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월요일] 나무의 잠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5. 7. 13.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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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덩이 바위다.

가장으로서 거목이 되어 아이들을 제 그늘 아래 쉬게 하고 싶지만, 실은 어린 나무들이 이루는 작은 숲에 의지하며 한 생을 건너가고 있는 건 아니었는지.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몇 그루의 나무, 몇 덩이의 바위가 필요하다.

커가는 나무를 보며 나도 잠시 하늘을 보고, 바위에 손 짚으며 지친 한숨이라도 돌리기 위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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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오평(二十五坪) 게딱지 집 안에서

삼십(三十) 몇 도(度)의 한더위를

이것들은 어떻게 지냈는가

내 새끼야, 내 새끼야,

지금은 새벽 여섯 시

곤하게 떨어져

그 수다와 웃음을 어디 감추고

너희는 내게 자유로운

몇 그루 나무다,

몇 덩이 바위다.

- 박재삼 '한여름 새벽에'

고단한 삶의 굳은살이 시어마다 단단하게 박인 시다. 뒤늦게 귀가하니 전날의 무더위를 잊은 아이들이 혼곤히 잠들어 있던 모양이다. 하루씩 이틀씩 커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시인은 아마도 속으로 울고 있었나 보다. 가장으로서 거목이 되어 아이들을 제 그늘 아래 쉬게 하고 싶지만, 실은 어린 나무들이 이루는 작은 숲에 의지하며 한 생을 건너가고 있는 건 아니었는지.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몇 그루의 나무, 몇 덩이의 바위가 필요하다. 커가는 나무를 보며 나도 잠시 하늘을 보고, 바위에 손 짚으며 지친 한숨이라도 돌리기 위해선.

[김유태 문화스포츠부 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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