으면 결국 무분별한 재량권에 교육환경이 열악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일선 학교 운영비 예산이 다소 부족한 것은 알지만 냉난방기를 꺼야 할 정도까진 아니다"라며 "올해 예산이 크게 늘지 못한 것도 재정 악화 때문이지, 교육감 공약과는 무관하다. 일선 학교 교육환경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철저히 살피겠다"고 해명했다.
지우현 기자 whj@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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