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자본주의의 문을 연 상법 개정, 판례와 주주 참여가 성패 가른다 [김학균의 시장읽기]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2025. 7. 13.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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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주주 견제의 출발점, 오너에서 시장으로 무게중심 이동

(시사저널=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지난 7월3일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 '전자주주총회 의무화' '사외이사 명칭을 독립이사로 변경' '감사위원 선출 시 3%룰 보완적용' 등이 개정 상법의 주요 내용들이다. 모두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내용이다. 한국 주식시장에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변화라고 본다.

지배구조는 '잘 갖춰져 있으면 좋고, 아니면 그만'인 정도가 아니다. 주식 투자의 장기 성과를 결정짓는 핵심적인 요인이다. 지배구조는 기업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지배주주, 소액주주, 경영진, 채권자, 직원 등의 역학관계를 총칭하는 단어다. 기업이 사업에 자원배분을 하고, 영업활동을 하고, 벌어들인 이익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지배구조에 영향을 받는다.

지배구조의 중요성은 한국 증시가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 경제에 가장 활력이 넘쳤던 시기는 IMF 외환위기 이전인 1980~90년대였을 것이다.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성공적으로 경제를 부흥시킨 '아시아의 네 마리 용(한국·홍콩·대만·싱가포르)'의 일원으로서,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두 자릿수대에 달했다. 그렇지만 역동적인 '성장의 시대'였던 1980~90년대 한국 증시의 성과는 극히 부진했다. 한국 증시를 대표하는 코스피(KOSPI)가 추세적인 상승세를 나타냈던 시기는 '3저 호황'이 있었던 1985~88년의 4년에 불과했고, 나머지 시기는 장기 박스권 장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7월3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이제는 법원과 주주의 시간 

주가와 성장이 극명한 괴리를 나타냈던 셈인데, 취약한 지배구조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운동화 '프로스펙스'를 만들었던 국제그룹은 1985년 초 계열사 21개로 이뤄진 한국 재계 서열 7위의 대기업이었다. 이런 국제그룹이 갑자기 해체됐다. 차입금 규모가 커 재무구조가 부실했고, 공정거래법 위반 의혹이 대두되기는 했지만, 이런 점들은 유독 국제그룹에만 해당되는 약점이 아니었다. 당시 집권층과의 갈등이 국제그룹의 해체로 이어졌다는 해석이 많았다. 기업보다 정치권력이 훨씬 우위에 있었던 시대의 자화상이었다. 이런 환경에서는 기업이 벌어들인 부가 주주들에게 돌아가기보다는 불법적 정치자금 등으로 새어나갈 수밖에 없다.

1999년 자산 규모 기준 재계 순위 2위인 대우그룹도 분식회계로 파산했다. 회계는 '기업의 언어'로서 재무적 상황을 기업의 주인인 주주와 투자를 고려하고 있는 예비주주들에게 보여주는 '경제적 약속'이다. 기업의 주인이지만 일상적 기업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주주들에 비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임직원이 분식회계를 통해 주주들을 속이는 환경에서 주가가 장기간 상승하기는 어렵다.

주식투자는 '기업의 수익 창출' 여부와 '기업이 벌어들인 부의 분배'라는 두 가지 요인에 의해 성패가 결정된다. 두 요인 모두 중요하고, 지배구조는 기업이 벌어들인 부의 분배와 관련된 이슈다. 최근에는 기업이 정치권력에 대해 가지는 자율성은 크게 증대됐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은 세계 각지에 분산된 생산시설에서 제조하고, 판매시장도 다변화돼 있다. 일국적인 기반을 가진 정치권력이 제어하기 힘든 공룡이 돼버렸다. 회계투명성 역시 과거보다는 크게 높아졌다고 봐야 한다.

최근 한국 증시의 지배구조 문제는 다수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분산돼 있는 '소액주주'들과 소수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기업의 운영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지배주주'들의 이해상충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지배주주'들은 '오너'로 불리기도 한다. 인수합병(M&A) 과정에서의 합병 비율, 물적분할 후 동시상장, 알짜기업의 헐값 공개매수와 상장 폐지, 모회사와 자회사의 중복상장 등의 의사결정이 지배주주 편향적으로 이뤄지면서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본 사례가 너무도 많았다.

일본은 미국의 행동주의 펀드를 불러들여

이번 상법 개정은 지배주주의 전횡을 억제하고, 소액주주들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지만,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출발점에 불과하다. 무엇보다도 개정 상법이 현실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나타날 법원의 판단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법원은 지배주주와 소액주주의 이해상충과 관련한 판결에서 거의 대부분 지배주주의 손을 들어줬다. 이사가 '주주들에게 충실해야 한다'는 당연하지만 다분히 추상적인 조항에 대해 법 개정 후 초기에 법원이 만들어 나갈 판례에 따라 상법 개정의 성패가 결정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소액주주권 강화가 중요하다.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두 법의 잣대에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식시장에서 벌어지는 지배구조의 문제는 '가장 시장적인 방식'으로 풀어내야 한다. 기업이 만들어낸 성과와 분배에 가장 본질적인 이해관계를 가지는 집단은 주주들이기에, 주주들이 회사의 여러 결정에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는 '지배주주'와 '소액주주' 사이의 긴장이 고조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배주주의 이해관계가 일방적으로 관철됐던 질서에서 소액주주의 의견이 반영되는 지배구조로 변화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날 수 있는 일이다. 한국보다 10년 먼저 기업 지배구조 개선 프로세스가 시작됐던 일본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일본은 주주행동주의를 사실상 장려하면서 지배구조에 탄성을 부여했다. 한국이나 일본은 주주행동주의가 활성화되기 힘든 국가다. 지연과 학연으로 대표되는 관계지향적 사회이기 때문에 지배주주와 경영진에 대립각을 세우는 주주행동주의가 자리 잡기 힘든 사회·경제적 풍토를 가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일본에 연고가 없는 미국계 주주행동주의 펀드를 일본 증시로 불러들였다. 아베 총리는 미국의 행동주의 펀드인 '서드 포인트' 대표인 댄 로브를 수상 관저로 초대해 만남을 가졌다. 아베가 던진 메시지는 분명했다. 한국처럼 지분을 가진 오너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호적 기업들 간의 상호출자를 통해 경영진이 배타적인 지배력을 유지해 온 일본 기업들의 지배구조에 변화를 주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지배구조 개선 과정에서 나타나는 역동성은 누군가에겐 '혼란'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만, 한국 주식시장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정상화' 과정으로 봐야 한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상법 개정은 한국 증시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한 의미있는 발걸음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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